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외무성이 유럽연합(EU)이 대북 제재를 단행하자 ‘미국의 꼭두각시’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북한 선전매체는 한미연합훈련과 관련 “핵전쟁 발발의 현실화를 앞당기고 있다”며 맹비난했다. 이런 가운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 제재위원회 출신의 한 전문가는 북한의 핵실험 준비 징후가 포착됐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북한 외무성의 조선유럽협회는 23일 ‘유럽동맹(EU)은 미국의 꼭두각시 노릇을 그만둬야 한다’는 제목의 글에서 “자위권은 주권국가의 합법적 권리”라며 비난했다. 외무성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는 “정상적인 사업의 일환으로서 지금까지 주변 국가의 안전에 어떤 위협도 준 것이 없다”며 “우리의 정정당당한 주권 행사에 제재까지 한 것은 난폭한 주권 침해 행위”라고 주장했다. EU는 앞서 지난 21일 북한의 탄도미사일 활동에 필요한 자금 조달에 관여한 북한 기관 4곳과 개인 8명을 독자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 바 있다.
북한 외무성은 이와 더불어 ‘우크라이나 민간인 학살’과 관련 러시아 측 주장에 동조하며 미국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북한 외무성은 전날 “사람들은 민족 말살이 화제에 오르면 아메리카대륙 원주민들을 말살하고 그 시체 위에 생겨난 미국의 역사부터 상기한다”며 “과연 미국이 민족 말살이라는 문구를 입에 올릴 자격이 있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그들에게 있어 아메리카대륙의 원주민인 인디언들은 사람이 아니었고 그들이 살고 있던 땅은 동물들이 서식하는 무인지대나 다름없었다”며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민족 말살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위선의 극치”라고 비난했다.
북한 선전매체는 한발 더 나아가 한미연합훈련을 겨냥해 거친 발언도 쏟아냈다. 대외선전매체인 ‘통일의메아리’는 23일 논평에서 “미국과 남조선 군부가 합동군사연습의 일상화로 노리는 것은 우리의 방심과 해이를 유도하고 선제타격의 기회를 엿보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남조선-미국 합동군사연습의 일상화가 핵전쟁 발발의 현실화를 앞당기고 있다”며 “위험성과 엄중성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선전매체 ‘메아리’ 역시 “우리 공화국을 겨냥한 위험천만한 군사적 행위가 가증될수록 조선반도의 긴장상태는 더욱 격화될 것”이라며 “궁극에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적 후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이 대외적인 발언 수위를 높이는 것과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핵실험 준비에 들어갔다는 평가도 제기됐다. 후루카와 가쓰히사 전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위 전문가 위원은 북한 함북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과 관련 “지난 19∼20일 촬영한 상업용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3번 갱도의 새 입구 주변의 터가 확장되고 지반이 평평해졌으며 도로를 건설 중인 정황이 포착됐다”고 밝혔다. 그는 “3번 갱도 새 입구의 추가 굴착을 위해서는 중장비 차량이나 계측 지원 장비를 내부로 반입해야 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새 입구 주변 땅의 표면을 단단하게 하는 평탄화 작업을 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이 지난 1월 ICBM·핵 실험 유예(모라토리엄) 철회 의사를 밝힌 뒤 7차 핵실험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평가한다. 이에 따라 풍계리 핵실험장을 주목하고 있는데 최근 위성사진에서 기존 폐쇄 조치했던 3번 갱도의 복구 징후 등이 지속 포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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