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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공유·카풀·타다 잇단 좌초…한국은 '모빌리티 혁신의 무덤'
산업 IT 2025.05.19 17:41:57규제 장벽에 둘러싸인 한국은 전 세계 시장에서 ‘모빌리티 혁신의 무덤’으로 불린다. ‘타다 사태’ 등 택시 업계의 반발에 부딪힌 정치권이 중재에 실패해 눈치만 보다 신사업이 무산되는 일은 반복되고 있다. 모빌리티 업계 전반의 분위기가 위축되며 자율주행이라는 미래 기술도 한국에서 제대로 뿌리를 내리기 어렵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2009년 미국에서 설립된 우버는 2014년 8월 한국에서도 차량공유 서비스 ‘우버X’를 시작했다. 하지만 정부와 서울시는 우버를 불법으로 간주하며 단속에 나섰다. 특히 서울시는 우버를 신고하면 포상금 100만 원을 내걸어 결국 우버는 2015년 2월 우버X를 무료로 전환했고 같은 해 3월 중단했다. 2015년 콜버스는 심야에 애플리케이션 이용자들이 목적지와 탑승 시간을 입력하면 비슷한 경로의 승객을 모아 운행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우버X의 버스 버전이었다. 하지만 택시 사업자들이 위법이라며 반발에 나섰고 콜버스는 결국 해당 사업을 약 2년 만에 접은 후 전세버스 예약 중개로 방향을 틀었다. 풀러스는 출퇴근 시간대에만 제공하던 카풀 서비스를 2017년 24시간으로 확대했다. 서울시는 불법 유상 운송이라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카풀 관련 조항이 담겨있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81조에는 출퇴근에 한해서는 허용한다고만 명시돼 있을 뿐 구체적 시간대 등을 규정하고 있지 않았지만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네이버와 미래에셋의 합작펀드인 신성장기술펀드와 옐로우독·SK 등에서 220억 원 규모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던 풀러스는 결국 문을 닫았다. 카카오모빌리티도 2018년 2월 카풀 스타트업 ‘럭시’를 252억 원에 인수한 뒤 같은 해 12월 카풀 서비스를 시범 시작했지만 다음 달 서비스를 결국 포기했다. 11인승 승합차 호출 서비스를 내놓았던 타다는 변화를 거부한 정치권이 모빌리티 혁신에 어떻게 집단 배임 행위를 했는지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 됐다. 타다는 2018년 ‘11인승 이상 승합차는 기사 알선이 가능하다’는 여객 운수사업법의 예외 조항을 근거로 ‘타다 베이직’ 서비스를 선보였다. 하지만 택시 업계의 거센 반발에 편승한 정치권이 2020년 ‘타다 금지법’을 통과시켜 서비스는 강제로 멈춰 섰다. 검찰은 타다 베이직이 옛 여객자동차법상 금지되는 ‘불법 콜택시 영업’에 해당한다며 2019년 10월 이재웅 전 쏘카(403550) 대표와 타다 운영사였던 VCNC 박재욱 전 대표를 불구속 기소했다. 1·2심은 두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도 하급심의 판단이 옳다고 최종 판단했다. -
레벨4 상용화 외치는 韓…시범지구마저 태반이 낙제점
산업 기업 2025.05.19 17:40:47정부가 2027년 레벨4 자율주행(완전자율주행) 상용화를 목표로 자율주행차 시범운행지구를 꾸준히 늘려왔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속 빈 강정’에 그치고 있다. 시범운행지구 10곳 중 4곳에서는 자율주행차가 다니지 않는 실정이다. 올해로 시범운행지구 도입 5년 차를 맞았지만 운전자 없이 완전 무인으로 자율주행차를 운행할 수 있는 지역은 전무하고 대부분 정해진 길만 오가고 있어 기술 고도화에도 한계가 명확하다는 평가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시범운행지구 지정 이후 1년을 경과한 34곳 중 자율주행 서비스를 운영하지 않는 지구는 14곳으로 전체의 41.2%에 달한다. 