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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완료했는데 3조 수출길 빼앗길 판”…규제에 막힌 명품 ‘사거리연장탄’[이현호 기자의 밀리터리!톡]

155㎜ 포탄은 ‘차세대 K방산의 큰 손’

포탄값 급등에 시장선점 뛰어든 미국

“동일 무기체계 중복 조사 개선 필요”

155㎜ 사거리연장탄 발사 모습. 사진 제공=풍산




최근 포탄 가격이 급등하고 서방은 생산량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것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하루 최대 10만 발의 탄약과 포탄을 소모했지만 지금은 그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포탄 부족에 직면한 러시아는 9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초청해 정상회담을 열고 포탄 및 미사일 공급을 요청하기도 했다. 북한은 최소 100만 톤 이상의 탄약을 비축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공세에 맞서며 선전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역시 전장에서 하루 최대 1만 발의 포탄을 발사하고 있다. 전쟁 장기화로 러시아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 사이에서도 포탄 부족이 심화하고 있다. 특히 급증한 155㎜ 포탄 수요를 맞추는 데 애를 먹는 상황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롭 바우어 나토 군사위원장은 9월 26일(현지 시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나토 군사위원회 연례회의에서 “최근 국방비 지출이 급증하고 있는데 실제 안보 강화로 이어진다는 것을 확신할 수 없다”면서 “무기와 포탄 가격이 급등해 우리는 똑같은 양에 점점 더 큰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며 포탄 부족 사태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우크라전 장기화 포탄 몸값 치솟아


우크라이나전으로 인한 서방권 주요국의 포탄 부족은 대한민국 방위산업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기회다. 특히 155㎜ 포탄 품귀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데 마침 우리나라는 해당 구경의 포탄을 대량생산해 운용하는 핵심 국가다. 앞서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가 2022년 발표한 ‘밀리터리밸런스+’에 따르면 2010년 이후 세계 각국이 수출(계약 완료 포함)한 현대화된 자주포는 1401문인데 그중 45%인 626문이 대한민국의 명품 무기 ‘K-9’ 자주포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 K-9 자주포에 들어가는 핵심인 155㎜ 포탄의 몸값이 덩달아 높아지면서 ‘차세대 K방산의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더욱 반가운 소식은 K-9 자주포에 사용하는 155㎜ 포탄을 전량 생산하는 풍산이 최근 사거리를 연장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일명 ‘155㎜ 사거리연장탄’을 개발해 모든 시험 평가 기준을 충족(저고온·혹서기·혹한기 포함)하며 국방부로부터 ‘전투용 적합 확정’까지 받았다. 기존 사거리 40㎞보다 50%가 늘어난 60㎞까지 날아갈 수 있다. 우리 군의 포병 전력 증강은 물론 K-9 자주포 등을 사용하는 해외 국가로의 대규모 수출길이 열린 것이다.

하지만 대규모 해외 수출에 대한 기대감과 달리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대규모 방위력 개선 사업 추진 과정에서 예산 낭비를 방지하고 재정 운용의 효율성 제고를 목적으로 하는 ‘방위사업법’ 때문이다. 전투용 적합 확정 다음 단계인 ‘양산 사업 타당성 조사’를 받아야 한다. 수행 기간은 최대 6개월이다. 연구개발 단계에서 사전 사업 타당성 조사(수행 기간 8개월)를 받았지만 또 한 번 타당성 조사를 받도록 제도적으로 명시된 탓이다. 이후에는 방위사업청과 산업통상자원부에 방위산업 물자 및 방위산업 업체 지정 등 행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델라웨어주 공군기지에서 미군 병사가 우크라이나에 보낼 155㎜ 포탄을 옮기는 모습. AP·연합뉴스


사실상 양산 사업에 들어가기 위한 내년도 예산 반영을 포기해야 한다. 2025년도 예산에 반영한 후 양산 사업을 통해 전력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군 입장에서도 적기 양산이 늦어져 전력화도 함께 지연될 처지다. K방산도 해외 수출 시장 진출의 발목이 잡힌 꼴이다. 예컨대 우리 군에 납품 실적이 있어야 폴란드와 호주·튀르키예 등 K-9이 진출한 국가에도 수출이 가능한데 최신예 무기를 개발하고도 제도 탓에 수출길이 막힌 셈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풍산이 경북 경주 안강사업장에 800억 원을 투자해 설치한 생산 라인은 몇 달을 멈춰야 한다. 적기 양산에 착수하지 못하면 체계 개발과 양산 사이에 유휴 기간이 발생해 수십 개가 넘는 협력 중소 업체 또한 경영난이 발생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3조원 155㎜포탄 시장 선점 날릴판


