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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함께 우리 이야기가 내려왔다

[리뷰] 국립창극단 신작 '귀토'

용궁 탈출한 토끼 '수궁가' 그후 이야기

세상 고난에 지친 토끼의 자진 용궁행

재기발랄한 설정에 공감 캐릭터 더해

원형+새 시도 균형잡힌 음악 돋보여





용궁서 탈출한 아비는 독수리 먹이 돼 세상 등졌고, 어미도 얼마 안 가 사냥꾼 총에 맞아 저 세상 갔다. 8가지 고난(八難)에 둘러싸인 토끼 생(生) 털어놓으니 수궁 백성 민어도, 정어리도, 짱뚱어도 한 맺힌 소리를 풀어낸다. “내 어미가 그리 갔소.” “아이고 내 아버지 이야길세.” 저마다의 팔란을 마주하며 치열하게 살아내는 이들의 고단함에 뭍과 물이 따로 있겠는가. 국립창극단이 선보인 신작 ‘귀토’는 그래서 달랐다. 재기발랄한 이야기와 진한 소리로 완성한 토끼의 대모험은 우리네 퍽퍽한 삶을 ‘너만 힘든 거 아니다’라는 훈수 아닌 ‘우리 모두 그랬구나’하는 공감으로 녹여내며 가슴 따뜻한 위로와 응원을 건넨다.

국립창극단의 신작 ‘귀토-토끼의 팔란’은 판소리 ‘수궁가’를 원전으로 재창작한 작품이다. 자라에 속아 용궁 갔던 토끼가 가까스로 탈출하는 ‘그 이야기’의 끝에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천애 고아가 된 토자(兎子)는 온갖 고난을 겪으며 미지의 세계 수국을 꿈꾸고, 과거 토자의 아비를 놓친 뒤 또 다른 토끼를 찾아 나선 자라와 우연히 만나 용궁으로 들어간다.



작·연출을 맡은 고선웅 특유의 재기발랄한 설정과 극 곳곳에 심어 둔 B급 정서는 이번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된다. 우선 고전 속 영악한 토끼를 현대의 시각에서 ‘치열하게 살아내는 너와 나’로 해석하며 캐릭터에 대한 관객의 공감을 높였다. 그렇다. 나 살자고 남 죽이는, 아니 남 밟아야 나 사는 세상에서 하루하루 ‘간’이라는 목숨줄 정신줄 붙들고 살아내는 토끼는 지금, 여기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나의 아비 어미도, 내 부모의 부모도 삼재팔란 겪으며 살았다’, ‘새끼 낳고 그냥 토끼답게 살라’하는 어른들의 한 마디 한 마디도 오늘의 청춘과 언젠가의 청춘들이 무수히 들어봤을 법한 말들이다.





사실 결말만 놓고 보면 이렇게 모범적일 수가 없다. 뭍 싫어 떠난 토자가 별반 다를 거 없는 물을 경험하고 나와 터전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그래서 ‘거북과 토끼(龜兎)’라는 뜻의 귀토이자 ‘살던 땅으로 돌아온다(歸土)’는 귀토다. 그러나 귀토가 전하는 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최고’, ‘사람 사는 거 거기서 거기’라는 체념이 아닌 (고 연출이 말한) ‘바람 없는 곳으로 도망치지 말고 바람 부는 대로 유연하게 흔들리며 즐기자’는 메시지다. 고 연출은 이 결 다른 결말을 완성하기 위해 고전엔 없는 새로운 캐릭터부터 처용가·공무도하가·오르페우스 신화를 등장시키는데, 이 색다른 만남은 이질감 없이 극 속에 녹아들었다.



고 연출과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흥행 신화를 쓴 한승석 음악감독의 음악도 인상적이다. 한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음악적으로는 수궁가의 원형에 집중했지만, 각색된 이야기에 맞는 새로운 시도와 소리도 선보였다. 예컨대 자라가 토끼를 등에 업고 용궁으로 향하며 부르는 ‘범피중류’ 대목의 경우 원작에서는 느린 진양조의 장중한 소리로 표현하지만, 귀토에서는 빠른 자진모리로 바꿔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토끼의 설렘을 강조한다. 큰 감동을 선사한 음악은 단연 1막 후반부에 등장하는 ‘망해가’ 장면의 ‘푸르르르르’다. 창극단원들이 일렬로 늘어서 ‘푸르르르르 푸우/싸르르르르 쏴아’ 하는 가사에 맞춰 노래하는데, 포개지고 이어지는 이들의 소리는 웅장하고 신비로운 바다 물결을 그려내며 감격스러운 장면을 연출한다.



한편 이번 공연은 3년의 리모델링을 마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펼쳐진 첫 공연이다. 정식 재개관은 9월이지만, 시범 운영 기간 중 귀토를 무대에 올리게 됐다. 해오름은 기존 광활했던 무대 폭을 줄이고, 음향 설비도 크게 손 봤는데, 이번 공연에서 그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공사 전 해오름은 지나치게 넓게 펼쳐진 구조로 인해 소리가 뭉치고 앉은 위치에 따라 그 선명도도 달랐다. 이번 공연에서는 창극단원 전원을 포함한 총 54명이 무대에 오르고 객원 연주자와 지휘자까지 15명의 악단이 동원됐는데, 공간은 이들의 떼창까지도 거슬림 없이 담아냈다. 앞으로 펼쳐질 다양한 장르의 무대를 기대하게 하는 공연이었다.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 사진=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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