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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장도 오픈런…과열 우려 커진다

접이식 의자에 텐트족까지 등장

신진작가 청신 개인전에 장사진

1200만원 출품작 등 40여점 완판

화랑미술제선 177억원 어치 팔려

"나만 뒤처질라" MZ 등 패닉바잉

"다양성 결핍에 가치 떨어질 수도"

16일 오후 3시 VIP오픈과 함께 개막한 2022 화랑미술제를 관람하려는 입장객들이 접이식 낚시의자까지 동원해 장시간 대기하고 있다.




#16일 서울 강남구 학여울역 세텍(SETEC)에서 개막한 ‘2022 화랑미술제’에 캠핑의자와 낚시의자가 등장했다. 이날 3시부터인 VIP오픈에 먼저 입장하기 위해 오전부터 줄 선 관람객들이 의자까지 준비해 기다리며 그림 구매에 열을 올렸기 때문이다. 올해로 40회를 맞은 화랑미술제에 접이식 의자가 동원되기는 처음이다. 닷새 동안 열린 화랑미술제는 지난해 세운 역대 최대 매출액 72억 원의 두 배를 크게 상회한 177억 원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20일 막을 내렸다.

신진작가 청신의 작품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17일 새벽 종로구 평창동 프린트베이커리 전시장 앞에서 텐트를 치고 노숙하며 개점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제공=평창동주민


신진작가 청신의 작품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17일 새벽 종로구 평창동 프린트베이커리 전시장 앞에서 텐트를 치고 노숙하며 개점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제공=평창동주민


# 17일 새벽, 종로구 평창동의 전시장 가나포럼스페이스 앞에 텐트 수십 개가 줄지어 서는 바람에 인근 주민들이 출근길의 불편을 호소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전시 관람 및 작품 판매가 시작되는 젊은 작가 청신(41)의 그림을 구입 하려는 사람들이 전날 저녁부터 ‘텐트 노숙’을 강행한 것이다. 주최 측인 프린트베이커리가 SNS를 통해 사전홍보를 진행했고. 구입 문의가 빗발치자 ‘라이브방송’을 통해 “전시 개막과 함께 현장에서만 그림구매가 가능하다”고 밝힌 후 ‘오픈런’이 시작됐다. 200만원 안팎부터 최고 1200만원까지인 출품작 40여 점이 아침 나절에 완판됐다.

그림을 사기 위해 줄 선 사람들로 전시장 앞에 '텐트 오픈런'을 만든 청신 작가의 전시 전경. /조상인기자


명품가방과 고가의 시계, 한정판 스니커즈 구입에서나 봤음직한 ‘오픈런’이 미술시장에까지 옮겨왔다.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 이후 급격히

얼어붙었던 미술시장은 지난해 ‘보복소비’ 경향과 함께 구매력 큰 MZ세대(30대의 밀레니얼과 20대 후반의 Z세대를 아우르는 표현)의 신규 진입 등이 맞물리며 호황기에 진입했다. 2020년의 거래 총액 3291억원(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미술시장정보시스템 기준)을 3배 정도 웃도는 9223억원의 수직성장을 기록하며 ‘1조원 시장’을 내다보게 됐다. 국민 총생산 대비 미술시장 규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평균의 10분의 1 수준이던 것에서 탈출한 것은 반길 일이나 최근의 ‘과열’ 징후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같은 ‘그림 오픈런’에 대해 김상훈 서울대 경영대학장은 “자신만 뒤처질까 두려워하고 조급해하는 소비자들이 일종의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을 보이는 듯하다”면서 “미술품은 시간과 공급이 제한된 ‘희소성’이 가장 극단적인 분야라 더욱 증폭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부동산 급등을 지켜보던 30~40대가 ‘패닉 바잉’(공황매수)에 빠지고 ‘영끌’로 주택을 매입하는 것과 비슷한 양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림을 사기 위해 줄 선 사람들로 전시장 앞에 '텐트 오픈런'을 만든 청신 작가의 전시 전경. /조상인기자


젊은 작가로 분류되는 청신은 지난해 화랑미술제 등 아트페어를 통해 ‘완판’의 호응을 얻었다.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고, 목탄을 사용한 부드러운 선묘(線描)와 노랑 등 화사한 색감이 특징이다. 아직까지 미술관이나 평단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으나 대중적 수요가 높은 편이다. 미술품 거래는 ‘VIP사전 판매’가 통상적이지만 구매 의뢰가 폭주했고 “가격대가 낮은 젊은 작가라 기존 컬렉터층과 다른 대중적 소구력이 크다는 점을 고려해 이례적인 선착순 현장 판매를 진행했다”는 게 주최측의 설명이다. 전날 밤부터 대기했던 입장객들은 번호표를 받은 후 20분씩 전시를 관람한 후 1인당 한 작품만 구입할 수 있었다. 갤러리스트 A씨는 “고도의 마케팅전략일 수도 있다”면서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를 통해 값이 오를 작가로 ‘좌표’가 찍히면 취향과 상관없이 구매가 쏠리는 경향이 있는데 자칫 후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프린트베이커리 측은 “신진작가인 점, 미술향유에 대한 저변확대 등을 고려했다”면서 “작품 구입 후 ‘2년간 재판매 금지’ 조항을 계약서에 넣었다”고 말했다.

올해 처음 화랑미술제에 참여한 갤러리다온이 선보인 팅키 작가의 소품들은 걸자마자 순식간에 다 팔려 새로 걸기를 반복했다. 그림 옆에 붙은 빨간딱지는 팔렸음을 의미한다. /조상인기자


그림을 사기 위해 ‘돌진’하는 현상은 아트페어에서도 이어졌다. 화랑미술제는 ‘낚시의자 오픈런’이 펼쳐진 첫날 5시간 동안 45억원 어치의 작품이 팔렸다. 국제갤러리가 출품한 ‘단색화’ 대표작가 박서보의 작품이 4억2000만원(35만달러)에 팔렸고, 갤러리현대가 내 건 이강소의 작품이 2억원에 판매되는 등 ‘억대 작품’의 거래 소식이 이어졌다. 조현화랑에서는 김종학의 작품이 인기를 끌었고, 예화랑에서는 장승택의 작품이 ‘완판’됐다. 특히 ‘화랑미술제’는 신진 발굴에 방점이 찍힌 행사라 100만~300만원대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는 팔렸음을 뜻하는 ‘빨간 딱지’가 즐비했고, 상당수 갤러리에서 부스 전시작품을 바꿔 거는 ‘판갈이’를 목격할 수 있었다. 변지애 케이아티스츠 대표는 “20~3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세대의 관람객들이 인테리어용 소품부터 억대 미술품까지 두루 즐기며 구입하시는 모습을 보며 미술이 주는 ‘힐링효과’를 확인했다”면서 “미술품을 지나치게 ‘재테크’로만 접근하는 경향만 자제하면 좋을 것”이라고 짚었다. 반면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작가 B씨는 “일러스트와 만화캐릭터 화풍의 작품, 단색화 아류가 반복적으로 보이는 등의 현상은 걱정되는 지점”이라며 ‘다양성 강화’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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