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의조(31·노팅엄)·권창훈(29·수원)을 시작으로 정상빈(21·미네소타)·오현규(22·셀틱), 최근 김지수(19·브렌트퍼드)와 권혁규(22·셀틱)까지. 이들은 프로축구 K리그 유소년 클럽 시스템에서 성장한 뒤 유럽 진출의 꿈을 이뤘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2008년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축구 강국을 벤치마킹해 유스 시스템을 의무 도입했다. K리그에 참가하는 25개 구단은 프로팀 운영은 물론이고 초중고 유소년팀을 운영해야 하며 현재 총 71개 팀(신생 충북청주와 천안은 올해 한 팀씩만 운영)에서 재능 있는 선수들을 키워내고 있다.
유스 시스템의 결실은 연령별 대표팀의 성적으로 나타났다. 각 구단 유스팀에서 자라난 선수들이 12명(20명 중)이나 포함된 23세 이하(U-23) 대표팀 선수들이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우승을 이끌었고 이듬해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U-20 폴란드 월드컵에서도 12명의 유스 출신 선수들(21명 중)이 준우승 신화를 일궈냈다. 이달 초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U-17 아시안컵에서 준우승을 거둔 변성환호의 경우 23명 선수단 중 K리그 유스팀 소속 선수가 19명이나 됐다.
유스 시스템에서 성장한 선수들이 유럽 무대로 직행하는 사례가 늘면서 경쟁력도 입증되고 있다. 성남FC(전 일화) 유스 출신인 황의조는 일본 무대를 거친 뒤 2019년 지롱댕 드 보르도(프랑스)로 이적하면서 유럽 진출의 꿈을 이뤘고 수원 삼성 유스 출신 권창훈은 2017년 디종FCO(프랑스)와 계약으로 유스 시스템 도입 이후 최초로 K리그에서 유럽 5대 리그에 곧장 입성하는 역사를 썼다. 지난해 정상빈(당시 울버햄프턴)과 올해 초 오현규, 최근 유럽행의 꿈을 이룬 김지수·권혁규 등도 유스 시스템의 결실로 평가된다. 특히 권혁규는 소속 팀(부산) 산하 초중고 유스팀을 모두 거쳤다는 특이점이 있다.
물론 어린 선수들이 너무 일찍 유럽 무대로 진출하면서 제대로 활용도 못한 채 떠나보내야 한다는 아쉬움도 있다. 한 구단 관계자는 “수십 명 이상의 선수들에게 매년 투자를 하고 있는데 그중 프로에 데뷔하는 선수는 손에 꼽힌다”며 “애써 키워낸 선수 한 명이 프로에서 얼마 뛰지도 않고 떠난다고 하면 허탈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떠난 선수가 두둑한 이적료를 안겨준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수원 삼성은 올해 초 오현규의 이적료로 300만 유로(약 42억 원)를 챙겼다. 성남은 김지수의 이적료로 약 9억 원, 부산은 권혁규를 이적시키면서 약 16억 원을 받았다.
당장의 이적료 외에도 떠난 선수의 미래를 응원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FIFA가 2001년에 도입한 연대기여금 제도 때문이다. 구단이 한 선수를 영입할 때 이적료 중 5%가량을 그 선수의 12~23세 시절 팀에 배분해주는 제도다. 12~15세에 뛰었던 팀은 소속 기간 1년당 이적료의 0.25%를 수령하고 16~23세의 팀은 1년당 0.5%를 받는다. 최근 바이에른 뮌헨(독일)의 유니폼을 입은 김민재(27) 덕에 3년간 몸담았던 모교인 수원공고는 5000만 유로(약 707억 원)의 이적료 중 1.5%(0.5%×3년)인 75만 유로(약 10억 6000만 원)를 벌게 됐다.
연대기여금은 선수가 이적할 때마다 발생한다. 유럽에 진출한 선수가 몸값을 올려 이적을 거듭한다면 그를 길러낸 구단은 계속해서 기여금을 받을 수 있다. 잘 키운 유스 한 명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연금보험’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성남의 한 관계자는 “정확한 액수를 밝힐 수는 없지만 황의조의 이적 때마다 연대기여금을 받았다”며 “김지수도 제2의 김민재라는 수식어처럼 유럽에서 성공해 구단에 역으로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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