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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리포트] 우리가 믿고 있는 진실 ‘동조자’

HBO 오리지널 ‘동조자’의 쇼러너 박찬욱 감독이 9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파라마운트 극장에서 열린 프리미어 행사에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돈 맥켈러 공동 쇼러너, 그리고 아오자이(베트남 민속의상)를 차려입은 배우들과 함께 레드카펫에 섰다. 로이터연합뉴스




“캡틴(주인공)의 머릿 속에 동양적인 자아와 서양적인 자아가 있는 것처럼, 우리 둘이 합쳐서 하나의 인격을 이룬 듯 그렇게 팀으로 일했죠”

박찬욱 감독이 HBO 오리지널 ‘동조자’에 쇼러너로 함께 이름을 올린 돈 맥켈러에게 건넨 고마움의 인사다. 9일 할리우드 파라마운트 극장에서 열린 LA프리미어에서 박 감독은 “(HBO에서) 쉽지 않은 소재에, 적지 않은 예산을 쏟아 부어서 만드는 용기있는 결정을 해주었다”고 서두를 꺼냈다. 이어 “마치 수상 소감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사실 혼자서 4개의 남우조연상을 받을 만한 배우가 한 명 있다”며 독보적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배우이자 시리즈 제작을 함께 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소개했다. ‘동조자’에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정치적 지도력, 도덕적 권위, 사회적 특혜, 재산의 통제권을 독단적으로 휘두르는 사중적 인물로 등장한다. 여러 백인 캐릭터를 한 명의 배우에게 맡긴 것은 전적으로 박찬욱 감독의 결정이다. 제국주의 권력체계가 서로 얽혀 있고 중첩되어 있다는 ‘동조자’의 핵심 메세지를 확연하게 만든 묘수다.

7부작 ‘동조자’(The Sympathizer)는 1970년대 베트남전 직후 베트남과 미국 사회의 이면을 이중간첩인 주인공 캡틴의 눈을 통해 들여다본 첩보 스릴러다. 퓰리처상 수상작가이자 USC교수인 베트남계 미국인 비엣 타인 응우옌(51)의 동명소설을 각색한 박찬욱 감독이 공동 쇼러너로 참여해 제작, 각본, 연출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총괄했다.

‘동조자’ 7회에서 캡틴(호아 쉬안데)과 CIA 요원으로 분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은밀한 눈빛으로 서로를 응시하고 있다. 사진 제공=HBO


박 감독의 ‘동조자’는 미국에서는 베트남 전쟁, 베트남에선 미국 전쟁으로 불리는 역사의 아이러니로 포문을 연다. 그리고 “모든 전쟁은 두 번 싸운다. 전장에서 처음으로, 두 번째는 기억 속이다”라는 문구에 이어 폭력과 분단의 종결, 자신 안의 분열 종식을 원하는 주인공을 등장시킨다. 두 개의 마음, 두 개의 얼굴을 가진 분열된 자아 탓에 양면에서 바라보는 비극을 지닌 주인공(캡틴이라 불리는 이중간첩)은 베트남 배우 호아 쉬안데가 혼신을 다한다. 7개의 에피소드 중 1~3회는 박찬욱 감독이 직접 메가폰을 잡았고 시청자에게 변수가 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산드라 오, 존 조, 데이비드 듀코브니 등이 조연으로 출연한다.

원작의 첫 문장 “나는 스파이, 고정간첩, CIA 비밀 요원, 두 얼굴의 남자입니다. 아마 그리 놀랄 일도 아니겠지만, 두 마음의 남자이기도 합니다”라는 주인공 나의 독백은 미장센의 대가 박찬욱 감독을 만나 영화적 순간을 경험하게 한다. 박 감독은 “(비엣 작가의) 아름다운 문장들을 영상으로 옮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렇지만 영상이 더 나은 점, 문학이 갖지 못한 것이 한 가지는 있다. 이 소설은 영어로 쓰여졌지만 우리 쇼에는 베트남어 대사를 베트남어로 들을 수 있다”는 말로 객석의 환호를 받았다. 베트남에서 원작 소설의 출판이 거부되고 시리즈 제작 역시 베트남 정부의 검열을 통과하지 못해 태국을 촬영지로 대체해야 했던 부조리를 비틀은 표현이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동조자’에서 하원의원, 영화감독, 교수, CIA 요원 1인4역을 소화한다. 베트남에서 뱀주를 마시는 CIA 요원으로 분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사진 제공=HBO


원작 ‘동조자’는 날카롭고 유머러스하며 풍자적인 문장과 고도의 실험적인 문학 장치를 능숙하게 구사한 디아스포라 소설이다. 비엣 타인 응우옌 작가는 2016년 첫 장편소설인 ‘동조자’로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뉴욕타임스로부터 ‘문학에 빠져 있던 부분을 채우고, 목소리를 가지지 못했던 것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한다’는 평을 얻었다. 비엣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 폭력성과 기억에 대한 이야기, 자기 자신을 속이고 사람들 역시 그를 속이는 구조, 인간성과 비인간성의 갈등에 깊은 인상을 받아 소설의 스타일에 영향을 미쳤다고 밝히기도 했다.

‘동조자’는 문제의 그 달 4월 14일 HBO와 MAX(한국은 4월 중 쿠팡플레이)를 통해 공개된다. 비엣 작가가 T.S. 엘리엇의 ‘황무지’ 속 문구를 인용해 책 속에 등장시킨 가장 잔인한 달 4월을 상기시키는 의미다. 1975년 4월30일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베트남인민군이 미국의 지원을 받던 남베트남 정부와의 20년 전쟁 끝에 베트남의 수도 사이공(현 호치민)은 함락되었다. 수년전 BBC가 공개한 미국 대사관 건물 지붕 위에서 줄을 지어 헬리콥터에 오르는 모습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이 역사의 참상을 보여준다. 여전히 참혹한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몰아보기를 하기엔 좀 어렵지만 역사의 역설 속 광기 어린, 비극적 세계를 풍자적으로 그린 ‘동조자’가 선사할 묵직한 울림은 기대해도 좋다.

/하은선 미주한국일보 편집위원·골든글로브협회(GGA)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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