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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 보는 데 50만원, 지방 '뮤덕'은 오늘도 달린다 [어쩌다, 커튼콜]






10만 원 넘는 돈을 내고 뮤지컬 공연장에 갔는데, 앞 사람 키가 너무 커 두 시간 넘게 고개만 기웃거리다 온 적 있나요? 배우의 노래 뿐 아니라 숨소리까지 여운이 남아 같은 돈을 내고 본 공연을 또 본 적은요? 그리고 이런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 혼자만 간직하느라 답답한 적은 없나요? 세상의 모든 뮤덕(뮤지컬 덕후)의 마음을 대신 전하기 위해 뮤덕 기자가 나섰습니다. 뮤지컬 애호가를 위한 뮤지컬 칼럼, ‘어쩌다 커튼콜’과 함께하세요.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열린 뮤지컬 '시카고' 오리지널 내한 프레스콜 행사에서 출연진이 공연 일부를 시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뮤지컬을 보고 싶은 자, 서울로 향하라.

정말이냐고요? 서울은 대극장이 잔뜩 있는 도시죠. 종로구의 세종문화회관, 서초구의 예술의전당, 중구의 충무아트센터, 용산구의 블루스퀘어… 구석구석 분포되어 있는데요. 이 때문에 서울에 거주하는 뮤덕들은 늦어도 1시간 이내에 공연장에 도착하는 것으로 계획을 잡죠. 20년 넘게 서울에 살고 있는 저의 예를 들자면요, 떨리는 마음으로 퇴근을 기다리다가 부리나케 뛰어가 현장 판매 티켓(단, 남아 있다면…)을 사는 일이 낯설지 않습니다. 밤 공연은 10시를 넘겨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막차가 끊길 시간은 아니니까요.

물론 서울이 아닌 지방에 사는 뮤덕들도 손꼽아 공연이 보고 싶긴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에 열리는 뮤지컬도 캐스팅이 쟁쟁하더라. 유튜브에서 나쁜 화질로만 감상할 수 있던 그 뮤지컬이 몇 년 만에 개막한다더라. 그런데 그 많은 유명 뮤지컬은 왜 대부분 서울에서만 열리는지요. 울산에서 직장을 다니는 권민수(25) 씨의 예를 들어 지방에 사는 덕후의 기쁨과 슬픔을 살펴보겠습니다.

KTX 마일리지만 펑펑…울산→서울까지 300㎞


뮤지컬 '모차르트!' 공연 사진. 사진 제공=EMK뮤지컬컴퍼니


민수 씨는 보고 싶었던 뮤지컬을 예매하려고 캐스팅 스케줄 표를 살펴보고 있지만, 이내 고개를 갸우뚱거립니다. 울산에서 서울까지 가려면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최소한 하룻밤은 머물러야 하거든요. 당일치기로 다녀오려면 초인적인 체력이 필요한데, 현대 사회의 직장인인 민수 씨에게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휴일이 아니라면 회사에 연차를 내야 하니 골치가 아픕니다. 휴일로 하고 싶지만 그만큼 티켓팅이 치열해지지요. 좀 더 보고 싶은 배우가 나오는 공연도 있지만, 그즈음 회사에 연차를 낼 수 없다면 포기해야 하죠.

민수 씨는 운좋게 금요일 저녁 공연 티켓을 잡았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서울에 어떻게 가고, 어디서 머무르냐의 문제인데요.

그 전에 민수 씨는 뮤지컬을 향한 여정을 위해 짐을 바리바리 쌌습니다. 민수 씨가 번번이 MBTI J라는 결과가 나오는 데는 이러한 이유도 있습니다. 집을 떠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철저한 계획에 입각해 진행돼야 하거든요. 망원경과 물, 세안도구, 충전기, 보조배터리, 신분증… 무거운 짐 꾸러미와 함께 준비는 끝났습니다.

민수 씨가 서울에 오기 위해 챙긴 짐꾸러미.


(1) 버스, 기차, 비행기... 그것이 문제로다

울산에서 서울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고속버스로 갈 수도 있고 KTX나 SRT 등 기차를 타고 도착할 수도 있죠. 울산공항에서 김포공항으로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공연장에 따라 교통수단도 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샤롯데시어터로 갈 때는 수서역에 가깝기 때문에 SRT를 이용하고, 충무아트센터와 블루스퀘어는 KTX를 선택합니다. 세종문화회관이 있는 광화문은 공항철도가 있어 비행기를 이용할 때도 있습니다.

교통수단을 선택할 때 경제적인 요소도 중요하죠. VIP 좌석 티켓비가 최고 18만 원인 요즘, 한 푼이라도 아끼는 건 다음 공연을 위한 보기 위한 노력이 되기도 합니다. 울산에서 서울까지 장장 4시간 반에 달하는 고속버스는 가장 저렴한 수단입니다. 왕복 10만 원이 넘는 KTX 비용에 비해 고속버스는 우등 기준 7만 3000원 정도에도 다녀올 수 있거든요.

울산에서 서울까지의 거리, 300㎞.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이 머나먼 거리로 체력이 쉽게 닳는다는 것인데요. 가장 저렴한 버스의 경우 오래 앉아 있다 못해 허리가 아픈 일도 잦고요. KTX는 2시간 20분이 소요되지만, 이 역시 에너지가 많이 쓰이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많은 ‘지방러’들은 자연스럽게 숙소를 잡게 되죠. 서울의 밤, 빌딩 숲을 헤치면서요.

