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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회장 영결식…생전 모습 담은 영상에 대우맨들 눈물
산업 기업 2019.12.12 14:50:52“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우리 국민 20% 정도가 해외로 나가서 일을 해도 부족하다.” 지난 9일 별세한 고(故)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영결식이 12일 오전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 대강당에서 치러졌다. 김 전 회장의 생전 육성을 모은 ‘언(言)과 어(語)’ 영상이 재생되자 유가족, 전 ‘대우맨’들을 비롯한 500여명의 조문객들은 눈물을 훔쳤다. 이날 조사(弔詞)를 맡은 장병주 대우세계경영연구회 회장은 “회장님은 35만의 대우 가족과 전 국민이 기억하고 인생의 좌표로 삼기에 충분했고, 회장님의 성취가 국민적 자신감으로 이어져 있다”며 “위기를 맞은 뒤에도 명예회복 대신 젊은 인재들을 키우는 데 여생을 바치고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길을 찾고자 하셨다”고 말했다. 손병두 전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도 추도사에서 “한국이라는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가 얼마나 넓은지, 인간이 꿈꿀 수 있는 곳은 얼마나 많은지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꽉 찬 분이었다”고 회상했다. 추모사가 끝난 뒤에는 장례절차에 따라 천주교식 종교행사가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대우 가족의 노래’를 부르며 고인의 영면을 빌었다. 장남 김선협 아도니스 부회장은 유족 대표로 추모객들에 감사인사를 전했다. 영결식을 마친 뒤에는 김 전 회장의 손자가 영정을 들고 대기 중인 운구 차량으로 이동했다. 부인 정희자 전 힐튼호텔 회장, 장남 김선협 부회장, 차남 김선용 벤티지홀딩스 대표 등이 차례로 영정 뒤를 따랐다. 장지는 충남 태안군 선영에 마련됐다./변수연기자 diver@@sedaily.com -
"세계를 경영한 민족주의자" 끝없는 애도물결
산업 기업 2019.12.11 17:19:25재계의 큰 어른이었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마지막 길을 같이하고자 하는 조문 행렬은 장례 둘째날인 11일에도 이어졌다. 고인을 추모하는 행렬이 끝없이 계속되면서 이틀에 걸쳐 다녀간 조문객 수도 약 1만명에 달했다. 오전9시께 주요 재계 인사 가운데 가장 먼저 고인의 빈소를 찾은 사람은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었다. 박 회장은 자신의 형인 박정구 전 금호그룹 회장의 장녀 박은형씨가 상주의 처라는 인연으로 조문했다. 박 회장은 “우리나라 재계의 큰 인물이었는데 돌아가셔서 안타깝다”는 심정을 전했다. 금호그룹은 지난 2006년 대우건설을 인수했다가 다시 내놓는 등 대우그룹과 인연이 깊다. 신동빈 롯데 회장, 이웅열 코오롱 명예회장은 조문을 마친 뒤 슬픔에 잠긴 얼굴로 입을 굳게 다문 채 빈소를 떠났다. 최태원 SK 회장은 조문을 마친 뒤 “한국 재계 1세대 기업인이자 큰 어른으로서, 청년들에게 꿈과 도전정신을 심어주셨던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 회장도 “한국 경제에 큰 역할을 하신 분이 떠나 너무나 안타깝다”고 전했다. 권영수 LG 부회장은 “탱크 같은 도전 정신이 있었던 분이라 존경해왔다”고 말했다. 정계 인사들도 빈소를 찾아 고인의 생전 모습을 추억했다. 오후8시께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함께 온 김상조 청와대 정책 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참여정부 시절 고인과의 인연을 언급하며 직접 명복을 빌고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고인과 경기고등학교 8년 선후배 사이인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원광대 총장 시절 학교에 많은 도움을 주신 고인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드렸다”고 회상했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은 “과거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근무할 때 고인이 경주에 대우 계열사 사장들을 이끌고 와 KDI 소속 박사들과 경제 관련 토론을 벌일 정도로 나라 경제를 걱정했다”고 전했다. 대우그룹이 해체되던 1999년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었던 고인 밑에서 부회장으로 있었던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도 빈소를 찾아 “김 전 회장은 노태우 대통령 시절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에 많은 역할을 하는 등 남북관계를 위해 많은 활동을 했다”고 돌아봤다. 이 밖에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수성·한승수·이홍구 전 국무총리와 한광옥 전 대통령비서실장,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정계 인사는 물론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최재원 SK 수석부회장,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 이장한 종근당 회장 등 재계 인사, 야구선수 류현진씨와 배우 김정은씨 등이 조의를 표했다. 영결식은 12일 오전8시 아주대병원 별관 대강당에서 치러질 예정이며 장지는 김 전 회장의 모친 선영이 있는 충남 태안군에 마련될 계획이다./변수연기자 diver@@sedaily.com -
[영상] ‘재계 큰 어른’ 김우중 전 회장 빈소, 둘째날에도 정재계 조문 행렬
