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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 성과에 들뜨지 말고, 한중 관계 냉정하게 접근해야[김광수의 중알중알]

한한령 해제, 섣부른 기대감 지워야

사드 보복 당시와 달라진 중국 상황

한국 콘텐츠 쉽게 허용할 여건 아냐

무비자 연장, 한국 등 45개국 포함

카카오톡 접속도 확대 해석 말아야

박진영 대중문화교류위원회 위원장이 1일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국빈 만찬에서 이재명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말부터 2박3일 일정으로 무려 11년만에 한국을 찾았습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미중 정상회담 등 굵직한 일정이 더해진 영향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이재명 대통령과도 정상회담을 하며 소원해졌던 한중 관계를 회복하는 계기를 마련했는데요. 한중 양국 정상의 만남으로 얼어붙었던 양국 사이에 온기를 불어넣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긍정적인 기대감 만큼 섣부른 전망도 커져 중국에서 바라보기엔 한 편으로 걱정이 됩니다.

조만간 한한령이 해제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대표적이죠. 발단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페이스북 게시물로부터 시작됐는데요. 김 의원은 한중 정상회담 후 이어진 만찬에서 박진영 대중문화교류위원회 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인사하며 나눈 말을 전하며 마치 당장이라도 한한령(한류제한령)이 해제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그는 페이스북에 “이재명 대통령, 시진핑 주석, 박진영 대중문화교류위원장이 잠시 얘기를 나누다가 시 주석이 북경에서 대규모 공연을 하자는 제안에 호응해 왕이 외교부장을 불러 지시했다”며 “한한령 해제를 넘어 본격적인 ‘K-문화’ 진출의 문이 열리는 순간이 아닐까”라는 글을 올렸죠.

이 게시물을 본 일부 매체들은 한한령 해제 기대감을 담은 제목으로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사태가 예상보다 심각하게(?) 돌아가자 대중문화교류위원회는 곧바로 진화에 나섰는데요. 이튿날 “시 주석과 박진영 위원장의 대화는 외교행사에서 인사를 나누며 건넨 원론적 수준의 덕담”이라며 “과도한 해석은 조심스럽고 성급하다는 판단”이라고 밝혔습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봐도 무리한 해석이고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지만 주식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죠. 개장과 함께 박 위원장이 속한 JYP엔터테인먼트 주가가 급등했고 다른 엔터주도 덩달아 상승 랠리를 탔습니다. 위원회의 해명 등이 더해지며 주가는 점차 안정세를 찾았지만 거래량은 이미 폭발한 상태였는데요.

한한령 해제는 한중 관계가 개선될 조짐만 보이면 여지 없이 나오는 단골 손님이자 양치기 소년입니다. 매번 부푼 희망을 품고 ‘이번에는 다르겠지’라는 생각으로 접근하지만 8년 가까이 흐른 지금껏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죠. 늘 그렇듯 주식시장만 반짝하고 말았을 뿐인데요. 관련 기사를 쓴 기자들도 “진짜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친 것만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한중 정상회담으로 한국에선 양국 사이에 우호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보지만 한한령 해제는 좀처럼 쉽지 않아 보입니다. 시 주석이 박 위원장의 말을 듣자마자 왕 부장과 대화를 나눴다는 것을 두고 마치 한한령 해제를 지시한 듯 주장하는 뇌피셜부터가 잘못됐죠. 인사 자리에서 건넨 말을 일사천리로 진행시킬 지도자는 흔치 않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처럼 즉흥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죠.

가수 지드래곤이 31일 경북 경주시 라한셀렉트호텔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환영 만찬에서 발언하고 있다. 중국인에게 지드래곤의 인기가 높지만 당분간 중국 본토에서의 공연이 허가 받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연합뉴스.


기본적으로 중국은 한한령은 없다는 입장입니다. 당연히 한한령 해제도 있을 수 없죠. 소위 우리가 주장하는 한한령은 한국의 사드 배치로 내려진 중국의 보복 조치를 지칭하는데, 문제는 그 성격이 지금은 당시와 크게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중국은 한한령 문제를 접근할 때 산업적인 측면은 물론 사상적인 부분과 사회 통제의 수단 등으로 바라봅니다. 대표적인 분야가 게임이죠. 중국은 자국의 게임산업이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하자 한국 업체의 게임에 판호를 발급하며 슬그머니 문을 열고 있는데요. 아직까지 완벽한 수준은 아니지만 허가를 받은 한국 게임기업의 수는 꾸준히 늘고 있지만 중국 내 영향력은 예전만 못합니다. ‘검은 신화: 오공’처럼 중국 게임의 퀄리티가 급성장했기 때문인데요.

반대로 한국 엔터업계에서 가장 기대하는 K팝 콘서트는 중국의 현실을 안다면 당분간 쉽지 않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대규모 공연을 통해 수천, 수만명이 모이는 상황을 중국 정부는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입니다. 최근 중국 경제가 부침을 겪다보니 정부를 향해 불만의 화살이 향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측면이 크다는 해석이죠.

