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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캄캄한 강을 건너는 우리의 자세

박광석 기상청장

박광석 기상청장




이번 주 집중호우로 남부지방에 많게는 600mm 이상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우리나라 연평균 강수량이 1,300mm 내외인 것을 고려하면 얼마나 많은 비가 내렸는지 실감이 날 것이다. 남부지방 곳곳에서 하천이 범람하며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 안타깝게도 인명 피해도 피할 수 없었다.

역대급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의 많은 비는 예보하는 입장에서도 두려움 그 자체다. 200mm, 300mm, 400mm 단순히 숫자가 바뀌는 게 아니라 그때마다 몇 곱절의 부담과 짐이 얹어진다. 눈 앞에 수많은 자료가 집중호우의 전조를 비출 때면 부담의 강도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물은 골짜기 틈에서 나와 돌과 부딪혀 으르렁거린다. 그 솟구치는 파도와 성난 물결과 슬퍼하며 원망하는 여울이 놀라 부딪히고 휘감아 거꾸러지면서 울부짖는 듯, 포효하는 듯, 고함을 지르는 듯, 사뭇 만리장성을 깨뜨릴 기세다.”



연암 박지원이 한밤중에 말을 타고 강을 건넜던 기록,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에 담긴 생생한 묘사다. 어두운 밤 중 강을 건넌다는 일은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위험이었으리라. 실제 연암은 “눈으로는 위험을 볼 수 없어 듣는 데만 온 정신이 팔려 무서워 부들부들 떨면서 걱정을 놓을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이내 연암은 감각을 통해 전해지는 공포에 동요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눈과 귀를 닫고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어 충격과 공포를 이겨내야 한다고 말이다.

위험을 예측해야 하는 사람에게도 두려움과 부담은 이겨내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우리는 두려움과 부담을 떨치기 위해 눈을 감는 선택을 할 수 없다. 오히려 눈을 크게 뜨고 다가오는 위험을 직시해야 하는 것이 숙명이다. 여름철 위험 기상이 다가올 때 기상청이 지상관측장비, 인공위성과 레이더는 물론 항공기와 선박 등을 총동원해 시시각각 변하는 기상 상황을 더 예민하게 지켜보는 이유다.

또 우리에게는 제대로 관찰하고 냉철하게 판단해야 할 의무가 있다. 현재의 조그마한 기미를 알아채지 못하면 국민이 겪게 될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지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악의 경우를 가정해야 하는 예보관은 온전히 뜬 눈으로 매 순간의 중압감과 긴장감을 마주하고 있다. 다가올 위험이 아무리 크고 두렵워도 날씨예보는 한시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올여름 앞으로도 우리는 위험 기상이라는 캄캄한 강을 몇 번이고 건너야 할지 모른다. 무사히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하고 다가오는 위기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필요하다. 기상청은 국민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파수꾼으로서 매 순간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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