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를 달궜던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 상장 열풍이 사그라지고 있다. 스팩 상장 기업의 실적이 부진하고 금융 당국의 규제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다.
23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공동생활 공간 임대 기업 커먼리빙의 브래드 하그리브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6개월간 스팩 상장 제안을 열 차례나 받았지만 논의조차 시작하지 않았다. 기업용 인공지능(AI) 검색 엔진 개발 스타트업 루시드워크의 윌리 헤이즈 CEO도 3~5년이 걸려도 전통적 방식으로 상장하겠다며 스팩 상장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스팩은 실체 없는 껍데기 회사다. 투자자가 돈을 모아 스팩을 만들어 상장한 뒤 24개월 이내에 실제 기업을 합병해 기존 회사를 우회 상장하는 것이 스팩 상장이다. 전통적 방식의 상장은 기업 실사 등 까다로운 심사로 수년이 걸리지만 스팩을 이용하면 5~6개월 내에 가능해 상장의 ‘지름길’로 여겨졌다. 여기에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유동성이 풀리며 투자 열기가 뜨거워지자 스팩 열풍이 불었다.
하지만 스팩 상장 기업의 실적이 부진하자 스팩 상장의 매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 플로리다대의 제이 리터 교수 등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지난 4월 사이에 스팩 상장한 기술 스타트업 44곳의 주가는 상장 이후 17일까지 평균 12.6% 하락했다. 이 기간 기업공개(IPO)로 상장한 77개 기술 회사 주가의 평균 하락 폭인 10.7%보다 크다. 미 실리콘밸리뱅크에 따르면 지난해 스팩 상장한 기업의 절반이 실적 목표치를 충족하지 못했고 42%는 상장 첫해 매출이 직전 연도보다 감소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스팩 상장에 칼을 뽑아 든 것도 영향을 미쳤다. SEC는 지난달 스팩이 발행하는 신주인수권을 회계상 부채로 처리하도록 했다. 그동안 자본으로 처리되던 신주인수권이 부채로 분류되면 재무제표가 나빠져 투자 유치가 힘들어진다. 이 때문에 스타트업은 스팩 상장 대신 밴처캐피털이나 사모펀드 등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한 뒤 비상장사로 남는 방안을 더 선호하게 됐다고 WSJ는 전했다.
/곽윤아 기자 o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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