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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24]북핵 위협과 거안사위(居安思危)

이면우 세종연구소 부소장

日, 고도의 경제성장 폐해 재조명

소속 집단의 이익만 우선시 하며

당면한 위기 원인 분석엔 눈감아

'북핵 5대 조건 법제화' 직시해야





최근 일본에서는 고무로 나오키 교수의 ‘위기의 구조: 일본사회붕괴의 모델’이 다시 출간되면서 주목 받고 있다고 한다. 맨 처음 출간된 것이 1976년이니 46년 만이다. 이처럼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다시 복간됐다는 것은 그 내용이 현재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초판본이 1976년에 나왔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의 출발점은 1960~1970년대의 일본 사회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들로 부각된 1960년대 말의 대학 분쟁과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가 연루된 록히드 사건이다. 고무로 교수의 문제 의식은 바로 대학 분쟁의 주동자나 국회에서 록히드 사건의 관련자들로 증언대에 선 사람들이 사회의 무법자나 낙오자가 아닌 엘리트 또는 선량한 시민들임에도 그러한 일들을 벌인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결국 이를 사회적 맥락에서 찾아 설명하고자 한 것이었다. 고무로 교수의 설명 요지는 전후 일본이 달성한 고도의 경제 성장이 사회적으로 안겨준 구조적 아노미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패전과 천황의 인간 선언에 의해 단순 아노미에 빠졌던 전후 일본에서는 고도의 경제 성장 달성 이후 역설적으로 패전의 상처를 달래주던 전통의 촌락 공동체가 붕괴 및 해체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기업과 같은 기능집단이 그것을 대신하는 공동체로 변화하면서 구조적 아노미 현상이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수단에 지나지 않았던 그 집단의 기능 및 기술이 목적화된다는 것인데 이것이 맹목적 예정조화설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소속 집단의 이익만이 우선시되며 다른 공동체에 대한 배려나 합리적 판단은 찾기 어렵게 되고 개인은 멸사봉공의 노동자가 된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에밀 뒤르켐은 아노미의 귀결로서 자살과 파괴 충동을 제시하는데 고무로 교수는 일본 사회에 위기를 가져올 수 있는 파괴적 사건인 대학 분쟁과 록히드 사건 등의 배경으로 이러한 구조적 아노미가 자리하고 있다고 제시했던 것이다.



여전히 지속되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에 대한 설명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여전히 당면하고 있고 풀어나가야 할 문제의 핵심을 다룬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사회제도나 관습에 변화를 주기 위해 ‘계몽된 개인’이나 다원주의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인데 전통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일본에서 이를 찾거나 만들기 어렵다는 주장인 것이다.

고무로 교수의 문제 제기에서 더욱 흥미롭고 중요한 점은 사회과학적 분석의 필요성에 대한 강조이다. 정치가나 언론이 아노미나 기능집단의 공동체화, 그리고 맹목적 예정조화설에 매몰돼 제대로 현실을 보지 못하고 판단하지 못하는 것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문제와 관련된 희생양을 찾는 식의 분석이 아니라 그 문제의 원인이 어디서 왔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사회제도의 변화 등을 분석하는 사회과학적 접근을 주장한다. 1970년대의 논의이니 그 이후 연구방법론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을 반영하지 못한 점이 있다고 해도 여전히 매우 타당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그 문제 발생의 요인 및 요인들 간의 연관성에 대한 탐구가 우선적인 작업이다. 그러한 탐구가 우선적으로 정확히, 종합적으로 이루어진다면 희생양 가리기는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자신의 입장만을 소통 없이 외치는 꼴이 될 것인데 가장 중대하고 심각한 폐단은 문제가 만들어낼 위기적 측면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감추게 만든다는 점이라고 하겠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북한이 최근 핵무기 사용 5대 조건을 법제화하면서 북핵 위기가 더욱 악화하고 있다. 물론 윤석열 대통령이 이날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의 핵우산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미국과 함께 마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북한의 위협에 대비할 것을 강조했다. 문제는 이런 위기의식이 국민들에게까지 확산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편안할 때에도 위태로울 때의 일을 생각하라는 거안사위(居安思危)의 사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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