자율주행 인프라 조성 차원에서 2020년부터 시범운행지구는 매년 늘었지만 자율주행 사업자 유치, 예산 부족 등 문제로 무용지물로 전락한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각 지자체에서 의욕적으로 시범운행지구 운영 계획을 세우고 시작했지만 관련 사업자의 부재나 예산 문제로 진행조차 안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국토부가 지난해 시범운행지구 24곳을 대상으로 운영 성과를 평가한 결과 절반이 넘는 13곳이 낙제점인 D·E등급을 받았다. 시범운행지구를 둘러싼 복잡한 행정 절차, 규제는 민간 사업자의 참여를 꺼리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자율주행차 규제 특례를 적용하는 시범운행지구는 지방자치단체의 신청과 시범운행지구 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정부 승인으로 최종 선정된다. 민간 사업자가 시장 수요나 기술 테스트 여건에 기반해 시범운행지구 선정이나 운영 계획을 제안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얘기다. 자금력이 부족한 사업자들은 정부·지자체 주도로 마련된 시범운행지구에서 적자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시범운행지구에서 자율주행차를 통한 유상 운송은 운전자가 탑승하는 등 일정 조건에서만 제한적으로 허용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인건비 부담에 차량 유지·관리비, 보험료 등을 고려하면 비용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현재 전국 17개 시도에 지정된 시범운행지구 42곳 중 운전자 없는 완전자율주행이 가능한 지역은 단 한 곳도 없다. 자율주행 데이터 확보도 여의치 않다. 정해진 경로 없이 출발지와 목적지를 오가는 ‘도어투도어’ 방식이 가능한 시범운행지구는 9곳(21.4% 비중)에 불과하다. 나머지 33곳은 모두 버스처럼 정해진 노선을 따라 운행하는 방식이어서 다양한 도로·교통 환경에서 데이터를 축적하는 데 한계로 작용한다. 자율주행 선진국인 미국·중국이 특정 지역 전체에서 자율주행을 허용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업계에서는 우리나라도 미중처럼 자율주행 시험이 전면적으로 가능한 지역이 필요하다고 촉구한다. 서울시 등 주요 도심으로 시범운행지구 단위를 확장하고 민간 사업자 주도로 완전자율주행 유상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제도·행정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성흠제 서울시의회 의원은 “자율주행을 꽃 피우려면 사업자들이 마음껏 시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시범운행지구 운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 안전 예방 등에 관한 지자체 책임을 강화하는 행정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우물안' 정부…2000조 미래산업 싹 잘랐다
산업 기업 2025.05.19 17:40:33이달 초 중국 광둥성 선전시 남문구역. 스마트폰 앱으로 로보택시를 호출하자 약 10분 만에 카메라와 라이다로 둘러싸인 렉서스 차량이 다가와 갓길에 섰다. 운전석은 비었지만 조수석에 앉은 커다란 인형이 인사를 했다. 탑승 후 스크린에 휴대폰 번호 뒷자리를 입력하니 택시가 스스로 출발했다. 차량 내부 모니터에는 주행 내내 반경 200~300m 이내의 차량과 보행자·물체가 표시됐다. ★관련 기사 4·5면 우회전에서 보행자를 감지한 로보택시는 서서히 속도를 줄여 길을 건너는 사람들을 배려했다. 신호가 없는 고가도로에서는 시속 50~60㎞로 주행하던 로보택시가 순식간에 70㎞까지 속도를 올렸다. 함께 탄 일행은 “사람보다 낫네”라고 했다. 이 로보택시는 중국 자율주행 전문 기업 포니AI의 차량. 포니AI는 올해 1000대의 로보택시를 운행해 손익분기점을 넘긴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난달 22일 찾은 서울 마포구 상암 자율주행 시범운행지구에는 자율주행차가 한 대도 없었다. 카카오모빌리티 앱에 접속하자 ‘호출이 어렵다’는 안내문이 떴다. 카카오모빌리티 관계자는 “오전부터 비가 내려 운행을 중단했다”고 했다. 강수량은 약 10㎜. 자율주행차는 오작동 확률을 낮추기 위해 우천 환경에서도 데이터 축적이 필수다. 