산업 기업 2019.12.11 11:34:59재계의 큰 어른이었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마지막을 같이 하고자 하는 조문 행렬은 빈소가 차려진 둘째 날까지도 이어졌다. 11일 오전에는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최태원 SK(034730)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이웅열 코오롱 회장, 손길승 SKT 명예회장, 박지만 EG 회장,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원장 등 정·재계 인사들이 조문객으로 방문했다. 오전 9시께 가장 먼저 고인의 빈소에 발걸음한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은 직접적인 친분은 없었으나 형인 박정구 전 금호그룹 회장의 장녀 박은형 씨가 상주의 처로, 사돈의 인연으로 방문했다. 박 회장은 “우리나라 재계의 큰 인물이었는데 돌아가셔서 안타깝다”는 심정을 전했다. 대우 그룹 관계자는 “금호와 대우가 여러 사업적 측면에서 인연이 많았다”고 전했다. 대우건설은 워크아웃 이후 2006년 금호그룹에 인수됐다 2010년 유동성 위기로 다시 산업은행 품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손길승 SKT 명예회장도 방문했다. 손 명예회장은 과거 고인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으로 근무하던 1999년 2월~10월 당시 전경련 부회장으로 함께 일했다. 1999년 8월은 대우 그룹의 모든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이 되면서 그룹이 해체된 시점이다. 고인이 가장 힘들 때 함께 일한 손 회장은 그를 기리며 “우리나라 기업인들이 전세계 어디서도 가서도 활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마련하셨다. 비즈니스 결단을 할때 반드시 최일선에서 결정권자하고 같이 만나서 그 자리에서 결정하는 과단성과 담대함을 보여줘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노태우 대통령 시절 남북 기본합의서가 채택될 때도 많은 활동 했다”며 “기업활동도 열심히 했지만 우리 나라의 미래를 위해 북한과의 관계서도 많은 활동을 하셨다”고 전했다. 오전 10시께 입관 절차가 시작된 직후 조문객으로 방문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고인과는 경기고등학교 8년 후배다. 정 전 장관은 남북 기본합의서 채택 등 고인이 남북 관계에 큰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도착한 신동빈 롯데 회장, 이웅열 코오롱 명예회장은 조문을 마친 뒤 슬픔 어린 표정으로 입을 굳게 다문 채 빈소를 떠났다. 최태원 SK 회장은 조문을 마친 뒤 “한국 재계 1세대 기업인이자 큰 어른으로서, 청년들에게 꿈과 도전 정신을 심어주셨던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짤막히 전했다. 이밖에 고인과 평소 연이 깊었던 장치혁 전 고합 회장, 이홍구 전 국무총리, 오명 전 장관, 한광옥 전 비서실장, 한승수 전 국무총리, 이장무 전 서울대학교 총장 등 각계 인사들이 빈소를 찾아 조의를 표했다. 오후에는 2시께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 이장한 종근당 회장이 빈소를 찾을 예정이다. /변수연기자 diver@@sedaily.com -
김우중, 불꽃같던 기업가정신·창조적 도전정신이 그립습니다
산업 기업 2019.12.10 20:25:38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시작해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세계경영’의 신화를 일군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지난 9일 오후11시5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김 전 회장은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에 들어갔다. 향년 83세. 김 전 회장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지론 아래 남들보다 한발 앞서 세계 시장에 진출한 한국 산업계의 거목이다. 삼성과 현대를 키운 이병철·정주영 등 1세대 창업가와 달리 샐러리맨으로 시작해 대우를 한때 재계 2위 기업으로 키운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난 1990년대 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오명을 남기기도 했다.김 전 회장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그가 보여준 불굴의 기업가정신과 도전정신은 지금 우리 경영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지적이다. 미중 무역분쟁과 수출·내수 동반 부진, 정부의 반기업·규제정책 등 안팎으로 어려운 경영환경에서 김 전 회장이 몸소 보여준 기업가정신과 도전정신에서 위기극복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10일 추도사를 통해 “지금 우리 경제는 큰 어려움에 처해 있어 그 어느 때보다도 김 전 회장의 혜안과 경험이 절실히 필요한 때”라면서 “전 세계를 누비며 답을 찾았던 김 전 회장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지는 이유”라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코멘트를 통해 “경영계는 고인의 기업가정신과 경영철학, 국가 경제발전을 위한 헌신을 이어받아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산업 고도화를 통한 국가 경제발전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김 전 회장은 별도의 유언을 남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장병주 대우세계경영연구회 회장은 이날 아주대병원에 마련된 빈소에서 “평소에 마지막 숙원사업으로 진행하던 해외 청년사업가 양성 사업을 잘 유지하고 발전시키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고 전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지며 영결식은 12일 오전8시 아주대병원 별관 대강당에서 열릴 예정이다. 장지는 충남 태안군 선영이다. 유족은 부인 정희자 전 힐튼호텔 회장, 장남 김선협 아도니스 부회장, 차남 김선용 벤티지홀딩스 대표, 장녀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사위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 등이 있다./이재용기자 jylee@@sedaily.com -
"도전·개척의 역사…세계일류 향한 김우중 회장의 첫걸음 기억할 것"
