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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인간을 병들게 하는 '건물의 배신'

■건강한 건물

조지프 앨런·존 매컴버 지음, 머스트리드북 펴냄

건축 자재 속 화학물질 난연제 등 난임·불임 유발

실내서 마시는 오염물질 실외보다 4배나 많아

"건강에 최적화된 설계가 최고의 사업 전략될 것"





연소를 억제하는 화학물질인 ‘난연제’는 화재 확산 예방에 효과적이라 건축 자재로도 많이 쓰인다. 1970년대 중반에는 어린이 잠옷에 ‘트리스’라 불리는 브롬화 난연제가 사용됐는데, 암과 돌연변이를 유발하는 트리스가 이 잠옷을 입고 잔 아이들의 소변에서 고스란히 검출됐다. 트리스는 유아용 카시트, 아기의자, 매트리스 등에도 사용되고 있었다. 그 유해성이 알려지자 기업들은 다른 화학물질 난연제 ‘유기인산염(OP)’을 사용했지만, 아랫돌 빼 윗돌 괸 격이었다. 하버드대 공중보건대학원 연구팀의 연구 결과 OP난연제는 수정과 배아착상, 시험관 시술의 성공 가능성을 낮추는 등 심각한 불임 문제와 관련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 OP난연제가 건축 자재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건물 내 숨어있는 유해성은 ‘불임유발자’ OP뿐만이 아니다. 바닥재, 밀폐제,가구,샤워커튼 등에 많이 포함된 PVC의 플라스틱 가소제 ‘프탈레이트’는 호르몬을 방해해 항문 성기 감소, 고환 장애, 조기 유방 발달을 초래한다. 건물 내 먼지에서 검출되는 프탈레이트의 변형 물질인 부틸벤진프탈레이트는 비염과 습진을 일으키고, 다이에틸핵실프탈레이트는 어린이 천식과 관련 있다. 이 모든 유해 물질들이 우리가 하루의 90%를 보내는 ‘건물 안’에서 우리와 공존하고 있다. 불임·난임 증가와 출산율 감소, 원인을 알 수 없는 비염과 습진을 일으키는 ‘몰랐던 이유’가 여기 있었던 게 아닐까?

오래 전 인류는 수렵·채집 활동을 마친 후 휴식을 위해 주거지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천 년에 걸친 진화를 거쳐 인간은 야외 생활이 아닌 실내 생활을 추구하는 종이 됐다. 그런데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 기대했던 건물이건만, 건물 안에서 오히려 사람들은 병들고 있다. 미국 하버드공중보건대학원 조지프 앨런 교수와 하버드경영대학원 존 매컴버 교수가 공동 집필한 ‘건강한 건물’은 도시와 건물, 건강과 부(富)의 연관 관계와 그 중요성을 설명한다. 부제는 ‘코로나 이후, 사무실이 진화한다’.

우리는 스모그, 황사, 미세먼지 등 실외 대기 오염을 걱정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쓰지만, 사실 건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실내 환경이라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인간이 시간 당 1,000 번 호흡하고 0.625㎥의 공기를 들이마신다고 할 때 실내에서 마시는 오염물질 양은 실외에서 우리 몸으로 유입되는 오염물질 양보다 4배나 많다고 한다. 미국 환경보호국에 따르면 일부 물질을 제외한 대다수 공기 오염물질 농도는 실내가 실외보다 10배 이상 높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외부의 신선한 공기가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차단한 것이 그 원인이다. 우리는 밀폐된 공간에 갇힌 채 향초, 향수, 향기나는 세제 등을 사용해 답답한 공기를 정화하려 하지만 사실은 그런 화학물질들이 건강에 더 해롭다.



저자들은 업무와 경영 효율성을 위해 건강한 건물을 추구하자고 주장한다. 공저자 앨런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직장인들에게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게 한 뒤 퇴근 전 인지검사를 실시한 결과, 환기율이 높고 휘발성 유기화합물과 이산화탄소가 농도가 낮을 때 인지 능력이 크게 향상된 것으로 조사됐다. ‘부동산팀’을 별도로 두는 구글이 실내 공기질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건물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을 돌보는 데 주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공중보건학, 건축학, 경영학의 융합을 시도해 사안을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한다는 게 이 책의 중요한 장점이다.

미국을 비롯한 산업 국가에 거주하는 대다수 사람의 혈액, 모유, 소변에서 200가지 이상의 공업용 화학물질이 검출됐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검출된 화학물질 대부분은 ‘건물에서 사용하는 제품’에서 나온 것이었다. 미국의 경우 8만 가지 이상의 공업용 화학물질이 사용되는데 이 중 건강과 안전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조사받는 화학물질은 300가지, 환경보호국이 금지한 것은 9가지에 불과하다. 이처럼 걸러지지 않고 쓰이는 유해 화학물질은 카페트, 가구, 건축 자재 등 일상 제품에 사용되고, 우리 몸 속에서도 발견된다.

‘인류세’를 화두로 환경오염과 그로 인한 기후변화 문제의 심각성이 부각되는 가운데 최근에는 코로나19라는 팬데믹이 발생한 것도 환경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공감을 얻고 있다.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발전을 위해 ESG가 필수요소로 부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저자들은 최소한의 환기 규정을 지키는 단계를 넘어서 인간의 건강과 성과에 최적화된 공간을 설계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내 환경이 건강과 생산성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이며, 건물 안의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 사업 전략이 기업에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점을 통해 “건강한 건물 전략이 훌륭한 사업 전략”이라고 강조한다. 1만8,000원.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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