이런 빈틈을 미국이 먼저 파고들고 있다. 우리는 최신형 155㎜ 포탄(사거리연장탄)의 개발을 완료하고도 규제에 막혀 시장 선점 기회를 놓칠 처지에 놓였다.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 국방부의 최고 무기 구매자는 미국이 155㎜ 포탄의 월간 생산량을 2025년에는 10만 발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WSJ는 미 국방부의 무기 구매 책임자 빌 라플랜트가 155㎜ 포탄 생산량에 대해 “2025년에는 매달 10만 개가 (생산)될 것”이라며 “6개월~8개월 전에는 매달 1만 4000개였는데 지금은 매월 2만 8000개”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155㎜ 포탄 수요가 급증하면서 미국도 발 빠르게 물량 확대에 나선 것이다. 이는 하루에 수천 발의 포탄을 발사하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미국을 포함해 주요 동맹국들이 자국 방어를 위한 물자가 부족해지면서 포탄 몸값이 급등해 이 시장을 미국이 차지하려 뛰어든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한국의 대표적 포탄 제조 업체인 풍산은 세계 최고의 포탄을 만들고도 제도 때문에 수출길이 막혀 버렸다. 3조 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155㎜ 포탄 시장 선점 기회를 날려버린 형국이다. 한국국방연구원(KIDA)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155㎜ 포탄 수출 시장은 최근 3조 원이 넘는 규모로 커졌다”며 “포탄은 다른 무기와 달리 소모품이기 때문에 수출 시장을 선점하면 K방산의 또 다른 기폭제가 될 것인데 낡은 제도가 발목을 잡고 있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군이 포병들이 러시아군을 향해 155㎜ 곡사포를 발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방위사업법에 명시된 중복된 사업 타당성 조사 때문에 전략화에 차질을 빚는 사례는 국산 첫 초음속 전투기 ‘KF-21’도 비켜가지 못했다. 전투용 적합 확정 판정을 받은 후 5월부터 진행 중인 양산 사업 타당성 조사를 정부 예산안이 확정되는 8월까지 끝내지 못했다. 최초 양산 계획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예산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가 ‘내년 예산을 책정 받으려면 현행 제도상 사업 타당성 조사를 끝내야 한다’는 완고한 입장을 보이며 사실상 거부한 점은 방위사업청을 더욱 난감하게 만들고 있다. 방사청은 KF-21을 내년 최초 양산에 착수해 2026년까지 전력화한다는 계획이었다.

KF-21도 최초 양산계획에 빨간불


소관 법률인 ‘방위사업법’ 때문에 자신이 주도하는 무기 체계 개발이 발목을 잡힌 심각성을 잘 알고 있는 방위사업청은 국회를 찾아가 사정하는 모습까지 연출했다. 8월 25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 현안 보고에서 “현재 양산 사업 타당성 조사를 진행 중이지만 정부 예산안 반영 기한 내에 종료하기 힘들고 최종 결과는 10월에나 보고가 가능하다”며 “적기에 양산에 착수하지 못하면 생산 라인을 세워야 하고 협력 중소 업체들의 경영난이 심화돼 도산이 우려된다”고 호소했다.

방사청 관계자는 “11월로 예정했던 잠정 전투용 적합 판정을 5월에 조기 완료하면 속도를 내고 있는데 예산 당국이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며 “현재 운용 중인 전투기가 너무 낡아 운용에 제한이 있고 전투 임무에 한계가 있어 양산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 전력 공백이 우려된다”고 했다.

국내 첫 초음속 전투기 ‘KF-21’ 보라매 시제 6호기의 최초 비행 모습. 사진 제공=방사청


방산 산업 현실성과 군 작전 증강의 시급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중복된 사업 타당성 조사 규정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는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현재 무기 체계의 경우 ‘연구개발 사업 타당성 조사(8개월)’ 이후 동일한 무기 체계에 대해 ‘양산(대량생산) 사업 타당성 조사(6개월)’를 다시 받아야 하는 것이 방위사업법에 따른 관행이다. 이 때문에 국내 기술로 무기 체계를 전력화(현장에 배치)하는 데에는 10년 이상 걸린다는 소요군과 방산 업체들의 불만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타당성조사 1회로 양산 속도 높여야


이와 관련해 국방 무기 체계를 개발하는 주요 절차 중 하나인 ‘사업 타당성 조사’를 2회에서 1회로 줄이는 방위사업법 개정안을 김진표 국회의장이 2021년 7월에 발의했다. 아쉽게도 국회 국방위원회 논의가 시작되지 않아 답보 상태다. 방사청도 3월 대규모 무기 도입 사업의 지연이 안보와 K방산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사업 타당성 조사를 생략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재정 낭비를 막고자 도입된 제도이지만 사업 타당성 중복 조사 의무가 오히려 시급한 사업을 지연시키고 K방산의 해외 진출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에 방위사업법에 사업 타당성 면제 근거를 마련하고 하위 법령에 면제 기준을 담는 내용으로 법령 개정에 나서기로 했다. 방사청은 올해 2분기에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었지만 예산 당국인 기재부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한걸음도 내딛지 못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물가 상승과 방위력 개선비 증가로 예산이 500억 원을 넘기는 무기 체계 개발 사업이 많아져 사업 타당성 조사 대상을 현재 총사업비 500억 원에서 3000억 원으로 상향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연구개발 및 양산 사업 타당성 조사를 1회로 합쳐 국산 무기 체계 개발과 양산 속도가 빨라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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