운전자가 있는데도 보슬비가 내린다는 이유로 운행을 포기한 셈이다. 24일 다시 현장을 찾아 자율주행차에 올랐지만 텅 빈 3.2㎞ 직사각형 구간을 홀로 운행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 정부와 중국 국무원이 2015년 “자율주행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쳤지만 선전과 상암의 엇갈리는 모습처럼 기술 격차는 천양지차다. 중국은 바이두와 화웨이, 비야디(BYD) 등이 쏟아낸 수천 대의 무인 로보택시가 전국을 누비고 있다. 반면 한국 정치권과 정부는 미래 전략 산업을 육성하기 보다는 기득권 보호와 탁상행정에 매몰됐다. 모빌리티 스타트업 ‘타다’를 불법으로 낙인찍고 창업자를 재판정에 세워 ‘규제 공화국’이라는 오명만 남았다. 글로벌 3위 완성차 기업인 현대자동차그룹조차 국내에서 자율주행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가 전망한 미래 모빌리티 산업 시장 규모는 2030년이면 1조 5000억 달러(약 2130조 원)에 달한다. 기술 전문 투자사인 아크인베스트는 로보택시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을 2030년까지 매년 2.6%씩 끌어올릴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첨단 모빌리티 산업에 필요한 자동차와 정보기술(IT), 반도체 기술을 갖춘 한국은 시장을 선도하기는커녕 중국에도 한참 뒤처져 있다. 김영기 한국공학한림원 자율주행위원장은 이날 “정부가 바뀌어도 핵심 산업만큼은 기업들이 맘껏 도전할 수 있는 환경과 동기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야 자율주행 택시 3대뿐인데…운전자 없으면 운행도 못해 [잘못된 법, 산업 어떻게 망쳤나]<1> 미래 모빌리티 1시간 넘게 호출했지만 응답없어 한밤중에도 자율차 잡기 '별따기' 中 우한 등 수천대 로보택시 운영 韓은 도로법상 무인 자율주행 불법 부처 칸막이 철폐…제도 개선 절실 지난달 22일 저녁 11시 서울 강남의 신논현역. 지난해 9월 26일부터 서울 강남구 일대에서 운행 중인 자율주행 택시를 이용해 보려고 호출에 나섰지만 응답은 없었다. 카카오모빌리티가 운영하는 호출 서비스에는 일반 택시를 부르는 선택지만 노출됐다. 자율주행구역 내 위치해 있는지 수차례 확인하며 반복해 호출 버튼을 눌렀지만 허사였다. 30분 동안 목적지 설정을 바꿔가며 호출을 시도하자 ‘서울 자율차’ 항목이 모범택시 호출 항목 아래에 나타났다. 서둘러 호출을 시도했지만 무의미했다. 화면에는 “모든 서울 자율차가 운행 중이다”라는 글이 나왔다. 1시간을 더 투자해 호출을 시도했지만 결국 자율주행 택시 잡기에 실패했다. 강남에서 운영되는 자율주행차는 저녁 11시부터 다음 날 새벽 5시까지 3대에 불과하다. 중국 우한시에는 2000대, 선전시에 1000대의 로보택시가 다니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도 500대의 웨이모 로보택시가 24시간 운영 중인 것과 대조적이다. 샌프란시스코는 심야 택시 10대 중 1대가 로보택시다. 선전과 우한·샌프란시스코의 시민들은 어렵지 않게 로보택시를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한밤중에도 자율주행 택시를 타는 건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다. 카카오모빌리티 관계자는 “글로벌 업체와의 격차가 지속해서 벌어지는 상황이라 위기의식을 많이 느낀다”면서 “이를 타개하려면 자율주행 상용화를 위한 사회적 수용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모빌리티 혁신의 싹을 잘라버린 ‘타다 금지법(2020년)’은 일례에 불과했다. 정부가 자율주행으로 대표되는 미래 모빌리티 산업 앞에 쌓아놓은 규제 장벽은 미국과 중국에서 운행하는 로보택시가 서울에서는 ‘자율주행 택시’로 불리는 현실만 봐도 알 수 있다. 도로교통법 제43조는 시도 경찰청장으로부터 운전면허를 받은 사람만 운전을 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고 제56조는 ‘자율주행차 운전자의 준수사항’을 규제하고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법은 자율주행차를 ‘운전자 또는 승객의 조작 없이 스스로 움직이는 차’로 규정하고 있지만 도로교통법상 무인 자율주행은 불법인 것이다. 