산업 기업 2019.12.10 17:37:58재계가 슬픔에 잠겼다. ‘세계경영’의 선구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빈소를 찾은 인사들은 눈물을 보이는 등 안타까운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10일 수원 아주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차려진 빈소에는 김 전 회장을 애도하는 가족들과 고인의 뜻을 기리는 재계, 정치계, 옛 대우그룹 관계자 등 조문 행렬이 줄을 이었다. 빈소는 비교적 소박하게 차려졌다. 생전 김 전 회장은 “장례 문화가 달라진 만큼 소박하고 조촐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주변에 여러 번 밝혔다. 장례는 고인과 유족들의 뜻에 따라 천주교식으로 진행된다. 영정 옆으로는 김 전 회장이 다녔던 성당에서 보낸 근조기가 걸렸고 위패에는 김 전 회장의 세례명인 ‘바오로’가 함께 쓰였다. 고인은 평소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 7일부터 급격히 폐렴 증세가 악화되자 가족들은 마음의 준비를 했고 고인은 9일 밤 부인과 자녀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에 들었다. 이날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은 침통한 표정이었다. 대기업 오너가 중에서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큐셀 부사장이 가장 먼저 빈소를 찾았다. 오후2시27분께 빈소를 찾아 유가족들과 10여분간 대화를 한 후 떠났다. 감정이 북받치는지 장례식장을 떠나기 전 잠시 멈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김승연 회장과 김 전 회장은 경기고 동문으로 각별한 관계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도 오후2시50분께 빈소에 모습을 드러낸 후 40여분간 머물다가 장례식장을 떠났다. 유족에 따르면 김 전 회장과 이 회장 내외는 오랜 골프 친구로 전해졌다. 오후3시에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방문했다. 이어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도 빈소를 찾았다. 그는 5분여간 조문한 후 “안타깝습니다”라는 소회를 밝히고 빈소를 떠났다. 재계 인사들도 연이어 조문하고 김 전 회장의 세계경영 정신을 기렸다. 황각규 롯데지주 대표이사 부회장은 “베트남·우즈베키스탄 등지에 대우가 먼저 나가 기틀을 잡아준 덕에 롯데도 손쉽게 자리 잡을 수 있었다”고 김 전 회장의 업적을 평가했다.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도 이날 빈소를 방문했다. 김 전 회장의 경기고등학교 2년 후배인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겸 CJ그룹 대표이사는 “과거 압축성장 시기 대표적 경영인이었다”며 “이런 분들이 많이 활동해서 경제를 빨리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하셨다”고 평가했다. 이날 빈소에는 옛 ‘대우맨’들도 속속 모여들었다. 전날 밤 부고를 듣고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것이다. 김태구 전 대우자동차 회장을 비롯해 장병주 전 ㈜대우 사장, 장영수·홍성부 전 대우건설 회장, 강병호·김석환 전 대우자동차 사장 등 ‘김우중 사단’이 한자리에 모였다. 김태구 전 회장은 “김 전 회장님은 저희와 평생을 같이 지내신 분으로 어떻게 보면 가족이기도 하고 큰 스승이기도 하다”며 “생전 다음 세대, 후진을 잘살게 하기 위한 ‘희생’을 강조하셨다”고 말했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도 빈소를 찾아 “오늘 떠나신 회장님이 역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제단체와 정치권에서도 일제히 논평을 내고 김 전 회장을 추모했다. 김 전 회장이 수장을 맡기도 했던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허창수 회장은 추도사를 통해 “먼 곳에서 들려온 애통한 소식에 밀려드는 슬픔을 주체할 길이 없다”며 “우리나라가 일류 강국으로 우뚝 서게 된다면 그것은 김 전 회장의 첫걸음 때문임을 기억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김 전 회장은 세계경영을 내다보는 선견지명과 해외수출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대우그룹을 국내 정상의 기업으로 이끌었고 우리나라가 자동차·조선·중공업 산업 분야에서 고도화의 내실을 다지고 세계적인 수출국가의 대열에 합류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고인의 업적을 기렸다. 정치계에서도 추모의 물결이 줄을 이었다.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또 한 분의 큰 별이 떠나셨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박 의원은 “김 회장님은 김대중 대통령님과도 각별하신 관계로 야당 때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며 “하늘나라에서 DJ 내외를 만나 드리고 싶었던 말씀도 많이 나누시라”고 추모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역시 논평을 내고 “김 전 회장의 도전정신과 기업가정신을 기리겠다”며 애도를 표했다. /수원=서종갑기자 고병기기자 gap@@sedaily.com -
샐러리맨서 재계 2위 총수, 그리고 그룹 해체…비운의 혁신가 김우중
