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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 “조선업 구조재편 게을리하면 ‘반짝호황’…자율운항선박 개발해야”

◆이신형 대한조선학회장(서울대 교수)

수소·원자력 활용 친환경 선박 기술로 中 추격 따돌리고

정부 칸막이 행정 벗어나 원천기술 R&D 지원 집중해야

대우조선, 과감한 다운사이징 통해 하루빨리 주인 찾고

디지털·탈중앙화 시스템 주도권 선점 미래성장동력으로

대한조선학회장인 이신형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가 22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조선 업계가 수주 특수를 누리고 있지만 신기술 선박 개발과 구조 재편을 게을리하면 ‘반짝 호황’에 그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중국의 공세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던 한국 조선 업계에 모처럼 훈풍이 불고 있다. 국내 조선소들은 올 상반기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의 45%를 수주하면서 11년 만에 최대 실적을 올렸다. 하지만 생산 인력 부족과 원자재 가격 급등은 수익성 개선이 절실한 조선 업계의 발목을 잡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 업체 노조의 장기 파업 사태는 조선 업계에 구조 조정이라는 무거운 숙제를 남겼다. 대한조선학회장을 맡고 있는 이신형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올 들어 국내 조선 업계가 수주 특수를 누리고 있지만 신기술 선박 개발과 구조 재편을 게을리한다면 ‘반짝 호황’에 그칠 것”이라면서 “차제에 초격차 기술 확보와 핵심 인력 양성을 통해 중국의 추격을 완전히 따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또 “국내 조선 업계가 경기 변동 국면마다 눈앞의 경영 성과를 내는 데 급급하다가 경쟁력을 잃은 것도 사실”이라면서 “기업과 정부가 힘을 합쳐 자율 운항 선박과 친환경 선박 개발 등으로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데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 업계가 모처럼 수주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한국 조선업은 올 상반기 수주 실적에서 4년 만에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의 경우 상반기 발주량의 70%를 휩쓸었을 정도다. 국제 환경 규제 강화로 고부가가치의 친환경 선박과 LNG선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며 중국을 따돌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만성적인 인력난과 원자재 값 부담으로 모처럼 찾아온 수주 호기를 살리지 못할까 걱정스럽다. 이대로 가면 생산 인력 부족으로 수주한 물량조차 제대로 처리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마저 우려되고 있다.

-정부도 최근 조선 업계를 지원하기 위해 인력 대책을 내놓았는데.

△정부 대책은 외국인 인력 확보를 앞세우고 있어 미봉책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과도한 임금격차가 중소 조선 업체의 인력난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중소 업체들은 신기술을 개발하고 싶어도 인력을 확보하지 못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 조선 업계의 씁쓸한 단면이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걸음마 단계인 자율 운항 선박 기술 싸움에서 우리가 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경쟁국과 격차를 벌리면서 글로벌 표준 기술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마저 설계, 기술 개발 등 핵심 역량 부족으로 어려운 실정이다.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조선업도 중국의 맹추격에 시달리고 있다.

△일단 조선업은 국내 산업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대(對)중국 우위를 되찾아오는 데 성공했다. 중국의 경우 인건비가 많이 오른 데다 기술과 품질관리에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이 고부가가치 선박을 만들 능력을 갖추고도 저가 수주를 의식해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 않았다는 관측도 나온다. LNG선은 중국과 기술 격차를 유지하고 있지만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분야다. 우리가 초격차 기술 확보를 통해 더 이상 중국을 경쟁자로 삼지 말고 고객으로 만들어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서 중국이 우리 기술을 가져다 쓰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우리가 애써 LNG선을 수주해도 로열티 지급 규모가 적지 않은데.

△통상 LNG선 한 척당 판매 가격의 5%가량이 화물창(보관 탱크) 기술료로 빠져나간다. 우리도 이미 관련 기술을 개발했지만 본격 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선주들이 우리가 독자 개발한 기술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조선·해양 관련 기관들의 지원과 선사들의 발주를 통해 수주 실적이 쌓이면 해외 기술에 의존하지 않는 날이 올 것이다. 이런 점에서 프랑스 설계 업체인 GTT의 화물창 기술 개발 의지는 본받을 만하다. 이 회사는 1960년대부터 끊임없이 신기술을 선보이며 시장을 독점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꾸준한 원천 기술 개발의 힘이다.

-우리의 조선 분야 연구개발(R&D)의 현주소는 어떤가.

△정책 당국이 연구비 집행 과정에서 낡은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우리의 한 해 R&D 예산은 약 30조 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계 2위의 규모다. 그런데 산업통상자원부가 연구비를 직접 기업들에 나눠주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대부분 산업이 세계 톱 10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도 정부에서 ‘감 놔라 배 놔라’식으로 기술 개발을 지시하고 자금을 뿌린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보다는 현장 수요에 맞춰 R&D 과제를 만들어내야 한다. 새로운 개념의 원천 기술 개발에 지원을 집중하고 금융 지원, 세제 혜택, 규제 개혁 등을 통해 R&D 투자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업계도 현실 안주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많은데.

