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재장악한 후 지지율은 역대 최저치인 46%로 떨어졌고 집권 민주당은 미군 철수 과정에 대한 의회 조사를 예고했다. 탈레반의 득세로 극단주의 테러 조직 알카에다가 예상보다 빨리 부활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커지고 있다.
17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과 입소스가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탈레반의 아프간 수도 카불 장악 직전인 지난 13일에 조사된 지지율(53%)보다 7%포인트 급락했다. 여전히 미국인 다수(61%)가 아프간 주둔 미군 철수를 예정대로 완료해야 한다고 답했지만 예상보다 빠르게 악화한 아프간 상황을 확인한 후 여론이 조금씩 흔들리는 모습이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의 아프간 정책에 대한 긍정 평가는 44%에 그쳤다. 아프간 전쟁을 시작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47%), 아프간에 가장 많은 병력을 파견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51%),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맺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51%)보다도 낮다. 여론조사는 전날 미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오차 범위는 ±4%포인트다.
민주당 내 분위기도 좋지 않다. 정치 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민주당이 위원장으로 있는 상원 정보위원회와 외교위·군사위는 아프간 주둔 미군 철수 과정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백악관에 힘을 실어줬던 민주당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칼날을 겨눈 것이다. 밥 메넨데스(민주·뉴저지) 상원 외교위원장은 “미국의 명성이 긴급 상황에 처했다”며 “바이든 정부의 실책으로 끔찍한 결과를 목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바이든 행정부가 미군 철수를 무리하게 밀어붙였다는 정황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이날 뉴욕타임스(NYT)는 전현직 정부 관리들을 인용해 여러 정보기관이 7월까지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을 막을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점을 백악관에 보고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7월 8일 “(탈레반보다) 더 유능한 아프간 군대의 능력을 믿는다”고 말한 바 있다.
같은 날 바이든 대통령이 “베트남 전쟁 종식 같은 혼란스러운 미국인 철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17일 존 커비 국방부 대변인은 “카불 근처에 미국인 5,000~1만 명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탈레반의 진격을 예상하고도 자국민 안전 보장을 소홀히 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탈레반은 장악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특히 이날 탈레반의 실질적 지도자인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10년 만에 아프간에 다시 입성했다. 탈레반 공동 설립자인 바라다르는 지난해 9월 카타르 도하에서 시작된 아프간 정부와의 평화 협상에서 탈레반을 대표해온 권력자다. 탈레반은 바라다르를 중심으로 새 정부를 구성할 것으로 보인다.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조직인 알카에다도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군 기지 등에 수감됐던 알카에다 핵심 인사들이 지난 주말 풀려났다. 미국은 미군 철수 이후 알카에다가 미 본토를 위협할 수 있을 정도로 세력을 키우는 데 18~24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탈레반의 빠른 장악으로 이 기간이 짧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미 정보기관 내에서 커지고 있다.
현재 미국은 대혼란의 와중에 미국인과 미국에 협력한 아프간인들을 대피시키는 데 올인하고 있다. 대피 작전을 위해 탈레반과의 소통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언론 브리핑에서 “8월 31일까지 민간인 대피 완료를 목표로 한다”면서 “탈레반과도 일정표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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