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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지우고 싶은 디지털 흔적, 잊힐 권리를 말하다

■디지털 장의사, 잊(히)고 싶은 기억을 지웁니다

김호진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원래 그는 배우를 꿈꾸던 젊은이였고, 성격 상 무대 뒤가 더 편하다는 것을 깨달은 후 한동안 모델을 발굴하는 캐스팅 디렉터로 일 했다. 5학년 채원이(가명)도 그의 소개로 TV광고에 출연하게 됐다. 밝고 건강한 모습이 전파를 탔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안티 카페가 생겼다. 인신공격이 이어졌고, 신상 정보가 노출됐다. 아이는 불안에 시달리며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부모님은 광고를 내려달라고 했지만 권한 밖이었고, 경찰 신고도 당장의 해결책은 될 수 없었다. “이 댓글들, 우리가 지워보면 어떨까요?” 삭제 대상 댓글을 찾아 일일이 삭제 요청을 넣거나 사이트 관리자에게 신고해 삭제를 부탁하고, 댓글 작성자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내 삭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온라인 평판 관리 업체 ‘산타크루즈컴퍼니’의 김호진 대표가 국내 제1호 ‘디지털 장의사’가 된 결정적 계기다.

인간은 기억하는 능력이 있지만 동시에 ‘망각의 동물’이기도 하다. 잊음과 잊힘 또한 늙음과 낡음 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면서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흔적을 남기게 됐고 그 기록을 찾고 발견하기란 더욱 쉬워졌다. “우리에겐 잊힐 권리가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이 책은 저자의 사연과 각종 상담 사례를 기반으로 디지털 사회에서의 주의 사항을 짚어준다.



‘디지털 장의사’를 가장 많이 찾는 사람들은 한 해 평균 3,000명이 넘는 10대 청소년이었다. 채팅 앱에 접속했다가 속옷 사진을 보내는 바람에 약점을 잡혀 성적 촬영물 유포 협박을 받은 아이가 있었고, SNS에 올린 사진이 성적 합성물로 악용되거나 원조 교제를 한다는 누명을 입고 괴롭힘을 당한 아이도 있었다. 어른이라고 다르지 않다. 결혼을 3주 앞두고 전 남자친구에게 자신의 나체 사진을 받은 여성이 있는가 하면, 각종 흉측한 합성 이미지로 피해를 보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저자는 이들에게 “주눅 들 필요 없다”며 “분노의 화살을 맞아야 하는 쪽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라고 주장한다. 다만 자신의 딸에게도 당부하듯 “남자친구를 사귀어도 좋으나, 헤어질 때 휴대전화는 물론 컴퓨터와 모든 전자기기에서 사진을 완전히 지우고 확인하라”고 강조한다.

디지털 기록을 삭제해 달라는 모든 의뢰를 다 받아주는 것은 아니다. ‘n번방 사건’이 불거졌을 때 텔레그램 기록 삭제를 요청한 성착취 가해자들이 수백 명에 달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저자는 말한다. “인터넷은 진화의 흐름을 거슬러 기억이라는 저주를 걸었다. 이제 인간 본연의 능력인 망각을 디지털 세상에 전해줄 때다. 우리는 다시, 잊혀야만 한다.” 1만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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