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카자흐스탄은 불확실성으로 한 해를 시작했다. 1월 초 소요 사태로 대규모 사상자가 나왔다. 2월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겹치면서 러시아와 세계 최장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카자흐스탄은 대내외적 난제를 마주해야 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독립 30년 역사상 전무후무했던 사건들은 카자흐스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올해를 ‘새로운 카자흐스탄(New Kazakhstan)’의 출발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해로 만들었다.
2013년 9월 카자흐스탄에서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을 밝혔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올해 9월 코로나19 발생 후 최초 방문국으로 다시 카자흐스탄을 선택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세계 전통 종교 지도자 회의’ 참석을 위해 카자흐스탄을 방문했다. 10월에는 카자흐스탄 주도 ‘아시아교류·신뢰구축회의(CICA) 정상회의’에 러시아·튀르키예 등 10여 개국 정상들이 참석했고 이와 별도로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상임의장이 카자흐스탄을 찾았다.
대내적으로는 ‘공정하고 새로운 카자흐스탄’ 건설이 화두다. 현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을 중심으로 독과점적 정치·경제 구조의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조기 대선 승리로 토카예프 대통령이 2029년까지 연임하게 됨에 따라 카자흐스탄 정국은 1월 사태를 뒤로하고 빠르게 안정을 되찾고 있다.
카자흐스탄이 직면한 대내외적 도전은 오히려 역내 및 세계 지형에서 카자흐스탄이 차지하는 위상과 중요성을 잘 말해준다. 카자흐스탄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중앙아시아의 요충지로, 지정학적으로 중요할 뿐 아니라 세계 9위의 넓은 영토에 원유·가스·광물 등 풍부한 부존자원을 보유하고 있어 경제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이에 더해 러시아와 중국과 이웃해 있으면서도 서구권은 물론 어떤 국가들과도 협력한다는 균형적인 다변화 외교 노선을 견지하고 있어 매우 특별하기까지 하다.
이런 카자흐스탄의 격변 속에 한국이 있다. 올해는 한·카자흐스탄 수교 30주년으로 매우 뜻깊은 해다. 그간 한국은 카자흐스탄 국민들의 삶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한국 자동차와 휴대폰·가전제품을 어디서든 볼 수 있고 한류는 카자흐스탄 젊은이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전 세계적 공급망 교란과 교역 위축의 어려움 속에서도 올해 양국 간 교역액은 역대 최대치인 2019년 42억 달러를 경신해 6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앞으로 상호보완적 경제구조를 가진 양국의 경제협력 잠재력은 훨씬 더 크다. 자동차, 인프라 건설, 에너지, 희유 광물 자원 분야는 물론 정보통신기술(ICT), 스마트 농업 등 첨단 신산업 분야에서의 협력도 기대된다. 카자흐스탄 원전 건설에 한국이 참여한다면 양국 협력에 또 하나의 신기원을 이루게 될 것이다.
국제 무대에서도 카자흐스탄은 주요 협력 대상국이다. 독립 당시 핵무기 보유를 포기하는 대신 국제사회의 지원과 경제 발전을 선택한 카자흐스탄의 경험은 한반도 비핵화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바탕으로 유엔을 비롯한 국제 무대에서 양국이 맺고 있는 긴밀한 협력은 또 하나의 큰 자산이다.
올해는 고려인 동포 사회의 카자흐스탄 정주 85주년이기도 하다. 그간 10만 고려인들은 카자흐스탄 내 모범적인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면서 한·카자흐스탄 관계 증진의 가교 역할 또한 충실히 수행해주고 있다. 우리 정부와 대사관은 차세대 고려인 동포 육성 사업 등을 통해 양국 관계의 소중한 자산인 고려인 동포 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어느덧 불확실성과 격변의 2022년이 저물어간다. 2023년 새해는 한·카자흐스탄 관계가 한층 더 도약하고 성숙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가장 좋은 거울은 친구의 눈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카자흐스탄의 정치 및 경제·사회 개혁 추진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경제 발전, 그리고 개발 원조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발전해온 소중한 경험의 공유가 ‘새로운 카자흐스탄’의 미래를 비춰주는 거울이 돼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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