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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리포트] 쌀 농가 47%가 고령…'청년 경영이양'에 직불금 집중해야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쌀 공급 과잉 해결 방안은

50세 미만 쌀 경작 경영주 6% 그쳐

은퇴 어려운 고령자 토지 등 장기보유

유동성 부족 → 자산가격 경직 '악순환'

정부 5년내 5조까지 직불금 확대

농업인 세대전환 지체 해결하려면

청년이양에 예산 '대투입'선행돼야

필지 크기 늘리는 '농지은행'도 강화

디지털 기반 스마트·정밀 경작 유도로

농업·非농업간 구조조정 속도 높여야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쌀은 우리의 주곡이다. 황금빛으로 물든 가을 들판은 우리 정서의 뿌리다. 오랜 세월 쌀 풍년은 우리가 바라는 최고의 축복이었다. 그랬던 풍년이 지금은 오히려 국가의 부담이 됐다. 최근 양곡관리법 개정을 둘러싼 논란은 쌀의 역설적 사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쌀 문제는 한국 농업 문제 전체와 연계된다. 이번 양곡법 개정 논란을 계기로 쌀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한국 농업 전체를 살려야 한다.

지금의 쌀 문제는 한국 경제가 걸어온 경로에서 비롯됐다. 그 경로는 국가·국민이 선택한 길이었다. 그런 만큼 국가·국민 모두가 충분한 시간을 들여 문제를 풀어야 한다. 국가 경제가 저개발 단계에서 성장 단계로 진입하면 산업 간 구조조정이 일어난다. 이는 모든 국가가 경험하는 보편적 경로다. 가장 큰 특징은 국내총생산(GDP)에서 농업 비중이 줄어드는 것이다. 한국 경제 성장 과정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고속 성장’이다. 한국 경제의 고속 성장과 그에 따른 급속한 농업·비농업 간 구조조정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 한국과 같은 수준의 구조조정을 달성하는 데 걸린 기간을 보면 주요 선진국이 한국의 약 4배에 달한다.

농업·비농업 간 구조조정은 농업 부문 자원이 비농업 부문으로 유출되는 것을 뜻한다. 특히 노동 자원 유출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고속 경제 성장으로 급속한 산업 구조조정을 거친 탓에 농업 노동 유출도 급속하게 이뤄졌다. 노동 유출은 잠재 생산성이 높은 젊은 노동에서 더 많이 진행됐다. 많은 선진국이 보여준 일반적 성장 속도를 벗어난 고속 성장은 농업 자원 유출 과정에 ‘성장 스트레스(growth stress)’를 누적할 수밖에 없다. 한국 농업에서 누적 스트레스가 불러온 대표적 현상은 젊은 농업 노동의 급속 유출에 따른 농업 노동의 고령화 현상이다. 현재 농가 인구의 절반 정도가 65세 이상이고 농업 취업자의 65% 이상이 60세 이상이다. 경영 의사 결정권자라고 할 수 있는 경영주의 평균 연령이 70세에 이르는 것이 현실이다.

연금 등 복지 부재 상태에서 농업인에게는 사실상 은퇴가 없다. 고속 성장 스트레스가 농업 노동 고령화를 앞당겼다면 농업 노동 고령화는 다시 은퇴 없는 현실과 맞물려 고령 농업인의 농업 종사 기간을 늘렸다. 이는 다시 고령 위주의 농업 인구 증가로 이어진다.

한국의 농업 취업자는 145만 명이다. 인구 6500만 명을 넘거나 근접하는 영국과 프랑스의 농업인 숫자가 각각 34만 명과 67만 명 수준이다. 인구 8300만 명에 이르는 독일은 농업인이 51만 명 수준에 불과하다. 인구 5100만 명인 한국의 농업인 숫자가 전체 인구 2억 1000만 명을 훨씬 넘는 유럽의 세 나라 전체 농업인 숫자와 비슷하다. 농업인 숫자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것은 정책 대상 측면에서 볼 때 큰 단점이 된다. 이는 제한된 재정으로 펼치는 정책에서 투입 재정이 분산되는 것을 의미하며 결국 정책 효과를 떨어트리는 요인이 된다.

농업인의 나이가 많아지고 농업 종사 기간이 길어질수록 쌀 생산은 강화된다. 쌀 생산 농가의 경영주 연령별 분포를 보면 47%가 70세 이상, 80% 가까이가 60세 이상이다. 비교적 젊다고 할 수 있는 50세 미만 쌀 경작 경영주 농가는 6%대에 불과하다.