산업 기업 2019.12.10 17:34:37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삶에는 한국 사회의 고도성장 과정이 그대로 응축돼 있다. 김 전 회장은 샐러리맨으로 시작해 너른 인맥과 발 빠른 판단 및 추진력으로 한때 대우그룹을 재계 서열 2위까지 끌어올렸다. 이후 정상을 향해 끝없이 비상할 것처럼 보였지만 급추락하는 ‘이카루스’처럼 한순간에 무너져 대우조선해양 등 일부 기업에서만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김 전 회장에 대한 업계 평가도 확실히 나뉜다. 글로벌 경영으로 한국 기업의 보폭을 한층 넓힌 선각자적 경영인이라는 평가와 무분별한 차입경영 및 분식회계 등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초래한 인사라는 평가가 엇갈린다. 김 전 회장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전쟁 등의 영향으로 고된 학창 시절은 보낸다. 1936년 대구에서 태어난 김 전 회장은 한국전쟁 당시 아버지인 김용하 전 제주도지사가 납북되며 5남매의 장남으로서 집안을 책임진다.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으며 이후 연세대동문회장을 지낼 정도로 마당발을 자랑했다. 김 전 회장은 대학 졸업 후 친척이 운영하던 섬유수출 업체 한성실업에 근무하며 세일즈맨으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다. 업계에서는 김 전 회장의 ‘세계경영’ 성공 신화가 만 30세 때인 지난 1967년부터 싹을 틔웠다고 보고 있다. 당시 청년 김우중은 트리코트 원단 생산 업체인 대도섬유의 도재환씨와 손잡고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대우(大宇)는 대도섬유의 대(大)와 김우중의 우(宇)를 따서 만든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자본금 500만원으로 시작한 대우실업은 첫해부터 싱가포르에 트리코트 원단과 제품을 수출해 58만달러 규모의 수출실적을 올렸으며 인도네시아·미국 등지로 시장을 넓혀 성공을 거뒀다. 1973년에는 영진토건을 인수해 대우개발로 간판을 바꿔 달고 무역 부문인 대우실업과 합쳐 그룹의 모기업 격인 ㈜대우를 출범시켰다. 1976년에는 옥포조선소를 인수해 대우중공업으로 탈바꿈시켰으며, 1974년 인수한 대우전자와 1983년 대한전선 가전사업부를 합쳐 국내 3대 가전사인 대우전자를 만든다. 1978년에는 대우자동차의 전신인 새한자동차를 인수하고 1983년 대우자동차로 상호를 변경했다. 거침없는 확장경영의 결과 창업 15년 만에 대우는 자산 규모 국내 4대 재벌로 성장했다. 김 전 회장은 1980년대 ‘3저 호황’을 타고 해외진출에 성공하며 대우를 세계에 알렸다. 1990년대 동유럽의 몰락을 계기로 폴란드와 헝가리·루마니아·우즈베키스탄 등지에서 자동차 공장 등을 인수하거나 설립하며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본인의 경영철학을 하나둘 현실화시켰다. 당시 김 전 회장은 연간 해외 체류기간이 280일을 넘길 정도로 해외경영에 매진했다. 하지만 1997년 11월 닥친 외환위기는 세계경영 신화의 갑작스러운 몰락을 가져왔다. 당시 정부 경제관료들과 갈등과 마찰을 빚으면서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으며 삼성 등과 시도했던 이른바 ‘빅딜’은 잇따라 좌절됐다. 1998년 3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은 김 전 회장은 ‘수출론’을 부각하며 자금지원을 기대했지만 관료들과의 갈등으로 되레 개혁 대상으로 내몰리기도 했다. 대우그룹은 1999년 말까지 41개 계열사를 4개 업종, 10개 회사로 줄인다는 내용의 구조조정 방안을 내놓았지만 1999년 8월 모든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이 되며 그룹이 끝내 해체됐다.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2006년 징역 8년6월과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9,253억원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08년 1월 특별사면됐다. 2010년 이후에는 후진 양성을 위한 ‘글로벌 청년사업가 양성사업(GYBM)’을 통해 베트남 등 동남아 4개국에서 1,000여명의 청년사업가를 배출하기도 했다. 다만 대우그룹 해체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김 전 회장은 2014년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가 집필한 대화록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통해 대우그룹의 해체는 경제관료들의 정치적 판단 오류 때문이라는 ‘기획해체론’을 주장했다. /양철민·고병기기자 chopin@@sedaily.com -
골프계서 영화·미술계서…'김우중 경영철학' 잇는 2세
서경골프 골프일반 2019.12.10 17:30:44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별세 소식에 그의 유족들도 새삼 조명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1세대 기업인의 뒤를 이어 그의 유족들도 기업을 이끌고 있다. 장남인 김선협(50)씨는 ㈜아도니스 부회장, 차남 김선용(44)씨는 투자회사 벤티지홀딩스의 대표다. 사위는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이다. 김선협 부회장이 재직 중인 ㈜아도니스는 경기도 포천에 있는 27홀 규모 아도니스 골프장과 레저시설을 운영하는 회사다. 부인 정희자씨와 아들 등 가족 지분이 80%가량이던 아도니스 골프장은 워크아웃 직전인 지난 1999년 6월 상호가 대우레저에서 아도니스로 바뀌었다. 김 부회장은 아도니스 골프장뿐 아니라 계열사인 경남 양산의 에이원 골프장, 경남 거제의 드비치 골프장의 대주주로도 알려졌다. 2016년부터 한국프로골프협회(KPGA)와 대회장 무상 임대차 계약을 맺고 메이저 대회인 KPGA 선수권대회를 에이원 골프장에서 개최해오는 등 골프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차남이자 막내인 김선용 대표의 벤티지홀딩스는 영화 ‘추격자’의 대성공 이후 영화배급 사업에도 뛰어들며 국내 영화계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아버지가 ‘샐러리맨의 신화’라면 장녀이자 외동딸인 김선정(54)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는 미술계의 핵심 인재다. 이화여대를 졸업한 후 당시 변호사이던 남편 김상범 회장과 함께 미국 유학을 떠난 김선정 대표는 뉴욕에서 만난 백남준이 “큐레이터를 해보라”고 휘트니미술관에 인턴십을 추천한 것을 계기로 전시기획자의 길로 들어섰다. 김선정 대표는 어머니 정희자씨가 관장이던 아트선재센터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며 가장 실험적인 현대미술을 적극적으로 소개했고 2005년에는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 미술제인 베니스비엔날레의 한국관 커미셔너가 됐다. 2005년 6월10일 전시 개막일에는 딸의 전시를 관람하고 축하하기 위해 정 전 관장이 이탈리아 베네치아 현장을 방문했는데 1999년 이후로 유럽 등지를 돌며 장기 해외체류 중이던 김 전 회장이 참석할지에 당시 큰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은 그달 중순 베트남을 거쳐 귀국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정신으로 전 세계에서 전시를 열며 한국 미술가를 해외에 알리고 있는 김선정 대표는 영국의 미술전문매체 ‘아트리뷰’가 매년 선정하는 세계 미술계의 ‘파워 100인’에서 2013~2015년, 2017~2019년에 이름을 올리는 등 한국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로 꼽힌다. 올해는 베니스비엔날레 심사위원 5인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박민영·조상인기자 mypark@@sedaily.com -