미국 연방교통부가 2016년 인공지능(AI) 자율주행컴퓨터를 운전자로 인정하고 2018년 중국은 법제를 정비해 포니.AI가 로보택시를 운행하기 시작했다. 2021년에는 독일이 무인 자율주행차 허가법, 일본도 무인 자율주행을 위해 도로교통법을 제정했지만 한국은 아직도 법 규제를 고수하고 있다. 자율주행을 가로막고 있는 법령 때문에 서울 강남에서는 심야에 자율주행 택시가 단 3대뿐인데도 이마저 운전자가 없으면 운행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안전을 위해 자율주행 매니저가 운전석에 탑승하게 돼 있어 (매니저가) 없으면 자율주행차도 멈춘다”고 전했다. 중국이 제조2025를 발표한 2015년, 대통령 주재 3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관계 부처가 합동으로 ‘자율주행차 상용화 지원 방안’을 내놓고 “2020년 자율주행차를 상용화하겠다”고 한 발표는 허언이 된 지 오래다. 오히려 당시를 기준으로 정부의 자율차 운행 규제가 쏟아져 나와 자율주행 스타트업의 의지를 꺾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까지 나서 자율주행 규제 개혁을 설파했던 2015년 대부분 자율주행차들은 레이저 펄스를 쏘고 반사돼 돌아오는 시간을 측정하는 ‘라이다(LiDAR)’가 필수였다. 그런데 정작 도로교통법은 이 라이다를 단 차량은 ‘교통단속용 장비의 기능을 방해하는 장치’를 탑재한 것으로 간주했다. 규제를 개혁한다더니 라이다를 달고 자율주행을 하면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졌다. 해당 법은 미국과 중국에서 무인 로보택시가 운행된 2018년에야 ‘교통 단속을 회피할 목적으로’라는 문구가 추가되며 라이다 채택을 합법화했다.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규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자율주행 기술은 데이터 축적과의 싸움이다. 미국과 중국 등 자율주행 선도 국가들이 선제적으로 자율주행을 허가한 배경도 데이터에 있다. 특히 카메라로 인식한 영상 정보의 원본 데이터는 AI 기반 자율주행차의 성능을 끌어올리는 핵심 요소다. 정부는 2021년 “선제적 규제 정비를 하겠다”고 했지만 2024년 1월에야 외부 네트워크가 차단되고 분리된 공간에서만 영상을 처리할 수 있게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도입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또 다른 규제의 성을 쌓았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마저 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005380) 등에 수백 명의 자율주행 기술 개발자가 있는데 외부망이 차단된 공간에서 함께 작업하는 것이 가능하겠느냐”고 지적했다. 한국의 모빌리티 혁신이 앞서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산업에 대한 규제 권한을 서로 차지하려는 부처 간 ‘밥그릇 싸움’이라는 시각도 있다. 정부는 2021년 ‘자율주행 기술 개발 혁신사업’을 추진하며 △차량융합 신기술(산업통상자원부) △정보통신기술(ICT) 융합 신기술(과학기술정보통신부) △도로교통융합 신기술(국토교통부·경찰청) △자율주행서비스(국토부·경찰청) △자율주행 생태계(국토부·산업부) 분야로 역할을 각 부처가 나눠 맡았고 컨트롤타워는 없는 실정이다. 김영기 한국공학한림원 자율주행위원회 위원장은 “(범정부 차원에서) 운전자가 개입하지 않는 자율주행을 할 수 있게 하는 제도가 최우선으로 도입돼야 한다”면서 “한국은 국가 특성상 정부와 정치권의 결단만 있으면 빠르게 할 수 있고 (아직) 추격의 기회는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레벨4 상용화 외치는 韓…시범지구마저 태반이 낙제점 올해로 지구 도입 5년차 맞았지만 규제 복잡 민간사업자 참여 꺼려 10곳중 4곳은 자율주행차 안다녀 정해진 길만 운행 기술고도화 한계 정부가 2027년 레벨4 자율주행(완전자율주행) 상용화를 목표로 자율주행차 시범운행지구를 꾸준히 늘려왔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속 빈 강정’에 그치고 있다. 