△국제해사기구(IMO)는 최근 모든 선박에 대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최소 40% 줄이는 규제를 내놓았다. 그런데 우리 업계는 기존의 선박은 논외로 치고 신조선을 대상으로 40%만 줄이는 데 머물러 있다. 세계 1등이라면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 도출이라는 신념을 갖고 에너지·물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미래 먹거리를 저절로 확보하는 셈이다. 이런데도 당장 눈앞의 40%를 맞추는 데 급급해 하고 있느니 답답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조선 산업은 평생 짐만 지고 다니는 노새 신세나 마찬가지다. 과감히 판을 깨고 시장을 주도하는 혁신 정신이 절실하다.





-조선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정부도 과거 개발 시대의 지원 방식에서 벗어나 신기술 개발을 위한 금융·세제 혜택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도 국적 선사에 대한 혜택을 늘려 국산 기자재 채택과 신기술 개발을 적극 권장해야 한다. 특정 산업에 대한 지원 편중 현상도 개선해야 할 문제다. 국가 미래를 좌우하는 연구비 예산이 특정 분야에 과도하게 몰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이 직접 부산 녹산공단이나 목포 대불산단 등을 방문해 조선 관련 산업의 중요성을 눈으로 확인하고 정책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

-일선 부처의 칸막이 정책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현재 산업부에는 조선해양플랜트과가 관련 업무를 챙기고 있다. 하지만 부처별로 쪼개져 있는 해사 산업 관련 업무를 한곳으로 통합해야 한다. 싱가포르의 경우 범정부 차원에서 허브 항구를 목표로 자율 운항 선박 연구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조선과 해운·항만이 함께 가야 진정한 해사 산업의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있다.

-조선 산업 구조 조정이 절실하다는 목소리 또한 높은데.

△산은은 22년에 걸쳐 대우조선해양에 약 12조 원의 국민 세금을 투입했다. 그런데도 최근 10년간의 누적 순손실이 7조 7446억 원에 달한다. 별로 나아진 게 없으니 산은 책임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대우조선이 적자 수주를 주도하면서 업계 전반의 물을 흐리고 있다는 점이다. 대우조선은 채권단의 눈치를 보느라 이익보다는 매출에 더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대우조선은 다운사이징을 거쳐 하루빨리 진짜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 일각에서는 삼성중공업과 합병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더 이상 노조 눈치를 보거나 지역 정치를 의식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다만 대우조선이 쌓아온 소중한 인프라를 한번에 날려버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조선 산업의 미래 경쟁력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미래 조선 산업의 방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디지털화와 친환경 전환, 그리고 탈중앙화다. 자율 운항 선박의 경우 결국 데이터 싸움이다. 중앙 통제가 아니라 블록체인 기반의 운영 체계를 통해 위험을 분산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친환경 선박의 최대 목표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의 확보다. 단지 온실가스를 없애자는 차원에서 벗어나 미래에도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을 도출해야 한다. 암모니아나 수소·원자력 등을 연료로 하는 친환경 선박도 곧 선보일 것이다. 에너지원을 만드는 과정부터 후처리, 부작용까지 고려해 폭넓은 공감을 이끌어내야 한다.

-조선 업계 스스로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조선 업계는 현실 안주와 근시안적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판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미래 경쟁력은 자율 운항, 친환경 선박에서 나온다. 이제 할 일은 자율 운항 시스템 기술의 주도권을 선점하고 우리의 기술이 활용되도록 패러다임 전환을 선도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단순한 선박 수송 수단이 아니라 해양 공간 전체를 활용하는 산업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방위산업 측면에서도 조선업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데.

△최근 국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해군 발전 방향으로 유무인 복합체계가 제시됐다. 맞는 방향이지만 너무 서두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미국의 경우 기뢰를 제거하는 소해함 개발에도 20~30년씩 걸린다. 미국보다 기술력이 낮은 우리가 4~5년 만에 따라잡겠다는 것은 무리한 목표다. 자칫 부실 사업으로 흐르거나 이권 나눠 먹기로 전락할 수 있다. 이제는 사업 초기부터 수출을 목표로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방산 리더’의 꿈을 실현해야 한다. 그래야 미국이나 스웨덴처럼 방위산업 집중 육성으로 산업 전반의 경기를 활성화하는 분수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He is…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나 상문고와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아이오와대에서 기계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일본 과학기술청 펠로 연구원과 미국 플루언트사 수석엔지니어를 지냈다. 2007년부터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현재 영국 왕립조선학회와 미국조선학회의 석학 회원, 한국공학한림원의 일반 회원이다. 올 1월부터 대한조선학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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