수입 많지 않던 기사들 대우 계열사 사범으로…故 김우중 전 회장, 바둑계에도 발자취
산업 기업 2019.12.10 15:45:159일 밤 별세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바둑광’으로도 유명했다. 장거리 해외 출장 때마다 바둑인을 대동해 기내에서 바둑을 두는가 하면 당시 수입이 많지 않던 전문기사들을 대우 계열사 등 기업체 바둑 사범으로 위촉, 월급을 지급하기도 했다. 서울 종로구 옛 회관 건물이 비좁아 애로가 많다는 바둑인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현재 한국기원이 입주해있는 성동구 회관 건물을 1994년 희사한 것도 김 전 회장이다. 1983년 한국기원 2대 총재로 취임해 바둑계를 이끌기도 했는데 재임 시절 동양증권배와 진로배 등 연이은 국제기전 창설로 기전의 다양화와 국제화에 공헌했다. 고인은 한국 바둑이 세계 최강에 올라서는 디딤돌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
김우중 추징금 18조 환수 못해…前대우 임원들이 부담해야
사회 사회일반 2019.12.10 14:53:58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지난 9일 별세함에 따라 그가 남긴 18조원에 달하는 추징금은 공범으로 함께 유죄 판결을 받은 전직 대우그룹 임원들이 연대 책임으로 부담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까지 집행된 추징금은 892억원에 불과하다. 10일 법원에 따르면 2006년 11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김 전 회장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상 횡령·배임 혐의로 징역 8년 6개월과 벌금 1,000만원 등을 확정받고 17조9,253억9,862만1,789원의 추징금을 명령받았다. 한국은행과 당시 재경부 장관에게 신고하지 않고 해외로 빼돌린 금액이다. 김 전 회장은 2006년 5월 1심에서 징역 10년, 벌금 1,000만원, 추징금 21조4,484억3,086만1,106원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일부 혐의를 무죄로 인정해 감형됐다. 김 전 회장과 검찰이 상고를 포기하면서 2심 형량이 그대로 확정됐다. 김 전 회장은 이후 14년 동안 추징금 미납 순위 1위를 유지했다. 김 전 회장은 2008년 1월 특별사면됐지만 추징금은 그대로 살아 있다. 검찰에 따르면 검찰은 현재까지 김 전 회장과 공범으로 지목된 전직 임원들에게 총 892억원을 집행했다. 다 합쳐도 전체 추징금의 0.5%밖에 안 되는 액수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의 별세로 남은 금액을 전부 전직 대우그룹 임원들에게 집행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은 김 전 회장이 해외 도피 중이던 2005년 5월 강병호 전 대우 사장 등 임원 7명에게 추징금 23조358억원을 선고했다. 김 전 회장과 공범으로 엮여 있어 사실상 같은 추징금으로 분류된다. 유죄를 확정받은 전직 임원 7명 중 현재 생존해 있는 사람은 강병호·장병주 전 사장 등 5명이다. 김 전 회장은 이 밖에도 지방세 35억1,000만원, 양도소득세 등 국세 368억7,300만원도 체납했다. 자신의 차명주식 공매대금을 세금 납부에 먼저 써야 한다며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를 상대로 소송을 내기도 했지만 2017년 대법원은 캠코 손을 들어줬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
김우중 추징금 18조원 중 900억원만 집행… 대우 前임원들 연대 책임
사회 사회일반 2019.12.10 13:29:11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지난 9일 별세함에 따라 그가 남긴 18조원에 달하는 추징금 회수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현재 집행액은 892억원에 불과해 분식회계 사건 당시 공범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전직 대우그룹 임원들이 연대 책임을 질 전망이다. 10일 법원에 따르면 지난 2006년 11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김 전 회장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 상 횡령·배임 혐의로 징역 8년6개월과 벌금 1,000만원 등을 확정받고 17조9,253억9,862만1,789원의 추징금을 명령받았다. 한국은행과 당시 재경부 장관에게 신고하지 않고 해외로 빼돌린 금액이다. 김 전 회장은 2006년 5월 1심에서 징역 10년, 벌금 1,000만원, 추징금 21조4,484억3,086만1,106원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일부 혐의를 무죄로 인정해 감형됐다. 김 전 회장과 검찰이 상고를 포기하면서 2심 형량은 그대로 확정됐다. 김 전 회장은 이후 14년 동안 추징금 미납 순위 1위를 유지했다. 김 전 회장은 이듬해 특별사면을 받았지만 추징금은 사라지지 않았다. 검찰에 따르면 현재까지 검찰이 김 전 회장에게 추징한 금액은 887억원에 불과하다. 공범으로 지목된 전직 임원들에게는 5억원을 집행했다. 다 합쳐도 전체의 0.5% 밖에 안되는 액수다. 김 전 회장 별세로 검찰은 나머지 금액을 전직 대우그룹 임원들에게 집행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은 김 전 회장이 해외 도피 중이던 2005년 5월 강병호 대우 전 사장 등 임원 7명에게 추징금 23조358억원을 선고했다. 김 전 회장과 공범으로 엮여 있어 사실상 같은 추징금으로 분류된다. 김 전 회장은 이 밖에도 지방세 35억1,000만원, 양도소득세 등 국세 368억7,300만원도 체납했다. 자신의 차명주식 공매대금을 세금 납부에 먼저 써야 한다며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를 상대로 소송을 내기도 했지만 2017년 대법원은 캠코 손을 들어줬다./윤경환·조권형기자 ykh22@@sedaily.com -
