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내내 북반구를 뒤덮은 가뭄이 흉작 피해로 이어지며 미국과 유럽 전역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힐 기세다. 세계 시장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스페인산 올리브유 생산량이 30% 가까이 줄어들고 미국산 목화 생산량도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뭄으로 공급망도 타격을 입으면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가까스로 진정세를 보이던 식량과 상품 가격에 다시 비상등이 켜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현지 시간) 시장조사 기관 민텍의 자료를 인용해 스페인산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의 시장가격이 최근 한 달 사이 7% 올랐다고 보도했다. 지나치게 고온 건조했던 여름 날씨 탓에 스페인의 올리브 수확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반영된 결과다. 민텍의 카일 홀란드 분석가는 “몇 주 안에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한 올리브유 생산량은 30% 가까이 줄어들 것”이라며 현재 1㎏당 3.80유로인 올리브유 가격이 4~4.25유로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제올리브유위원회에 따르면 스페인이 전 세계 올리브유의 약 46%(2016~2021년 평균)를 생산하는 가운데 이탈리아·포르투갈·튀니지 등 주요 올리브유 생산국에서도 흉작이 예상돼 가격 상승이 불가피해 보인다.
세계 수출량의 35%를 담당하는 미국의 목화 생산도 남서부 지역의 가뭄으로 급감할 위기에 처했다. 미 농무부는 올해 목화 생산량이 전년 대비 28% 줄어들어 2009년 이후 최저치인 1260만 베일(1베일=약 217㎏)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목화 선물 가격은 19일 기준 파운드당 1.16달러를 기록해 0.8달러대였던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하면 약 145% 높은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나일론 등 석유계 합성섬유와 비슷한 흐름을 보이는 목화 가격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가 상승으로 5월 16일 최고치(1.33달러)를 찍은 후 안정세로 접어들었지만 최근 흉작 탓에 다시 치솟고 있다. WSJ는 “목화 흉작에 따른 경제적 고통은 목화 저장 창고, 제분소를 비롯한 (남서부 지역) 전역으로 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산 에너지의 대체 발전원을 찾느라 여념이 없는 유럽 각국은 곳곳의 강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고전하고 있다. 수력발전이 직격탄을 맞은 것은 물론 냉각수 부족으로 원전발전도 여의치 않다. 러시아산 가스를 석탄발전으로 대체하려는 독일은 라인강의 수위가 19일 현재 35㎝까지 줄어들자 석탄 운송도 지연되고 있다. WSJ는 “북반구의 가뭄이 공급난을 심화하고 식량과 에너지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며 “이미 (전쟁으로) 타격을 입은 전 세계 무역 시스템에 추가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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