이들이 쌀 생산에 집중하는 것은 무엇보다 역대 농업 기술 개발 경로 때문이다. 지난 70여 년간 주곡인 쌀 자급 달성은 불변의 국가 목표였다. 정부는 쌀 중심 생산 기반 조성과 기술 개발에 온 힘을 기울였다. 특히 농업 부문 공공 연구개발(R&D) 자원은 다수확성 쌀 품종개량과 생산기술 기계화에 집중적으로 투입됐다. 그 결과 이제 쌀 생산은 거의 100% 기계화가 됐다. 주요 농작물 1000㎡ 경작에 소요되는 정부 추정 노동량을 보면 쌀은 10시간 정도에 불과하다. 쌀 이외 주요 품목은 여전히 수백 시간이 든다.



더욱이 쌀은 위탁 생산·경영이 가능할 정도로 작업 표준화가 이뤄졌고 실제로 위탁 경영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또 오랫동안 고정·변동 직접 지불을 통해 목표 가격까지 보장했다. 이런 노동·기술·가격 구조에서 고령 농업인이 쌀 생산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하다. 비록 소득이 높다 해도 쌀이 아닌 다른 품목으로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은퇴가 어려운 고령 농업인의 장기 농업 종사는 당연히 토지·시설 등 농업 자원·자산의 장기 보유로 이어져 유동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유동성 부족은 농업 자원·자산 가격을 경직시킨다. 이는 청년 등 신진 농업인에게 진입장벽이 된다. 최근 쌀 생산비 통계를 보면 토지 용역비가 36%에 이른다. 이는 일본 토지 용역비의 세 배를 초과한다. 농지의 유동성 부족과 가격 경직성이 생산비 상승을 유도하는 것이다. 결국 급속한 농업 노동력의 고령화 진행, 고령 농업인의 장기 농업 체류와 쌀 농업 집중, 농업 자원·자산의 유동성 부족과 가격 경직화, 신진 농업인의 진입장벽 형성과 농업인 세대 전환 지체라는 악순환이 이뤄진다. 이 악순환의 고리는 한국 농업 전체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정부 정책은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어야 한다. 오랜 기간 구조화된 악순환의 고리를 당장 끊어낼 기적적 묘안은 찾기 어렵다. 지속적이면서도 충격 효과를 줄 수 있는 ‘대투입(Big Push)’ 정책이 필요하다.

최근 양곡관리법 개정을 놓고 정치권의 논란이 커진 가운데 정부는 민·당·정 논의를 거쳐 쌀 수급 안정 대책을 포함한 중장기 농정 계획을 제시했다. 직접 지불금을 내년 3조 원 이상으로 확대하고 2027년까지 단계적으로 5조 원까지 확대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가장 주목받는 것은 직접 지불을 통해 고령 농업인의 경영 이양을 촉진해 농업 인력의 안정적 세대 전환을 유도하겠다는 제안이다. 구체적으로 은퇴를 희망하는 고령 농가의 농지를 새롭게 농업 진입을 원하는 청년에게 이양하는 방식으로 청년 농가 3만 명을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적절한 농업 인력 세대교체는 한국 농업의 근본 과제며 고령농의 쌀 생산 집중을 완화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경영 이양 직접 지불 확충을 통해 고령 농업인의 은퇴와 농업 자원·자산의 순조로운 이양을 유도한다면 한국 농업의 오랜 악순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정부가 대책을 내놨다고는 하지만 고령 농업인이 갑자기 은퇴를 서두르고 이들의 농지·시설을 청년 농가가 이양받기는 쉽지 않다. 대책이 의도한 대로 효과를 발휘하려면 대투입이 필요하다. 즉 확충된 직접 지불 예산을 선택과 집중의 원칙으로 경영 이양에 대투입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현재 시행 중인 ‘농지은행’ 사업도 강화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경영 이양을 통해 유동화된 토지의 새로운 경지정리 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필지당 규모가 영세한 지금의 농지 구조는 디지털 혁명이 불러올 새로운 스마트·정밀 농업 기반의 기계화 영농 시대에 적합하지 않다. 농지를 재구조화해 필지당 규모를 확대하는 새로운 경지정리 사업이 시급하다. 좁은 농지에 생화학재를 투입해 토지 생산성에 의존하는 영농에서 벗어나 규모를 갖춘 농지에 디지털 기술 기반의 기계 투입을 통해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영농으로 나가야 한다. 생화학재의 과다 투입은 친환경 시대에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노동력 부족 시대에 디지털 기술 기반의 기계화된 스마트·정밀 농업은 피할 수 없는 방향이다. 대투입이 성공해 순조로운 경영 이양이 이뤄질 때 비로소 한국 농업의 악순환은 멈출 것이다.

김한호 교수는..

서울대 농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응용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정부 통상자문위원회, 재정사업평가 자문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이며 대통령 소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위원 및 농어업분과 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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