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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도장·팩스 찾던 일본의 각성

노현섭 성장기업부 차장


우리 기업의 해외 유치를 지원하는 정부 관계자가 최근 일본무역진흥기구(제트로) 관계자로부터 한 통의 e메일을 받았다.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주선해 준 데 대해 “일본 정부의 해외 기업 유치와 관련해 설명할 기회를 만들어 줘서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보수적이고 수동적이던 일본 관료에게서 찾아볼 수 없던 모습에 이 관계자는 어리둥절해 했다.

이러한 생소한 변화는 15일 일본 언론에 나온 기사 반응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해 도산한 일본 스타트업 수가 역대 최대치라는 일본 언론 보도에 대한 일본 내 반응은 기존과 사뭇 달랐다. 2022년을 ‘스타트업 창출의 원년’으로 선언한 일본 정부의 막대한 지원에도 결국 ‘스타트업의 불모지’라는 한계가 드러났다는 비판은 없었다. 오히려 기업의 신진대사를 촉진하기 위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새로운 싹을 키워야 한다는 분석이 주를 이뤘다. 실패를 허용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미상장기업)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패를 치욕으로 여겨 도전을 꺼려하는 기업 문화를 가진 일본에서 보기 힘든 반응이다.

일본의 이러한 변화의 원인은 최근 일본에서 만난 일본 정부와 벤처캐피털(VC) 관계자들에게서도 찾을 수 있었다. 이들에게 ‘절박함’이 진하게 배어 나왔다. 그간 든든한 내수 시장과 기술력만 믿고 ‘잃어버린 10년’이 30년으로 늘어날 때까지 무감각했던 일본이 팬데믹 이후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 ‘각성’을 한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한 일본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일본 내부에서 찾을 수 없었던 ‘도전과 혁신’의 DNA는 해외 기업 유치를 통해 이식 중이다. 그간 경제성장의 방해물이 돼왔던 내수 시장과 기술력은 해외 기업을 끌어들일 미끼로 탈바꿈시켰다. 챗GPT 개발사인 오픈AI가 아시아 첫 거점을 도쿄에 개설한 것은 물론 엔비디아·아마존까지 줄줄이 일본에 투자를 하고 있다. 한국의 유망한 스타트업도 일본행을 택하고 있다. 일본 정부뿐 아니라 지자체는 물론 금융 기업까지 막대한 지원금과 혜택을 제시한 덕분이다. 현지에서 만난 한 일본인 변호사는 “해외 기업의 투자나 인수합병(M&A)을 ‘빼앗겼다’로 인식했던 일본이 이제 경제산업성까지 자존심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기업 유치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당장 예산은커녕 담당자 한 명 늘리기도 벅찬 게 현실이지만 일본의 기민한 움직임처럼 우리의 보폭도 한층 빨라질 필요가 있다. 불확실한 미래를 가진 스타트업이라는 리스크에도 미래를 내다보고 무담보·무보증 대출을 시행하는 일본 정부와 각종 연구개발(R&D) 예산은 삭감하면서도 민생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전 국민에게 25만 원을 준다는 우리의 현실이 묘하게 교차되는 순간이다. 일본 못지않는 절박함을 가진 우리도 하루 빨리 각성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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