"다음 세대 위해 희생하자"…고인 되새기는 조문객들
산업 기업 2019.12.10 12:49:22“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님은 저희와 평생을 같이 지내신 분입니다. 어떻게 보면 가족이기도 하고 큰 스승이십니다. 생전 다음 세대, 후진을 잘살게 하기 위한 ‘희생’을 강조하셨습니다. 희생이라는 말이 생소하던 그때(대우 초창기)도 우리 대우인들은 그 뜻을 받아들이고 지금도 실천하고 있습니다. 10일 오전 수원 아주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차려진 빈소에는 김 전 회장을 애도하는 가족들과 고인의 뜻을 기리는 옛 대우그룹 관계자들 등 조문 행렬이 줄을 이었다. 고인은 건강 악화로 아주대병원에서 지난해 12월부터 1년 가량 입원 치료를 해왔다. 김 전 회장은 9일 오후 11시50분 별세했다. 고인은 평소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고 지난 7일부터 급격히 폐렴 증세가 악화했다. 이후 가족들은 마음의 준비를 했고 고인은 9일 밤 부인과 자녀, 손주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에 들었다. 김 전 회장은 임종 전 별다른 유언을 남기지 않았지만 평소 ‘희생 정신’을 강조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우 초기 멤버로 참여해 조선, 중공업 등 대우그룹 계열사를 두루 거친 김태구 전 대우자동차 회장은 “김 전 회장은 후진들을 잘살게 하기 위한 희생을 강조했다”며 “대우세계경영연구회에서도 해외에서 활동할 후배들을 양성할 정도로 희생 정신을 끝까지 실천해왔다”고 설명했다. 이날 조문객 사이에서는 침통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김태구 회장은 “김 전 회장님이 오랫동안 고생을 하신데다가 활동을 못하셔서 다들 애통해하고 있다”며 “인재양성 등 사업을 더 활발히 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못하셔 안타깝다”고 말했다. 고인의 뜻을 이어받아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GYBM 활동을 계속할 예정이다. GYBM은 해외 대학과 협력해 현지에서 우리나라 청년들을 교육하고 해당 국가에 취업시키는 프로그램이다. 중급 이상의 어학 능력을 갖춰 현지 기업에서 경험과 실력을 쌓아 창업까지 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한다는 목표를 세워 ‘김우중 사관학교’로 불린다. 2011년 베트남에서 1기 40명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베트남과 미얀마, 인도네시아에서 1,000여명을 배출했다. 올해도 150명을 선발해 지난 7월부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생전 김 전 회장은 “청년들이 해외에서 창업하고, (해외로) 수출하는 게 좋은 방향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이런 과정을 하다 보면 우리나라는 해외에서 많은 네트워크가 생기고, 그 나라에서 수출을 늘리고, (기업체의) 지점이 생겨서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김태구 회장은 출장 경험 하나를 꺼내며 생전 고인을 추억했다. 한번은 김 전 회장과 유럽에서 돌아오는 길에 홍콩을 들렀는데 방이 없어 한방에 묵었다며 그는 “깜빡 잠이 들었다가 새벽 4시경 깨니까 회장님이 방 한 구석에 책을 읽고 있었다”며 “언제 주무시냐 물으니까 오전 8시 조찬이 있어 못 일어날 것 같다면서 밤을 꼴딱 샜다”고 떠올렸다. 생전 고인은 부족한 잠은 비행기, 차량 이동 시간 중간 쪽잠으로 해결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면 전 김 전 회장은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주변 사람들은 또렷이 알아본 것으로 전해졌다. 김태구 전 회장은 “돌아가시기 열흘 전 회장님을 뵀는데 밝은 표정으로 반겨 주셔 참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날 빈소는 비교적 소박하게 차려졌다. 생전 김 전 회장은 주변에 “요즘 장례 문화가 많이 달라지고 있는 만큼 소박하게 조촐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여러 번 밝혔다. 대우 측은 사전에 조문객들의 조화와 부의금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빈소에는 현직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계 인사들과 대우 계열사, 문화 예술계 인사들이 보낸 조화가 속속 들어오고 있다. 장례는 고인과 유족들의 뜻에 따라 천주교식으로 진행된다. 영정 옆으로는 김 전 회장이 다녔던 성당에서 보낸 근조기가 걸렸고, 위패에는 김 전 회장의 세례명인 ‘바오로’가 함께 쓰였다. 이날 조문객으로는 홍성구·장영수 전 대우건설 회장, 추호석 전 대우중공업 사장, 신영균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 김석환·강병호 전 대우자동차 사장, 유기범 전 대우통신 사장, 박형주 아주대 총장,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등이 다녀갔다. 이날 오후 3시께는 해외 출장 일정이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대신해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 등이 부의할 예정이다. 경제·경영계도 애도의 뜻을 표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날 논평을 통해 “우리기업의 글로벌 경영의 효시이자 한국 경제발전 성공의 주역이신 김우중 회장께서 별세하신 데 대해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무엇보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장 앞서서 개척하셨던 회장님의 기업가 정신은 경제계를 넘어 우리 사회에 오래도록 귀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김 전 회장은 세계 경영을 내다보는 선견지명과 해외수출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대우그룹을 국내 정상의 기업으로 이끌었고 우리나라가 자동차·조선·중공업 산업 분야에서 고도화의 내실을 다지고 세계적인 수출국가의 대열에 합류하는 데 크게 기여하셨다”며 “고인의 기업가정신과 경영철학, 국가 경제발전을 위한 헌신을 이어 받아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산업 고도화를 통한 국가경제 발전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애도를 표했다. 