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민생회의가 열렸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삼중고에 최근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채권시장 불안까지 겹쳐 이 회의에서 발표될 정책에 온 이목이 집중됐다. 하지만 비상 대책도, 민생 대책도 없는 정부 대책에 실망한 사람이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채권시장의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해 정부는 이미 50조 원 이상 긴급 유동성 자금 지원을 발표했다. 한국은행 역시 3개월간 한시적으로 6조 원 규모의 환매조건부채권 매입을 실시하고 은행채 등을 은행이 한국은행에서 대출받을 때 담보로 인정하는 적격담보증권에 포함시키는 금융 안정책을 내놓았다. 이에 국고채와 회사채 금리 모두 하락하며 채권시장의 불안은 일단 잦아들었다. 하지만 국고채 대비 회사채의 상대적 위험도를 나타내는 신용스프레드(3년물 무보증 AA- 회사채 금리와 국고채 3년물 금리차)는 13년 만의 최고치를 나날이 경신하며 130bp(1bp=0.01%포인트) 이상에 머물고 있어 이런 사태의 재발 가능성을 우려하게 한다.
무엇보다 고금리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뚜렷한 물가 안정 신호가 나타나지 않는 데다 10월 기대 인플레이션은 오히려 전달보다 소폭 상승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시장금리가 오르면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도 더 높아진다. 반면 고금리로 경기 둔화가 이어지면 기업의 매출이나 영업이익은 더 악화돼 회사채 원금 상환이나 차환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레고랜드 사업과 같이 미래 수익을 기반으로 부동산 개발사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경우 이런 위험이 더 크다.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2013년 말 35조 2000억 원에 그쳤으나 그동안 저금리 및 부동산 시장 활황으로 세 배 이상 증가해 올 6월 말에는 112조 2000억 원에 이르렀다. 현재와 같은 부동산 시장 침체가 지속되면 실제 개발 수익이 자금 조달시 기대했던 수준에 크게 못 미쳐 부동산 PF의 연쇄 부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부동산 PF나 비우량 회사채 등을 중심으로 부실화가 본격화되면 최근 채권시장에서 보듯이 우량한 기업조차 자금줄이 막히는 신용 경색이 초래될 수 있다. 벤 버냉키 전 미 연준 의장에게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안겨준 일련의 연구들은 작은 금융시장의 변화가 경기변동을 증폭시키는 금융가속(financial accelerator) 기제를 강조하며 신용 경색이 실물 부분을 크게 위축시킬 수 있음을 보인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바람직한 정부의 역할은 금융시장 모니터링 강화, 금융기관 리스크 요인 지속 점검과 함께 신용 경색 조짐이 보일 때 신속한 시장 안정 조치를 취해 금융 불안 요인이 실물 분야로 전이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등 금융 당국의 긴밀한 공조가 필수적이다. 다만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업 지원은 성장성 및 회생 가능성이 높은 기업으로 제한해야 한다. 애초에 경쟁력이 낮아 자연도태되는 한계기업도 지원한다면 기업의 재무 건전성 관리 유인을 낮추는 도덕적 해이를 야기할 뿐이다.
또 여전히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는 물가 안정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국은행의 금융시장 안정 조치가 물가 안정 의지 퇴색으로 읽힐 때 금융시장은 다시 혼란에 휩싸일 수 있다. 한국은행이 구원투수로 나서는 때는 금융 불안 요인이 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매우 높은 때로 한정하고 정부 고위관계자들이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발언을 삼가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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