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가입자의 보험금 청구 자료를 의료기관이 중계기관을 거쳐 보험사에 바로 전송하도록 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실손보험 간소화 법안)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상정을 앞두고 찬반논쟁이 뜨겁다. 가입자 편익을 높인다는 명분 아래 당정이 힘을 실어주면서 14년 묵은 보험업계 숙원 해결에 속도가 붙었지만, 보건의료계와 노동·시민사회는 정보 유출 우려 등을 들며 반대하고 있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한국루게릭연맹회·한국폐섬유화환우회·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12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험업법 개정안의 폐기를 촉구했다.
오는 13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보험업법 개정안이 다뤄진다고 알려지자 반대 입장을 피력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순번이 밀려 18일 전체회의에서 논의될 가능성도 있으나, 이날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할 경우 국회 본회의만 남겨두게 된다.
이들은 "보험업법이 개정되면 환자의 정보가 더 손쉽게 보험사로 넘어가 보험사가 환자를 선별하고 고액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데 사용될 것"이라며 "해당 법안은 민간 보험사의 환자 정보 약탈법이자 의료 민영화법이나 다름 없다"고 비판했다. 단기적으로는 소액 보험금을 청구하기 쉬워 환자들에게 이득이라 여겨질지 모르나, 종국에는 보험사들의 갑질에 더욱 시달리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란 지적이다.
이들은 보험사가 의료기관에 보험금을 직불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질 경우, 미국식 민영화를 야기해 환자들이 보험사가 계약한 병원에서, 보험사가 허용한 치료만 받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사기업의 영리행위를 위해 환자 정보를 넘기도록 하는 것은 공공적·공익적 목적 외에 환자 정보를 타인에게 열람하도록 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한 의료법, 약사법에도 정면 충돌하기 때문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실손보험은 2020년 기준 전 국민의 80%(4138만 명)가 가입해 ‘제2의 건강보험’으로도 불린다. 다만 현행 제도는 실손보험 가입자가 보험금을 지급받으려면 병원을 직접 방문해 진료 영수증, 진단서, 진료 세부내역서 등의 문서를 발급받아 보험사에 제출해야 하는 구조라 소비자들의 불만이 컸다. 이 같은 지적이 2009년 정무위원회에 처음 등장했지만 시민사회와 의료계 반대에 부딪혀 14년째 진척을 보이지 못했다.
의사, 치과의사 등 보건의료직역 단체들은 민간보험사의 편익만을 위한 법이라며 여전히 반대하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 이정근 상근부회장과 김종민 보험이사는 이날 국회 앞에서 잇따라 1인 시위를 펼치며 "보험업법 개정안이 민간 보험사의 이익만을 고려한 과잉 입법"이라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은 "보험사가 개인의 의료 정보를 쉽게 취득하게 되면 보험 가입·갱신시 이를 활용해 국민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고 보험료도 인상될 것"이라며 "의료기관에 불필요한 행정적 부담을 줘 결국 피해가 국민들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 이사는 "민감한 개인 정보에 대한 국민의 권리와 진료기록과 관련한 의료기관의 권한을 일방적으로 침해하는 잘못된 법안"이라며 "법안 통과 이전에 의료계와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의협을 필두로 대한병원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약사회는 법사위가 열리는 13일 오후 12시 국회 앞에서 ‘실손보험 청구간소화 보험업법 개정안 폐기 촉구를 위한 보건의약 4개 단체 공동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들은 해당 법안이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던 6월 중순에도 기자회견을 열고 민간보험사의 편익만을 위한 법이라며 반대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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