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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스타의 신비주의…한국인 첫 마스터스 사진 없는 이유[골프 트리비아]

존스, 1930년 그랜드 슬램 달성 후 은퇴

친구들과 조용히 골프 즐기려 클럽 설립

휴대전화나 전자기기 휴대 엄격히 금지

1973년 출전 한장상도 카메라 반입 못해

오거스타 내셔널 10번 홀 그린에서 찍은 밤 하늘. 오거스타 내셔널이 마치 '골프계의 중심'이라고 표현한 듯하다. 출처=오거스타 내셔널




1940년 마스터스 대회 당시 보비 존스의 티샷. AP연합뉴스


1972년 일본 오픈 우승 후 부상으로 받은 자동차 위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한장상. 그는 이 우승으로 1973년 한국인 최초로 마스터스에 출전했다. 사진 제공=KPGA


마스터스 초창기 입장권. 1937년까지 대회 명칭은 '오거스타 내셔널 인비테이션 토너먼트'였다. 출처=오거스타 내셔널


리더보드의 빨간색(언더파)과 녹색(오버파) 숫자의 구분은 마스터스에서 비롯됐다.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전시된 마스터스 스코어보드. 김세영 기자


2019년 마스터스 우승 후 그린 재킷을 입고 트로피를 든 타이거 우즈. 출처=오거스타 내셔널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은 짙은 안개에 모습을 감춘 성과 같다. 회원이나 그들의 게스트가 아니고선 굳게 닫힌 성문을 통과할 수 없다. 1년 중 오거스타 내셔널이 일반에 공개되는 건 그들의 ‘특별한 잔치’인 마스터스가 열리는 1주일뿐이다.

매년 4월 초 ‘마스터스 위크’에 보여지는 오거스타 내셔널은 완벽 그 자체다. 페어웨이는 카펫처럼 디봇 자국 하나 없고 그린 옆 연못에는 때론 염료를 뿌려 푸른색으로 보이게 하며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새들의 지저귐도 스피커를 통해 들려준다. 챔피언스 디너, 파3 콘테스트, 그린 재킷, 캐디들의 흰색 점프 수트 등의 독창성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오늘날 골프 대회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갤러리 통제를 위한 로프, 코스 주변의 스코어보드, 언더파와 오버파를 쉽게 구분하기 위한 빨간색과 녹색의 숫자 등이 마스터스에서 출발했다.



신비주의와 철저히 계산된 완벽함은 오거스타 내셔널과 마스터스를 골프계 최고의 히트 상품이자 가장 파워 있는 모임으로 만들었다. 그 힘의 원천 중 하나인 신비주의는 언제부터, 왜 시작됐을까. 오거스타 내셔널을 만든 이는 ‘골프 성인’으로 추앙 받는 보비 존스(1902~1971년)다. 그는 1930년 당시 4대 메이저 대회였던 영국·미국의 오픈과 아마추어 대회(US 오픈, 디 오픈, US 아마추어, 디 아마추어 챔피언십)를 모두 제패하는 ‘그랜드 슬램’을 최초로 달성한 뒤 홀연히 은퇴를 선언했다. 그의 나이 불과 28세 때의 일이다. 프로로 전향한다면 엄청난 돈을 손에 쥘 수도 있었지만 그는 아마추어로서 명예를 택했다.

존스는 자신의 은퇴를 설명하면서 “골프 대회에서 경기를 하는 건 마치 케이지 안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유명 인사였지만 대중 앞에 서는 걸 싫어했다. 팬들의 이목을 피해 친구들과 조용히 골프를 즐기고 싶었던 존스에게는 자신만의 ‘은밀한 장소’가 필요했다. 존스는 친구이자 뉴욕의 부유한 금융업자였던 클리포드 로버츠와 손을 잡고 그들만의 ‘골프 캐슬’을 만들기로 한다.

코스 부지를 물색하던 존스와 로버츠는 오거스타의 육묘장이었던 부지를 낙점했다. 그곳엔 묘목원이 문을 닫으면서 남겨진 관목과 나무들이 가득했다. 4월의 오거스타 내셔널에 진달래와 목련 등 각종 꽃이 만개하는 이유 중 하나다. 존스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설계가 앨리스터 매켄지를 초빙해 1931년 공사를 시작했고 2년의 공사 끝에 1933년 오거스타 내셔널이 탄생했다. 개장 1년 후인 1934년 제1회 마스터스가 열렸다. 초창기에는 마스터스가 아닌 ‘오거스타 내셔널 인비테이션 토너먼트’였다. 창설자인 존스가 마스터스라는 이름은 너무 거만하다며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존스의 반대가 누그러진 1938년부터 마스터스라는 명칭이 사용됐다.

마스터스는 자신들의 신비주의를 극대화하기 위한 방편 중 하나로 갤러리와 게스트 뿐만 아니라 회원, 직원 등의 휴대전화나 기타 전자기기의 휴대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이 영향 탓에 역사적인 한국인 최초의 마스터스 출전 사진은 한 장도 없다. 어떤 사연일까. 때는 1973년의 일이다. 당시 한국인 프로 골퍼 중 최고의 기량을 뽐내던 한장상(82·현 한국프로골프협회 고문)은 1972년 일본 오픈 우승자 자격으로 이듬해 마스터스 출전권을 얻었다. 2003년 한국 선수로는 두 번째로 마스터스에 출전했던 최경주(52)보다 무려 30년 앞선 일이다. 한장상도 오거스타 내셔널과 마스터스에 대한 명성을 익히 들었던 터라 다른 외국 대회 출전 때와는 달리 카메라를 들고 비행기에 올랐다. 화요일 새벽 3시에 오거스타에 도착해 호텔에서 잠시 눈을 붙인 뒤 이른 아침 오거스타 내셔널을 찾은 그는 입구에서 경비에게 제지를 당했다. 한장상은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기억했다. “가드가 오라고 손짓하더니 카메라 반입이 안 된다고 해. 내가 ‘플레이어’라고 했더니 ‘네가 플레이어인 건 안다. 하지만 허가 받은 사람 외에 누구도 카메라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오거스타 내셔널에서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어.”

올해 마스터스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의 깜짝 출전 여부로 인해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우즈가 오거스타 내셔널에 도착할 때까지도 그의 행보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었다. 우즈의 요트 이름은 ‘프라이버시’다. 마스터스를 창설한 존스와 그 무대를 가장 좋아하는 우즈, 두 레전드의 공통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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