특히 중국은 최근 아이돌 그룹을 향한 팬덤 현상을 강하게 통제하는 분위기라 국내 아이돌의 대형 공연은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는데요. 지난 2021년 한국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본따 만든 예능 ‘청춘유니3’가 도화선이었습니다. 당시 자신이 좋아하는 출연자에게 투표하기 위해 스폰서 업체의 우유를 사서 투표 기회만 얻고 우유는 마시지 않고 버리는 사태가 큰 문제로 떠올랐죠. 팬덤으로 인한 사회적 영향력에 놀란 당국은 즉각 이를 규제하고 나섰습니다. 그때부터 중국 아이돌의 대규모 공연도 눈에 띄게 줄었죠. 이런 상황에 한중 정상회담이 열리고 대중문화를 담당하는 인사의 공연을 제안하는 인사 한번으로 중국의 입장이 바뀌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여러 번 앞선 기사에도 적었지만 영화나 드라마의 수입도 마찬가지로 봐야 합니다. 표현의 자유를 넘어 정부나 정치인, 심지어 국가 최고 지도자를 향해서도 풍자와 해학이 자유로운 우리나라와 중국은 분위기 자체가 다릅니다.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출판, 영화 등 미디어 산업 전반을 관리하고 감독하며 콘텐츠 검열을 담당하는 국가광파전시총국(광전총국)은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 산하 행정기관인데요. 당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중국의 체계를 감안하면 정부나 최고 지도자에 대한 비판을 담은 콘텐츠는 광전총국이 절대 허가를 하지 않습니다. 자국 콘텐츠가 그러한데 수입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죠. 사드 이후 한한령 해제 기대감을 키우며 허가를 받은 극소수의 한국 드라마나 영화만 봐도 정치적인 내용은 일절 찾아보기 힘든 것들입니다.

이런 분위기는 지난 8월 말 중국을 찾았던 대통령 특사단에서도 확인됐죠. 특사단 단장을 맡았던 박병석 전 국회의장은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한한령 해제까지는 넘어야 할 큰 산이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는데요. 박 전 의장은 중국 측에서 “유익하고 건강한 부분에서는 교류를 확대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 말을 해석하면 중국인들의 사상이나 정서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들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말로 받아들여도 무방하겠죠.

이제는 알아야 합니다. 한한령은 우리 생각처럼 해제되기 힘들어졌다는 것을. 정확히 말하면 사드 배치 당시와는 달라진 중국의 상황을 보면, 한중 정상이 단 한 번 만났다고 한한령이 풀릴 것이라는 섣부른 기대는 접는 게 좋습니다.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일 경북 경주 소노캄에서 열린 국빈만찬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한령 말고도 한중 정상회담 이후 여기저기서 최근 나오는 조치를 두고 모두 정상회담 성과로 확대 해석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는데요. 중국이 올해 말까지였던 한국인의 중국 방문시 무비자 조치를 내년 말까지 1년 연장한 것도 정상회담 성과로 포장할 정도입니다. 한국에게만 그랬다면 가능한 해석이지만 중국은 무려 45개국의 무비자 조치를 내년까지로 늘렸는데요. 한국만 예뻐한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카카오톡 해제 해프닝도 마찬가지로 보이는데요. 카카오톡은 중국에서 2014년경부터 정상적으로 사용을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카카오톡을 쓰려면 우회접속망(VPN)을 이용해야 했는데, 정상회담 이후 VPN 없이도 카카오톡이 된다는 주장이 나왔죠. 당연히 정상회담으로 한국과의 관계가 개선된 중국이 호의를 베풀었다고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그럴 수 있다는 생각과 사실 여부는 좀 더 꼼꼼하게 따져봐야 하겠죠. 이미 지난해 말부터 중국에 거주하는 우리 교민과 주재원, 유학생 사이에선 카톡이 되는 경우가 있다는 말이 나왔는데요. 휴대전화에선 가능했지만 PC에선 여전히 VPN이 필요했습니다. 사진이나 영상 전송, 링크 접속은 되지 않지만 텍스트 전송은 되곤 했죠.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었고 되다 안되길 반복한 수준이었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상황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사진이나 영상까지 보내지는 경우가 있어서 전보다 나아졌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것조차 되지 않는 경우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갑자기 최근 들어 이뤄진 것이 아닌데, 이를 두고 ‘정상회담 이후 중국이 달라졌어요’라는 주장을 하기엔 너무 성급해 보입니다.

우리나라는 중국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이제 한 걸음을 디뎠을 뿐입니다. 우리에게 중국은 주변 4강(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으로 여전히 중요한 나라죠. 한동안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였고, 지금도 여전히 경제적으로 미국만큼이나 중국의 영향력은 큽니다. 반면 중국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은 예전과는 달라졌죠. 철강, 조선, 화학 등 전통 산업은 물론 전기차,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도 반도체 정도를 제외하면 중국이 우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앞서고 있다는 평가가 우세합니다.

시 주석이 정상회담에서 한국과의 협력을 강조한 분야만 봐도 인공지능(AI), 바이오·제약, 녹색산업, 실버경제 등의 분야로, 중국이 아직 세계적인 수준에 오르지 못한 산업들인데요. 바꿔 말하면 중국은 이런 신흥산업 분야에서만 한국과 힘을 합쳐 기술을 끌어올리면 다른 것들은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한중 정상이 주고 받은 선물 중에 시 주석이 내놓은 샤오미 울트라 15 스마트폰은 최신 기종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시 주석이 이를 건네며 LG디스플레이가 장착돼 있다고 한 점은 디스플레이처럼 필요한 부분에선 한국과 협력했다는 점을 보인거죠. 그만큼 우리도 냉정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정상회담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긴 안목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다시 설정하고, 중국과 어떤 식으로 협력하고 긴장 관계를 유지할지 말입니다. 진짜 뒷문(백도어)이 무엇인지는 지금 당장이 아니라 나중에 밝혀질테니까요.



*김광수 특파원의 ‘중알중알’은 ‘중국을 알고 싶어? 중국을 알려줄게!’의 줄임말입니다. 중국에서 발생한 뉴스의 배경과 원인을 이해할 수 있도록 풍부한 경험을 토대로 중국의 특성을 쉽게 전달해 드립니다. 구독을 하시면 유익한 중국 정보를 전달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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