시범운행지구 10곳 중 4곳에서는 자율주행차가 다니지 않는 실정이다. 올해로 시범운행지구 도입 5년 차를 맞았지만 운전자 없이 완전 무인으로 자율주행차를 운행할 수 있는 지역은 전무하고 대부분 정해진 길만 오가고 있어 기술 고도화에도 한계가 명확하다는 평가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시범운행지구 지정 이후 1년을 경과한 34곳 중 자율주행 서비스를 운영하지 않는 지구는 14곳으로 전체의 41.2%에 달한다. 자율주행 인프라 조성 차원에서 2020년부터 시범운행지구는 매년 늘었지만 자율주행 사업자 유치, 예산 부족 등 문제로 무용지물로 전락한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각 지자체에서 의욕적으로 시범운행지구 운영 계획을 세우고 시작했지만 관련 사업자의 부재나 예산 문제로 진행조차 안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국토부가 지난해 시범운행지구 24곳을 대상으로 운영 성과를 평가한 결과 절반이 넘는 13곳이 낙제점인 D·E등급을 받았다. 시범운행지구를 둘러싼 복잡한 행정 절차, 규제는 민간 사업자의 참여를 꺼리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자율주행차 규제 특례를 적용하는 시범운행지구는 지방자치단체의 신청과 시범운행지구 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정부 승인으로 최종 선정된다. 민간 사업자가 시장 수요나 기술 테스트 여건에 기반해 시범운행지구 선정이나 운영 계획을 제안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얘기다. 자금력이 부족한 사업자들은 정부·지자체 주도로 마련된 시범운행지구에서 적자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시범운행지구에서 자율주행차를 통한 유상 운송은 운전자가 탑승하는 등 일정 조건에서만 제한적으로 허용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인건비 부담에 차량 유지·관리비, 보험료 등을 고려하면 비용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현재 전국 17개 시도에 지정된 시범운행지구 42곳 중 운전자 없는 완전자율주행이 가능한 지역은 단 한 곳도 없다. 자율주행 데이터 확보도 여의치 않다. 정해진 경로 없이 출발지와 목적지를 오가는 ‘도어투도어’ 방식이 가능한 시범운행지구는 9곳(21.4% 비중)에 불과하다. 나머지 33곳은 모두 버스처럼 정해진 노선을 따라 운행하는 방식이어서 다양한 도로·교통 환경에서 데이터를 축적하는 데 한계로 작용한다. 자율주행 선진국인 미국·중국이 특정 지역 전체에서 자율주행을 허용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업계에서는 우리나라도 미중처럼 자율주행 시험이 전면적으로 가능한 지역이 필요하다고 촉구한다. 서울시 등 주요 도심으로 시범운행지구 단위를 확장하고 민간 사업자 주도로 완전자율주행 유상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제도·행정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성흠제 서울시의회 의원은 “자율주행을 꽃 피우려면 사업자들이 마음껏 시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시범운행지구 운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 안전 예방 등에 관한 지자체 책임을 강화하는 행정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테슬라·BYD, 3년 앞서 레벨3 상용화…전기차 안방마저 내줄판 [잘못된 법, 산업 어떻게 망쳤나] <1>미래 모빌리티 BYD, 2027년 레벨3 한국 출시 자율주행 '신의 눈' 데이터 쌓아 1위 테슬라는 이미 'FSD' 완성 韓 자율주행 사고 지침조차 없어 정부 뒷짐에…현대차 실증도 철수 지난달 3일 세계 전기차 1위 기업인 중국 비야디(BYD)의 한국 법인을 이끄는 류쉐량 아시아태평양 자동차사업부 총경리가 서울 모빌리티쇼에서 국내 취재진과의 만남을 자처했다. 