정치계에서도 추모의 물결이 줄을 이었다.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도 각별한 관계였으며 야당 때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애도를 표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김 전 회장과 독대한 일화를 소개하며 “김 회장님께서 준비하신 자료를 가지고 외환위기 극복은 수출만이라며 혼신을 바쳐 당선자께 브리핑하시던 열정적 모습에서 ‘저런 실력과 열정이 대우를 창업 성장시켰구나’하고 강하게 느꼈다”고 당시 상황을 전하기도 했다. 영결식은 오는 12일 오전8시 아주대병원 별관 대강당에서 치러질 예정이다. 장지는 김 전 회장의 모친 선영이 있는 충남 태안군에 마련될 계획이다./수원=서종갑기자 gap@@sedaily.com -
박지원 “김우중 회장, DJ와 각별했다” 추모글 올려
정치 정치일반 2019.12.10 11:32:02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이 10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별세 소식에 애도를 표하고 “또 한 분의 큰 별이 떠나셨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박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김 회장님은 김대중 대통령님과도 각별하신 관계였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박 의원은 “(김 전 대통령과는) 야당 때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며 “DJ는 김 회장님을 신임하셔 전경련 회장으로 피선된 김 회장님 말씀을 많이 참고하셨고, 대기업 간 구조조정에도 견해를 중시하셨다”고 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대우그룹 해체 사태와 관련한 일화도 전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은 )대우그룹 소생방안을 검토하여 직보하라 하셨으나 정부 부처 장관들은 김 회장님과 대립했고, 결국 대우자동차 등 6개사만 회생방침을 결정했다”고 회상했다. 또 “이 과정에서 불행한 일이 생겨 대우는 완전히 김 회장님 손을 떠나게 되었고 김 회장님은 외유를 떠났다”고 소개했다. 박 의원은 “(김 회장이)건강이 안 좋으셨지만 베트남에 한국 청년들을 교육 훈련해 현지 기업에 취업시키는 등 우리 청년들의 동남아시아에 진출을 도움으로써 당신의 마지막 모든 것을 조국의 미래를 위해 환원하겠다 하셨다”고 했다. 그는 김 회장과 본인의 인연도 소개했다. 박 의원은 “DJ 퇴임 후 회장님께서 서울구치소에서, 저도 대북송금 특검으로 구치소에서 조우, 신촌세브란스병원에도 옆방에 입원 병원 생활도 함께 했다”고 언급했다. 박 의원은 “회장님 편히 쉬십시오. 거듭 명복을 빕니다”라며 “하늘나라에서 DJ 내외를 만나 드리고 싶었던 말씀도 많이 나누시라”고 추모했다./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 -
박지원 "故 김우중 회장, 누가 그분을 평가할 수 있을까요"
정치 정치일반 2019.12.10 11:20:42대안식당 박지원 의원이 10일 별세한 고(故)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의 특별한 인연을 소개하며 추모의 글을 남겼다. 박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 회장님은 김대중 대통령님과도 각별하신 관계이셨으며 야당 때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하셨다”며 IMF 위기 극복을 위해 노력했던 일화를 전했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통령당선자 시절 5대그룹 회장들과 오찬 간담회를 갖기로 했고, 동구권 자동차 수출시장 개척차 출장중이셨던 김 회장님은 당장 귀국해 간담회에 참석하시겠다 하셨다”며 “삼청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김 전 대통령과 독대하며 혼신을 바쳐 당선자께 브리핑하시던 열정적 모습에서 ‘아하 저러한 실력과 열정이 대우를 창업 성장시켰구나’하고 강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대우그룹 회생방안 마련 당시 일화로는 “(김 전 대통령이)소생방안 검토 후 직보하라 하셨으나 정부부처장관들은 김 회장님과 대립하며 보고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보고해 6개사만 회생방침을 결정했다”며 “이 과정에서 불행한 일이 생겨 대우는 완전히 김 회장님 손을 떠나게 됐고, 김 회장님은 외유를 떠나셨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전 대통령 퇴임 후 서울구치소에서 조우하고,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도 옆 병실을 쓰는 등의 인연을 소개한 뒤 “한국청년들을 교육훈련시켜 현지 기업에 취업시키는 등 우리청년들의 동남아시아에 진출을 도움으로써 당신의 마지막 모든 것을 조국의 미래를 위해 환원하겠다 하셨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분의 큰 별이 떠나셨다. 누가 그분을 평가할 수 있겠냐”며 “하늘나라에서 DJ 내외를 만나셔서 드리고 싶었던 말씀도 많이 나누시고, 명복을 빈다”고 명복을 빌었다. /김진선기자 sestar@@sedaily.com -
"자신을 낮출 줄 아는 타고난 세일즈맨"
