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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끝나는 곳이 곧 산악인의 출발점"

◆박경이 국립산악박물관 관장

국내 첫 여성 동계 히말라야 등정

백두대간 종주 처음 기획·실행해

"즐거움이 산에 오르는 이유 전부

서로에게 生 맡기는 신뢰로 등반"

박경이 국립산악박물관장이 강원도 속초 사무실에서 자신이 처음 등정한 히말라야 아마다블람 원정 그림 옆에 놓고 당시 상황을 전하고 있다.




“히말라야 고봉을 정복했다고 하면 일반 사람들은 누가 정상에 섰는가에 주목합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함께 힘을 보탠 팀원들이 없었다면 누구도 정상에 설 수 없습니다. 팀워크가 중요한 이유지요. 산을 오르는 것은 혼자가 아니라 많은 이들이 함께 이뤄낸 결과물입니다.”

지난달 국립산악박물관 책임자 자리에 오른 박경이(56) 신임 관장은 27일 강원도 속초 사무실에서 진행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산을 오르는 것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산악박물관은 우리나라 산악의 역사를 알리고 등산을 대중화하기 위해 지난 2014년 세워진 국내 유일의 1종 국립박물관이다. 1종 박물관은 100점 이상의 유물과 학예사·전시실·수장고·세미나 실 등을 갖춘 시설 중 심사를 통해 국가 인증을 획득한 곳이다.

박 관장은 사실 박물관장보다 산악인으로 유명하다. 국내 여성 중 처음으로 겨울에 히말라야 봉우리를 정복했고 두 아이 엄마가 된 후에는 8000m 이상 14좌 중 하나인 가셔브럼2봉(8035m) 정상에 서기도 했다. 백두대간 종주 프로젝트를 완성한 사람도, 아시아인 최초 산악 스키 국제심판도 박 원장이다.

그는 산악인을 ‘없는 길을 찾아가는 탐험가’로 표현한다. 일반 등산객은 길이 있는 곳만 다니지만 산악인은 높은 곳과 어려운 곳을 지향하기 때문에 길을 개척하는 데 주력한다는 것이다. 박 관장이 “길이 끝나는 곳이 곧 산악인의 출발점”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산악인 하면 언제나 불의의 사고가 떠오른다. 고(故) 김홍빈 대장과 박영석 대장이 그랬다. 박 관장도 마찬가지다. 대학교 3학년 때 산에서 친한 선배를 잃었고 이후 1년 내내 술에 찌들어 살았다. 히말라야 첫 등반인 아마다블람 정상에 선배의 사진을 묻고서야 트라우마에서 겨우 벗어났다. 그는 “산악인들이 해외 원정을 떠날 때는 모두 못 돌아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며 “그들은 항상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왜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산에 오르냐는 질문에 수많은 이유가 돌아왔다. 더 높은 곳에 오르고 더 어려운 벽을 넘었다는 성취감, 목숨을 걸었을 때의 몰입감, 죽은 동료에 대한 책임감과 의리…. “물론 대가는 없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산에 오르는 산악인은 거의 없습니다. 즐거움과 행복이 산에 오르는 이유의 전부입니다. 오르면서 너무 고통스러워 ‘내가 미쳤지’ 하지만 내려오면 또 가고 싶은 마력이 있는 곳, 그곳이 산입니다. ”

박경이 관장이 전시관에 있는 산악 관련 자료의 내용을 알려주고 있다.


박 관장은 산을 오를 때 누가 정상에 섰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그보다는 어떻게 올라갔느냐를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8000m 이상 되는 산에 오르려면 식량, 의료 장비, 야영 장비 등 5톤가량의 짐을 가져가야 하고 역할을 어떻게 분담할지 계획도 세워야 한다”며 “한 사람이 정상에 서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팀워크가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산에 오르려면 하나의 로프로 절벽도 오르고 크레바스도 넘어야 한다. 상대방에게 나의 목숨을 맡긴다는 의미다. 박 관장은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 등반”이라며 “원정은 이러한 믿음이 쌓일 때 가능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 산에는 치유의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해외 원정을 마치고 돌아오면 설악산과 지리산의 초록과 계곡·그늘이 이들에게 다시 삶의 에너지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가 최근 산에 인공 구조물을 만드는 데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박 관장은 “처음 다닐 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산도 생물이라는 것을 잘 안다”며 “등산객을 위해 데크를 설치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꼭 이루고 싶은 목표를 가장 친했던 선배 박영석 대장의 평전 완성으로 잡고 자료를 모으고 있다. “박 대장은 후배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누구보다 그들을 사랑했던 선배였습니다. 주머니를 털어 후배들을 키웠죠. 박영석 평전은 그에 대한 작은 보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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