류 총경리는 서울 모빌리티쇼 전시장 한복판에 현대차·기아(000270)와 맞먹는 크기의 부스를 마련한 후 취재진을 만나 “단기 이익이 아닌 지속적인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면서 “한국에 더 많은 차를 들여와 고객군을 넓힐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류 총경리는 서울모빌리티쇼에서 BYD가 7월 한국에 선보일 전기차(EV) 세단 ‘씰’을 직접 공개하고 전기차 SUV ‘씨라이언’의 국내 출시 계획도 밝혔다. 실제로 BYD의 진격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올 1월 첫 출시된 아토3는 지난달 출고되자마자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 단일 모델 기준 판매 1위(단일 모델 기준)에 등극했다. BYD의 자신감은 무엇일까. 자동차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전기차가 아닌 소프트웨어,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신의 눈(天神之眼)’ 프로젝트다. 올 2월 왕촨푸 BYD 회장은 전 차종에 자율주행 시스템인 ‘신의 눈’을 무료 탑재해 ‘자율주행 시대’를 열겠다고 발표했다. 업계에 따르면 BYD가 전 차종에 자율주행 기술을 배포하면서 데이터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BYD의 주행 데이터는 2024년 하루 7200만 ㎞가 쌓였는데 올해는 축적량이 1억 5000만 ㎞로 두 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데이터가 쌓일 수록 자율주행 기술은 빠르게 진화한다. 왕 회장은 3월 운전자가 개입하는 조건에서 고속도로와 도심 자율주행을 수행하는 레벨3의 자율주행 상용화에 대해 “2~3년이면 된다”고 자신했다. BYD는 이미 중국에서 레벨3 자율주행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다. 업계는 BYD가 늦어도 2027년이면 사실상 레벨3인 자율주행 ‘레벨2++’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을 국내 출시하는 전기차에 탑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가격 경쟁력까지 갖춘 BYD가 테슬라에 이어 국내 전기차 시장의 판도를 뒤바꿀 다크호스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BYD가 자율주행 기술을 앞세워 한국 시장에 전기차를 쏟아내면 현대차·기아는 더욱 치열한 경쟁 환경에 놓일 수밖에 없다. 현대차·기아는 내연기관을 합친 국내 시장 점유율이 80%를 넘는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에서는 위상이 다르다. 지난해 기준 내수 시장에서 현대차·기아의 전기차 점유율은 약 40%에 그친다. 반면 압도적인 운전자 보조 기능인 오토파일럿을 앞세운 미국 테슬라가 약 2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테슬라 모델Y가 국내 전기차 시장 판매 1위를 달렸다. 업계는 테슬라의 완전자율주행(FSD) 기술이 국내에 도입되면 시장 점유율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대차·기아는 전기차 판매 부진으로 최근 울산 공장의 전기차 라인 일부를 일시적으로 멈춰 세울 만큼 고전을 거듭하는 상황이다. 2026년 투입될 테슬라의 FSD도 부담스러운데 2027년에는 BYD까지 레벨3에 가까운 자율주행 기능을 탑재한 차를 선보이면 현대차·기아는 상당한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현대차·기아가 규제의 늪에 빠져 경쟁의 무기가 될 레벨3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 도입이 쉽지 않다는 측면이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테슬라나 BYD처럼 국내에 판매되는 차량에 자율주행칩과 센서를 장착해 데이터를 모아야 자율주행 기술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국내에서 자율주행 시범 운행 사업마저 중단하는 실정이다. 현대차는 2022년 강남에서 자율주행차 ‘로보라이더’를 운행했지만 이듬해 철수를 결정했다. 