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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비해 재정 양호 주장 난센스…日처럼 ‘잃어버린 30년’ 겪을 수도” [청론직설]

◆성명재 한국재정학회장

내상이 깊어지고 있는 재정 상황, 더 늦으면 치료도 못해

정치권, 현금 뿌리기로 편익을 사유화하고 비용은 사회화

올해 세수 증가는 기저효과, 추가 세수 국채 갚는데 써야

면세자 줄이고 지속 가능한 조세 체계 세워야 복지 가능

성명재 한국재정학회장이 21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절약해도 나랏빚을 감당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데 정부가 외려 물꼬를 터버렸다”며 “재난지원금 지급 등 확장 정책을 계속하면 재정 누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일본처럼 ‘잃어버린 30년’을 겪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오승현 기자




나랏빚 급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국내외에서 쏟아지고 있다. 최근 국회예산정책처가 공개한 국가 채무 시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가 채무(D1·중앙 정부+지방정부 채무)가 1초에 약 305만 원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 1인당 국가 채무는 이미 1,700만 원을 훌쩍 넘었고 내년에는 2,000만 원대로 치솟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재정 상태가 선진국에 비해 양호하다고 주장하며 30조 원가량의 2차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을 추진하는 등 확장 재정 기조를 멈추지 않고 있다.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인 성명재 한국재정학회장은 21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내상이 깊어지지만 지금은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있을 뿐”이라며 “한국의 국가 채무 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나쁘지 않다고 정부가 말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지적했다. 이어 “빚을 내 재난지원금 등을 지급하는 것은 미래 세대에 큰 부담”이라며 “정치인들이 표를 위해 편익을 사유화하고 비용은 사회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성 학회장과 만나 급증하는 국가 채무 문제와 재정 건전성 확보 방안 등을 들어봤다.

사진 설명


-문재인 대통령이 적극적인 재정의 역할을 계속 주문하고 있다.

△재정 확장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재정 적자의 심각성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재정이라는 게 편익은 지금 발생하지만 비용은 시간을 나눠서 돌아오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점들에 대한 고민이 없는 듯하다. 미래 세대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얘기다. 지금 정부 재정은 바닥 상태다. 재정이 부족하면 세금으로 조달하거나 적자 국채를 발행해 빚을 내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부동산 가격 급등에 따른 재산세 증가 등으로 일부 충당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세금을 더 걷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결국은 나랏빚을 내겠다는 생각인데 걱정이 앞선다.

-그러잖아도 국가 채무에 대한 우려가 높은 상황 아닌가.

△현 정부 들어 굉장히 빠른 속도로 국가 채무가 증가하고 있다. 올해 예산 기준으로 국가 채무 비율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50%에 육박하는데도 정부 여당은 2차 추경까지 추진하고 있다. 추경 규모가 30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데 우리나라 GDP를 약 2,000조 원으로 추산하면 GDP 대비 1.5%를 단번에 올리는 것이 된다. 한국의 국가 채무 증가 속도가 빠르다는 것은 국제기구조차 언급할 정도다. 공짜 점심은 없다. 그 부담을 누군가 감당해야 한다. 현 세대가 쓰는 것을 지금 부담하려면 세금으로 해야 하는데 정부는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럼 미래 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것인데.

△2차 전 국민 재난지원금만 보더라도 혜택만 언급할 뿐 비용에 대해서는 누구도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만일 국채를 일부 발행해 재원을 마련한다면 다음 세대에 부담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미래 세대는 지금 20대, 10대, 아니면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빚을 떠넘기는 것은 무책임하다. 특히 국채를 발행해 모든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나눠주는 식의 재정 지출은 다음 세대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정부와 여당은 한국의 재정 여력이 선진국에 비해 양호하다고 주장한다.

△재정 지출이 늘더라도 당장은 괜찮아 보일지 모른다. 국가 채무가 늘어나는 것은 풍선이 부풀어 오르는 것과 같다. 어느 정도까지는 괜찮아도 한순간에 터져버린다. 5~6년 뒤에 터지지 않는다고 안심하면 안 된다. 20~30년 뒤에 터진다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지금은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다. 내상이 깊어지고 있지만 증상이 나타나지 않을 뿐이다. 나중에 증상이 발현됐을 때는 치료하려고 해도 이미 늦어 손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될 수 있다. 이런데도 정부에서 국가 부채 수준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나쁘지 않다고 하는 것은 난센스다.

-왜 난센스라고 하는가.

△사람에 비유하자면 현재 한국은 선진국 문턱에 있는 30대 중반이고 선진국은 전성기를 지나 50·60대를 넘어가는 상황이다. 50·60대 때는 아무리 건강 관리를 잘하더라도 노화 현상 때문에 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차이를 무시하고 선진국은 상당히 나쁜 상황인데 우리는 그보다 좋으니 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30년 후에는 우리가 지금의 선진국 수준보다 훨씬 더 못한 처지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그런 조건·차이를 뺀 채 현재 결과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

-그런데도 정부는 재정 지출을 멈추지 않을 태세다.

