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위기를 맞은 레바논에서 은행들이 외화 예금 인출을 제한하고 있는 가운데, 한 여성이 장난감 모형 총을 들고 강도 행세를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4일(현지 시각)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께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블롬은행 지점에 무장한 여성이 들이닥쳤다.
이 여성은 책상 위로 올라가 권총을 들고 “병원에서 죽어가는 언니의 계좌에 든 돈을 찾으러 왔다”라며 “나는 누군가를 죽이거나 쏘려는 게 아니다. 나의 권리를 주장하러 왔다”고 소리쳤다.
이 여성과 함께 은행에 난입한 ‘예금자 절규’ 단체의 운동가들은 은행 곳곳에 휘발유를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이겠다고 위협했다.
결국 은행은 이 여성에게 1만 3000달러(약 1080만원)를 인출해 줬다. 1만 2000달러는 미국 달러화로, 나머지는 레바논 파운드로 건넸다고 한다. 여성은 검정 봉투에 돈을 담은 뒤 일행과 함께 깨진 유리를 통해 건물 뒤쪽으로 도망갔다.
강도 행각을 벌인 이 여성의 실명은 살리 하피즈로 밝혀졌다.
그는 실제로도 이 은행의 고객이었다고 한다.
하피즈는 이후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언니의 암 치료비를 위해 이 같은 일을 벌였다고 털어놨다. 며칠 전 은행 지점장을 찾아가 “언니가 죽어간다”라며 가족이 예치한 2만 달러(약 2780만원)를 출금하게 해 달라고 호소했으나 “한 달에 200달러(약 27만원) 정도만 파운드화로 지급할 수 있다”는 답을 들었다고 한다.
그는 “잃을 것이 없었고 언니를 살리기 위해 신장을 팔아야 할 지경이었다”고 했다. 하피즈는 또 당시 허리에 찼던 권총은 사실 조카의 장난감 총이었다고 주장했다.
현지에선 이들을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영웅 취급한다고 매체는 전했다.
레바논의 경제난은 2019년부터 시작돼 3년간 계속되고 있다. 현지 화폐인 레바논 파운드화 가치가 90% 이상 폭락해 레바논 은행들은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를 막기 위해 고객의 예금 인출을 제한하는 상황이다. 이런 사태가 장기화하자, 레바논 주민들이 은행에서 돈을 찾기 위해 항의하거나 난동을 피우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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