또 현대차그룹 산하 포디투닷은 2022년부터 서울 청계천 일대에 운행하던 자율주행셔틀 운행을 지난해 말을 끝으로 중단했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현대차가 국내 자율주행 사업에서 철수하는 상황에 대해 “정해진 구간만 다니는 운행에서 질 좋은 데이터가 쌓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자율주행 기술을 고도화하려면 출퇴근 시간과 같은 복잡한 도심 교통 환경, 악천후 등의 주행 데이터가 중요하다. 하지만 보슬비만 내려도 운행 중단을 권고하는 상암 자율주행 시범운행지구의 사정에서 국내에선 자율주행 데이터와 기술을 고도화하기는 매우 어렵다. 특히 자율주행 중 사고가 발생할 경우 책임이 불분명해 기업이 적극적인 도전에 나설 수 없는 것이 최대 장애물로 꼽힌다. 미국과 독일·일본 등은 자율주행차를 운행하는 사람은 물론 AI 운전자의 책임과 면책 규정까지 정비해 놓고 있다. 하지만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만들겠다고 한 자율주행차 사고 조사 처리 지침을 여전히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발생할 민형사상의 문제를 예측할 수 있는 법제를 당국에서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기업은 망설이고 정부는 뒷짐을 지는 사이 이미 기업 경쟁력은 뒤지고 있다. 현대차는 레벨3 수준의 SDV를 2028년에 내놓는다. 테슬라보다는 3년, BYD보다는 1~2년 늦다. 현대차가 양산할 차의 자율주행 기술이 BYD보다 뒤지면 전기차 시장에서의 위상은 더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청계천에서 자율주행차를 운행하다 철수한 포디투닷에 무엇을 얻었느냐고 물어보니 ‘얻은 것은 없다’는 답을 했다”며 “2년 전에 운행하던 자율주행차를 타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이 최대 80% 이상 개입하고 기술적으로 무엇이 발전했는지 알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
심야 자율주행 택시 3대뿐인데…운전자 없으면 운행도 못해
산업 산업일반 2025.05.19 17:39:13지난달 22일 밤 11시 서울 강남의 신논현역. 지난해 9월 26일부터 서울 강남구 일대에서 운행 중인 자율주행 택시를 이용해보려고 호출에 나섰지만 응답은 없었다. 카카오모빌리티가 운영하는 호출 서비스에는 일반 택시를 부르는 선택지만 노출됐다. 자율주행구역 내 위치해 있는지 수차례 확인하며 반복해 호출 버튼을 눌렀지만 허사였다. 30분 동안 목적지 설정을 바꿔가며 호출을 시도하자 ‘서울 자율차’ 항목이 모범택시 호출 항목 아래에 나타났다. 서둘러 호출을 시도했지만 무의미했다. 화면에는 ‘모든 서울 자율차가 운행 중’이라는 글이 나왔다. 1시간을 더 투자해 호출을 시도했지만 결국 자율주행 택시 잡기에 실패했다. 강남에서 운영되는 자율주행차는 밤 11시부터 다음 날 새벽 5시까지 3대에 불과하다. 중국 우한시에는 2000대, 선전시에 1000대의 로보택시가 다니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도 500대의 웨이모 로보택시가 24시간 운영 중인 것과 대조적이다. 샌프란시스코는 심야 택시 10대 중 1대가 로보택시다. 선전과 우한·샌프란시스코의 시민들은 어렵지 않게 로보택시를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한밤중에도 자율주행 택시를 타는 건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다. 카카오모빌리티 관계자는 “글로벌 업체와의 격차가 지속해서 벌어지는 상황이라 위기의식을 많이 느낀다”면서 “이를 타개하려면 자율주행 상용화를 위한 사회적 수용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모빌리티 혁신의 싹을 잘라버린 ‘타다 금지법(2020년)’은 일례에 불과했다. 정부가 자율주행으로 대표되는 미래 모빌리티 산업 앞에 쌓아놓은 규제 장벽은 미국과 중국에서 운행하는 로보택시가 서울에서는 ‘자율주행 택시’로 불리는 현실만 봐도 알 수 있다. 