산업 기업 2019.12.10 11:07:24“자신을 낮출 줄 아는 타고난 세일즈맨이셨습니다.” 정성립 (사진)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10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정 전 사장은 35년을 ‘대우맨’으로 살아온 경영인이다. 대우조선해양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으며 소임을 다하고 지난 3월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정 전 사장은 같은 달 열린 대우그룹 창립 52주년 기념행사에서 ‘자랑스러운 대우인 패’를 받았다. 정 전 사장은 김 전 회장에게 ‘세일즈맨’의 소양을 배웠다고 했다. “처음 회장님을 뵀던 때는 영업부장 때로 당시 노르웨이 선주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던 자리였습니다. 대기업 회장이라는 자신감을 앞세우지 않고 ‘을’의 위치에서 선주들을 대하는 모습에서 세일즈맨으로서 배울 게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상대방에게 위압감을 주지 않으려고 배려하시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때 ‘참 날카롭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김 전 회장은 “현장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 경영인이었다. 정 전 사장은 지난 1980년대 후반 노사 분규가 극심했던 대우조선이 안정을 찾을 수 있었던 것도 현장을 중시했던 김 전 회장의 노력 덕분에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정 전 사장은 “김 전 회장은 2년간 현장에 머물면서 직원들과 소탈하게 어울려 노사관계 안정에 기여했다”며 “김 전 회장이 자전거를 타고 넓은 야드(작업장)를 누비던 일화가 책과 사진으로 잘 알려져 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정 전 사장은 “김 전 회장은 모든 대우 직원들이 마음으로 존경하는 분이었다”며 “대우그룹이 해체되고 나서도 대부분의 임직원들 사이에는 김 전 회장에 대한 존경심이 남아 있다”고 전했다. /한동희기자 dwise@@sedaily.com -
[김우중 대우회장 별세] 자본금 500만원에서 재계2위, 그리고 해체까지
산업 기업 2019.12.10 10:33:26자본금 500만원에서 재계 2위까지, 그리고 그룹 해체까지. 고(故) 김우중 전 회장보다 먼저 사라진 대우그룹은 한국 경제의 압축 성장기부터 외환위기에 이르기까지 흥망성쇠를 고스란히 보여준 단면과도 같았다. 열 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직원 5명으로 시작해 세계를 호령했지만 외환위기를 맞아 공중분해 되며 ‘대우’라는 이름만 흔적처럼 남았다. 대우그룹은 1967년 3월 22일 셔츠 내의류 원단을 동남아시아에 팔던 대우실업으로 출발했다. 대우실업은 김 전 회장의 사업가적 기질과 정부의 수출 육성책이 시너지를 내며 급성장했다. 트리코트 원단과 제품을 수출해 첫 해부터 58만 달러 규모의 수출실적을 올렸고 인도네시아 , 미국 등지로 시장을 개척하는데 성공했다. 1968년에는 수출 성과를 인정 받아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 기회가 열려있던 고도성장기. 김 전 회장은 기업 인수·합병을 통해 대그룹으로의 확장을 꿈꿨다. 1973년엔 한 해 동안 대우기계, 동양증권, 대우건설 등 10여 개의 회사를 인수했고, 1976년에는 한국기계와 옥포조선소를 묶어 조선업을 시작했다. 현재도 대우조선해양으로 남아있는 대우중공업이다. 1978년엔 자동차 사업으로도 진출했다. 대우자동차의 전신 새한자동차를 인수하고, 1983년 대우자동차로 이름을 바꿨다. 1974년 세운 대우전자는 1983년 대한전선 가전사업부를 더한 뒤 주력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의류 원단을 수출하던 회사에서 현재까지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전자, 자동차, 조선업의 계열사를 거느린 대형그룹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룹의 상징이었던 서울역 앞 대우빌딩(현 서울스퀘어)도 1977년 완공됐다. 지상 23층으로 당시 한국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다. 대우그룹은 이 시기 ‘세계경영’의 터를 닦기도 했다. 1969년 한국 기업 최초로 해외 지사(호주 시드니)를 세웠고, 1976년 에콰도르, 1977년 수단, 1978년 리비아 등 현재에도 생소한 시장에 진출하며 해외사업의 기틀을 마련했다. 창사 15년 만에 자산 규모 국내 4위의 재벌로 성장한 대우그룹은 1990년대에도 확장을 이어갔다. 특히 1990년대 동유럽이 몰락하면서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우즈베키스탄 등지에서 자동차공장을 인수하거나 설립하며 대우그룹의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 잡은 ‘세계 경영’을 완성했다. 대우그룹은 절정기에 396개 현지법인을 포함, 해외 네트워크가 589곳에 달했다. 재계 순위는 삼성과 LG보다 높은 2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국내 10만5,000여 명, 해외 22만 명으로 임직원은 30만 명이 넘었다. 하지만 국가적 위기였던 외환위기는 대우그룹에도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무리하게 빚을 내 투자하며 외형을 확대하는 방식의 경영은 외부 환경이 최악으로 치닫자 독이 돼 돌아왔다. 확장에 치중해 구조조정은 해 본 적이 없던 대우그룹은 국가신용등급이 추락하고 해외 채권자들의 상환 요구가 거세지자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회사채 발행제한 조치, 외국계 금융사의 부정적 평가가 이어지며 그룹 사정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당시 그룹 구조조정의 핵심이던 대우차와 제너럴모터스(GM)의 합작 추진, 삼성차-대우전자 ‘빅딜’이 어려움을 겪었고 새로 출범한 정부의 경제관료들과 김 전 회장이 마찰을 빚으며 그룹 해체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대우그룹은 41개 계열사를 10개로 줄이겠다는 구조조정 방안을 내놨지만 결국 모든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이 되면서 끝내 해체됐다. 당시까지 한국 경제를 지배하던 ‘대마불사’, 큰 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는 신화가 깨졌던 순간이었다. 여기에 2000년 수십 조원 규모의 분식회계가 적발되며 대우그룹의 성장 신화는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박한신기자 hs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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