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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상상과 왜곡 사이…중세의 일상 스며든 '상징'

■서양 중세 상징사

미셸 파스투로 지음, 오롯 펴냄





중세의 숫자와 색은 적히고 그려진 그대로 믿어서는 안된다. ‘왕이 빨간 망토를 걸치고 12명의 동료들과 말을 타고 갔다’고 기록돼 있지만 그것이 꼭 12명이라는 뜻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중세에서 12는 ‘완전한 전체’라는 관념적 숫자였다. 11은 부족해서 불완전하고 13은 지나치기에 불길한 숫자인 반면, 12는 완결성을 뜻하는 상징적 표현으로 해석됐다. 빨강 또한 실제 붉은 망토였는지 장담할 수 없다. 중세의 빨간색은 ‘격렬히 작용하는 색’을 의미했다. 왕이 걸친 빨간 망토는 앞으로 그가 겪을 모험을 암시한다고 해석될 수 있다. 참고로 녹색은 단절과 혼란의 원인, 파란색은 고요함과 안정, 노란색은 흥분과 위반을 가져오는 색이라는 ‘중세적 의미’를 품고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중세사 학자로 평생 중세의 문장(紋章·국가나 집안을 나타내는 상징적 그림)과 이미지, 색 등을 연구한 미셸 파스투로의 ‘서양 중세 상징사’가 한국어로 처음 번역, 출간됐다. 오늘날 수많은 판타지 게임과 영화·소설의 시대 배경인 중세, 마법처럼 경이로운 그 시대 특유의 상징과 의미를 흥미롭게 풀어낸 책이다.



책은 상징과 관련해 프랑스의 백합꽃 문양, 빨강머리와 왼손잡이, 아서왕 전설 등을 비롯해 깃발, 동물,놀이 등 6개 영역에서 16개의 주제를 분석했다. 중세의 문장에 가장 많이 사용된 문양은 사자 그림으로, 전체의 15% 이상을 차지한다. 두 번째로 많이 쓰인 가로띠 무늬가 6%인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이다. 12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곰이 주로 왕좌를 차지했지만 영향력이 커진 중세 교회가 ‘야만한 이교도’의 문화를 밀어내면서 “무슨 일을 저지를 지 알 수 없는” 곰 대신 통제할 수 있으며 힘과 용기, 정의의 상징인 사자가 득세하게 했다. 사자는 그리스도의 유대 부족을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했다. 그런데 사자에게도 ‘부정적 요소’들이 있었기에 신학자와 예술가들은 ‘레오파르두스(Leopardus)’라는 사자처럼 생긴 상상의 표범을 설정해 사자의 모든 나쁜 습성을 투영하고, 사자는 옳고 좋기만 한 동물로 남게 했다. 아서왕 이야기에서 좋은 기사와 악한 기사의 방패에 각각 사자와 레오파르두 문양이 새겨진 이유다. 사자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문장에도 등장한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가 중세 상징을 분석할 때 자주 시대착오의 오류에 빠지는 것은 지나치게 기계적이고 지나치게 이성적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모호함 그 자체인 양면성은 상징의 가장 깊은 본성”임을 강조한다. 저자의 입장을 따른다면 중세의 상징을 성서나 그리스·로마 문화의 상징 체계와 연관지을 수도 있고, 오늘날의 문화 콘텐츠도 보다 풍요롭게 즐길 수 있다. 2만8,000원.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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