도로교통법 제43조는 시도 경찰청장으로부터 운전면허를 받은 사람만 운전을 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고 제56조는 ‘자율주행차 운전자의 준수 사항’을 규제하고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법은 자율주행차를 ‘운전자 또는 승객의 조작 없이 스스로 움직이는 차’로 규정하고 있지만 도로교통법상 무인 자율주행은 불법인 것이다. 미국 연방교통부가 2016년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컴퓨터를 운전자로 인정하고 2018년 중국은 법제를 정비해 포니AI가 로보택시를 운행하기 시작했다. 2021년에는 독일이 무인 자율주행차 허가법, 일본도 무인 자율주행을 위해 도로교통법을 제정했지만 한국은 아직도 법 규제를 고수하고 있다. 자율주행을 가로막고 있는 있는 법령 때문에 서울 강남에서는 심야에 자율주행 택시가 단 3대뿐인데도 이마저 운전자가 없으면 운행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안전을 위해 자율주행 매니저가 운전석에 탑승하게 돼 있어 (매니저가) 없으면 자율주행차도 멈춘다”고 전했다. 중국이 제조 2025를 발표한 2015년, 대통령 주재 3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자율주행차 상용화 지원 방안’을 내놓고 “2020년 자율주행차를 상용화하겠다”고 한 발표는 허언이 된 지 오래다. 오히려 당시를 기준으로 정부의 자율차 운행 규제가 쏟아져나와 자율주행 스타트업의 의지를 꺾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까지 나서서 자율주행 규제 개혁을 설파했던 2015년 대부분 자율주행차들은 레이저 펄스를 쏘고 반사돼 돌아오는 시간을 측정하는 ‘라이다(LiDAR)’가 필수였다. 그런데 정작 도로교통법은 이 라이다를 단 차량은 ‘교통 단속용 장비의 기능을 방해하는 장치’를 탑재한 것으로 간주했다. 규제를 개혁한다더니 라이다를 달고 자율주행을 하면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졌다. 해당 법은 미국과 중국에서 무인 로보택시가 운행된 2018년에야 ‘교통 단속을 회피할 목적으로’라는 문구가 추가되며 라이다 채택을 합법화했다.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규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자율주행 기술은 데이터 축적과의 싸움이다. 미국과 중국 등 자율주행 선도 국가들이 선제적으로 자율주행을 허가한 배경도 데이터에 있다. 특히 카메라로 인식한 영상 정보의 원본 데이터는 AI 기반 자율주행차의 성능을 끌어올리는 핵심 요소다. 정부는 2021년 “선제적 규제 정비를 하겠다”고 했지만 2024년 1월에야 외부 네트워크가 차단되고 분리된 공간에서만 영상을 처리할 수 있게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도입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또 다른 규제의 성을 쌓았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마저 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005380) 등에 수백 명의 자율주행 기술 개발자가 있는데 외부망이 차단된 공간에서 함께 작업하는 것이 가능하겠느냐”고 지적했다. 한국의 모빌리티 혁신이 앞서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산업에 대한 규제 권한을 서로 차지하려는 부처 간 ‘밥그릇 싸움’이라는 시각도 있다. 정부는 2021년 ‘자율주행 기술 개발 혁신 사업’을 추진하며 △차량 융합 신기술(산업통상자원부) △정보통신기술(ICT) 융합 신기술(과학기술정보통신부) △도로 교통 융합 신기술(국토교통부·경찰청) △자율주행 서비스(국토부·경찰청) △자율주행 생태계(국토부·산업부) 분야로 역할을 각 부처가 나눠 맡았고 컨트롤타워는 없는 실정이다. 김영기 한국공학한림원 자율주행위원회 위원장은 “(범정부 차원에서) 운전자가 개입하지 않는 자율주행을 할 수 있게 하는 제도가 최우선으로 도입돼야 한다”면서 “한국은 국가 특성상 정부와 정치권의 결단만 있으면 빠르게 할 수 있고 (아직) 추격의 기회는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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