민수 씨가 서울로 떠나기 위해 버스를 탄 인증샷.


(2) 커튼콜이 끝났다…숙소 쟁탈전

금요일 저녁 공연을 보기 위한 민수 씨의 루틴은 보통 다음과 같습니다. 금요일 오전에 바리바리 짐을 싸서 출발한다. 기차든 버스든 비행기든 타고 서울로 도착한다. 서울의 ‘핫플레이스’ 맛집에서 점심을 먹는다. (공연장 근처 유명 맛집들이 있죠.) 공연을 보고 숙소로 향해 무엇이든 달달한 음식을 먹는다.

앞서 말했듯 민수 씨는 긴 이동 시간을 감안해 주말까지 일정을 계획한 채 서울로 향합니다. 서울에 사는 지인이 그날 마침 시간이 된다면 잠깐 신세를 질 수도 있겠지만, 매번 그렇게 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보통 이동하기 편한 곳에 따로 숙소를 잡게 되죠. 게다가 홀로 이동하는 여정인 만큼 안전에 유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통 민수 씨가 선택하는 지역은 영등포구 인근입니다. 이동이 어렵지 않고 공연장과 가까이 위치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신라호텔과 시그니엘에서 머물고 싶은데, 지갑 사정이 여의치 않습니다. 지나치게 저렴한 숙소는 청결하지 않거나 노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민수 씨가 접점을 찾는 것은 8~10만 원 정도의 가격대입니다. 그 정도면 혼자 머물기에 깨끗하고 안락한 숙소를 구할 수 있으니까요. 숙박 사이트에서 좋은 숙소를 찾기 위한 추가적인 노력은 덤이구요.

(3) 공연 관람 1회 비용, 40만 원

지금까지 민수 씨의 영수증을 살펴볼까요? 서울에 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적은 만큼, 민수 씨는 최대한 좋은 자리를 잡으려고 노력하곤 합니다. 그렇게 얻은 공연 VIP 티켓 18만 원, 민수 씨가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인 KTX왕복 10만 7000원, 숙소비 10만 원. 잠만 자고, 공연만 볼 수 있나요? 밥도 먹어야 힘이 나서 씩씩하고 재밌게 공연을 볼 수 있는 법이죠. NHN페이코에 따르면 지난 5월 첫째 주 기준 여의도 일대 평균 식비는 1만 3000원이라고 합니다. 세 끼를 먹는다는 가정 하에 4만 원 정도를 사용한다고 계산할 수 있겠네요.

이렇게 산출한 최소한의 비용만도 약 43만 원에 달합니다. 여기에 당일 저녁 혼술이라도 곁들인다거나 조금 비싼 식사를 한다면 뮤지컬 한편을 보기 위해 무려 50만원을 지출해야 하는 것이죠.

서울에 사는 저는 상상도 못할 숫자입니다. 식비나 티켓값은 비슷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쳐도 교통비나 숙소비가 들지 않으니 훨씬 돈을 아낄 수 있죠. 자연스럽게 공연을 ‘n차 관람’하는 횟수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교통비와 숙박, 식비를 합친 30만 원은 VIP 티켓 2장에 조금 모자른 비용입니다. 산술적으로 따져보면 같은 돈을 이용해 지방에 사는 관객들은 서울 관객들이 뮤지컬 2편을 넘게 볼때 1편 밖에 볼 수 없다는 얘기죠.

부산 달군 ‘오페라의 유령’…'지방러'의 바람은


지방 덕후들에게 뮤지컬 관람은 이토록 고난이 가득한 과정입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건 딱 하나, 서울이 아닌 집 근처에서 공연이 열리는 것이죠. 서울에서 막을 내린 후 지방 공연을 이어가는 경우도 많지만, 오케스트라 연주 대신 MR이 깔리는 등 어딘가 아쉬움이 있기 마련이거든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부산 공연 사진. 사진 제공=에스앤코


이들에게 최근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부산 남구에 위치한 드림씨어터에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13년 만에 한국어 공연이자 부산 초연을 올린 것인데요. ‘오페라의 유령’처럼 뮤지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쉽게 알 수 있는 유명 뮤지컬을 부산에서 먼저 접할 수 있다는 것은 뜻깊은 일입니다. ‘오페라의 유령’은 뜨거운 인기 속에서 18일까지 부산에서 공연된 후 다음달 21일 서울 샤롯데시어터에서 다시금 관객들을 맞습니다.

‘오페라의 유령’처럼 초대형 기대작을 지방에서 자주 만나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커튼콜의 아련한 여운만큼이나, 민수 씨에겐 늘 이동의 피곤함도 따라오곤 하거든요. 부산뿐만이 아니라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전국 구석구석에서 좋은 공연이 열리는 것이 수많은 민수 씨의 소망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이러한 행복한 경험이 자리잡지 못했다는 사실은 아쉬움을 낳죠. 다음 공연이 열리면 민수 씨는 이 루틴을 다시 반복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하지만 민수 씨는 서울로 공연을 보러 오는 과정이 설렘을 주는 것 같다고도 말합니다. 공연 관람이라는 명목이지만, 덕분에 일상에서 벗어난 특별한 순간이 자주 돌아오기 때문이죠. 민수 씨는 늘 울산으로 돌아가 긴 감상글을 남깁니다. 이번에도 즐거운 여행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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