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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송현] 아무도 보지 않는 국가결산보고서

정성호 한국정부회계학회장

결산서 매년 열람 안한 채 대량 폐기

정책성과 분석 없고 단순수치 나열만

명확한 메시지로 재정 신뢰 높여야





매년 5월 31일 국회에는 국가결산보고서가 대량으로 배달된다. 그러나 대부분은 열람조차 되지 않은 채 다음 해 그대로 폐기된다. 이는 우리 재정 정보가 ‘보고를 위한 보고’에 머물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재정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발생주의 회계가 도입됐다. 정부는 2012년(2011회계연도)부터 이를 본격 적용하며 재무제표가 포함된 결산서를 매년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결산서는 형식적 작성에 머무르며 실제 정책 판단에 유용한 정보로 활용되지 못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미국은 다르다. 2024회계연도 재무제표 핵심 요약 보고서에는 “지금의 재정 경로는 지속 불가능하다”는 선언이 분명히 명시돼 있다. 미국 정부는 2020회계연도부터 동일한 메시지를 반복하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의 장기 상승을 근거로 재정 개혁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직접 설명하고 있다.

우리의 결산서에는 이처럼 분명한 메시지가 없다. 특히 제4장 성과 보고서는 표만 나열돼 있을 뿐 말로는 성과 중심의 재정 운용을 강조하면서도 실제 정책 성과에 대한 분석이나 설명은 거의 없다. 현금흐름표 역시 방향만 제시됐을 뿐 실행 방안은 모호하다.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직접법 방식의 현금흐름표는 모든 현금 유입과 유출을 거래 단위로 구분해 기록해야 하므로 방대한 회계 자료를 일관되게 처리하기 어렵고 기존 재정 정보 시스템과도 잘 맞지 않는다.



결산서는 단순한 회계 보고가 아니라 국민과 국회가 국가 재정의 건전성과 지속 가능성을 판단하는 도구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개편이 필요하다.

첫째, 결산서에는 미국처럼 재정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명확한 메시지가 담겨야 한다. 단순 수치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말고 정부 재정의 현재 기조가 미래에 미칠 영향을 명확히 분석해야 한다. 둘째, 성과 보고서는 정책 효과의 원인과 결과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성과 부족의 원인을 진단하며 구체적인 개선책을 제시하는 구조로 전환돼야 한다. 셋째, 재무제표는 IMF 정부 재정 통계 기준에 따라 재설계돼야 한다. 형식적 도입이 아닌 실질적 정보 제공을 위한 개편이 요구된다.

이러한 변화가 이뤄져야 국민은 재정 정보를 신뢰할 수 있고 국회도 실질적인 재정 통제를 수행할 수 있다. 이는 국가 재정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강화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결산서의 형식과 분량에 대한 혁신도 시급하다. 현행 결산서는 총 분량이 1500쪽을 넘는다. 이는 세입·세출 결산과 재무 결산을 모두 포함하면서 중복이 발생하기 때문으로 핵심 정보의 전달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애초에 발생주의 회계는 현금주의 회계와 병행 적용하되 제도가 안착되면 재무 결산만을 작성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이 원칙에 따라 결산 개요와 재무제표 중심으로 200~300쪽 내외의 간결한 결산서를 만들고 세입·세출 결산은 별도의 예산 결산서로 분리해야 한다.

국회의원은 물론 국민 누구도 읽지 않는 문서를 매년 반복 생산하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 실질적으로 활용 가능한 재무 정보를 간명하게 전달하는 것이야말로 회계 개혁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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