△절약해도 나중에 감당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데 오히려 재정 지출의 물꼬를 터버렸다. 재정 상황은 앞으로 더 좋지 않아질 공산이 크다. 세금은 적게 들어오고 지출은 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금 감소는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 구조 변화의 영향이 크다. 소득세를 내는 젊은 층은 줄어들고 세금을 내지 않는 고령층은 급속히 늘어난다. 고령층이 증가하면 연금 지급 외에도 빈곤 지원 등으로 지출 확대가 불가피해진다. 현재 소득 최하위 20% 대부분이 고령층이라는 통계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확대 지출 정책을 계속하면 재정 누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확장 재정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세계 경제가 회복될 조짐을 보이면서 우리 경제도 나아질 것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경기 호전을 이유로 재정 확대를 계속하겠다고 한다. 확장 재정은 경기가 좋지 않거나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취하는 조치다. 경기가 호전되는 상황에도 확장 재정을 한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 같은 시기에는 세수를 빚 갚는 데 써야 한다. 되레 재정 지출을 늘릴 때가 아니다.

-과거 정부와 비교하면 어떤가.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물론 노무현 정부도 국가 채무가 악화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집권 초기에는 빚을 늘리더라도 정권 말기에는 균형을 달성하려고 애썼다. 우리가 지난 1997년 외환 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빠르게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재정 상태가 탄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초기부터 국가 채무를 가파르게 늘리고 있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코로나19를 국가 채무 증가의 이유로 제시하지만 사실은 이전부터 나랏빚이 급속히 늘었다.

-정부는 올해 세수가 좋아 2차 추경을 편성해도 괜찮다고 하는데.

△올해 1분기 세수 증가는 기저 효과의 영향이 크다. 올해 국세 세입 예산은 지난해 실적보다 적다. 올해 세입 예산은 지난해 10월에 결정됐는데 올해 경기가 좋지 않다고 예상해 낮게 책정한 것이다. 세수를 적게 잡아 남는 것이지 경제가 실제로 좋아져 세수가 늘어난 게 아니다. 세수 구조를 보더라도 소득세 등은 예상보다 많이 감소했는데 재산세 등에서 증가했다. 이는 일시적 현상일 뿐 지속 가능하지 않다. 주사를 맞아 반짝 기분이 좋아졌다고 해서 정말로 건강이 나아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재정이 악화할 경우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경제 위기가 왔을 때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면역력이 저하된다는 얘기다. 지금처럼 확장 재정을 계속하면 또 다른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과연 대처가 가능하겠는가. 일본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이 60%대 중반 수준이었는데 2020년을 기준으로 250%가 넘는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돈을 마구 뿌리는 확장 재정을 계속해 나랏빚을 급속히 늘린 탓이다. 우리의 고령화 속도는 일본보다 빠르다. 채무 증가 속도를 조절하지 않으면 국가 재정이 파탄 나고 일본처럼 ‘잃어버린 30년’을 겪을 수도 있다.

-지속 가능한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우선 40%에 육박하는 근로소득세 면제자 비중(2019년 기준 36.8%)을 낮춰야 한다. 면세자가 많을수록 세수 확보가 어려울 뿐 아니라 소득 재분배 기능도 약해져 정책 결정을 왜곡할 수 있다. 증세도 필요하다. 하지만 대기업·부자를 겨냥한 핀셋 증세는 곤란하다. 부자 증세는 당장 눈길을 끌 수는 있지만 세수 효과가 크지 않고 계속 유지할 수도 없으므로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 당장 쓰기 위한 증세에는 반대한다. 미래를 위한 증세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세원(稅源)을 넓히는 일이 중요하다. 저출산·고령화가 가속화하면 소득세는 대중세로서의 역할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소득세를 내는 인구 비중이 급감하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세금이 필요하므로 선진국처럼 부가가치세를 활용해야 한다. 부과 대상이 넓은 부가세를 인상하면 낮은 세율로 세수를 확충할 수 있다. 지속 가능한 조세 체계를 만들어야 복지 정책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권은 증세 방안에 대해 부담을 느낄 텐데.

△지금 정치권은 표가 떨어질까 봐 증세를 공개적으로 거론하지 않고 있다. 재난지원금 등의 재원을 국채로 충당하려고 하는 것 같다. 이는 편익을 사유화하고 비용은 사회화하는 것이다. 재난지원금이나 기본 자산 등의 명목으로 재정을 마구 풀어 혜택은 정치인들이 가져가고 비용 부담은 국민들에게 전가하겠다는 발상이다.

He is…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거쳐 2013년부터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국세청 국세행정개혁위 위원을 지냈으며 현재 국회예산정책처 예산정책자문위 위원, 기획재정부 세제발전심의위 위원을 맡고 있다. 올해 4월부터 한국재정학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임석훈 논설위원 sh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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