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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 과속'에 전력균형 무너져…"ESS·송전망 확충 서둘러야"
경제·금융 경제동향 2025.08.07 18:00:22스페인에서 사상 초유의 블랙아웃(대정전)이 일어난 배경에는 2000년대 중반 진행된 재생에너지 ‘과속’ 보급 대책이 있다. 스페인 정부는 2004년 태양광과 같은 청정에너지를 보급한다는 목표 아래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보조금 제도를 도입했다. 발전 사업자들은 25년 동안 높은 고정 가격에 전기를 팔 수 있도록 보장받았고 이에 따라 전 세계에서 태양광 사업자들이 몰려들었다. 미국 서부 개척 시대를 빗대 ‘태양광 골드러시’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스페인의 태양광발전 설비용량은 이 시기 급격히 늘어 현재의 재생에너지 쏠림 구조를 만들었다. 현재 스페인의 태양광발전 설비용량은 34.7GW로 원전 35기분에 달한다. 대정전의 원인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지만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용량이 급증한 데 비해 이를 감당할 전력망이 충분히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4월 28일(현지 시간) 발생한 스페인 대정전은 스페인 서남부 엑스트레마두라주의 한 발전소에서 갑자기 출력이 0으로 떨어지면서 시작됐다. 1.5초 뒤 같은 현상이 한 번 더 발생하자 이상 현상을 감지한 프랑스 측이 스페인과의 전력 연결선을 차단했다. 전력망을 보호하기 위한 자동 조치였다. 이와 함께 스페인 전력망의 주파수와 전압이 크게 흔들리자 여러 발전소들이 잇따라 전력망에서 자동으로 분리됐다. 단 5초 만에 당일 스페인 전력 생산량의 60%에 가까운 15GW의 전력이 전력망에서 증발했다. 그런데 대정전 당일 스페인에서 전기는 부족하기는커녕 오히려 넘쳐났다. 스페인은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용량 비중이 전체의 66%에 육박하는데 봄철에는 태양광의 효율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실제 스페인 전력공사인 레드일렉트리카는 대정전 발생 12일 전인 4월 16일 하루 동안 100% 재생에너지만으로 전력 수요를 충족했다는 공식 발표를 내기도 했다. 문제는 전체 발전량이 전력망이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 균형이 무너졌다는 점이다. 스페인에서는 지난해 이후 봄철 태양광발전량이 급증하면서 전력도매가격(SMP)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전력 시장을 관리하는 이베리아전력거래소(OMIE)에 따르면 2023년만 해도 봄철(3~5월) SMP가 마이너스로 떨어진 경우가 전혀 없었지만 2024년에는 142시간 동안 SMP가 음수를 기록했다. 이 수치는 올해 들어 404시간으로 급등했다. 전력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재생에너지는 깨끗하지만 의존도가 너무 커지면 전력 불안정성도 같이 늘어난다”며 “충분한 송전 시설을 확보하거나 에너지저장장치(ESS)와 같은 보호 방안을 갖추면서 재생에너지를 늘려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인버터(전기 변환 장치) 방식의 태양광발전소 비중이 높아졌는데 이를 대비하지 않았다는 점도 스페인 대정전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수력·화력·원자력발전소는 터빈을 돌리기 때문에 전력망에서 탈락해도 터빈이 서서히 멈추며 일정 시간 전기를 공급한다. 이상 현상에 대처할 시간을 벌어준다는 이야기다. 반면 태양광발전소는 인버터로 통제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한순간 전력망에서 분리돼 전력망 부담을 가중한다. 태양광·풍력발전 시설을 늘리는 데만 치중하고 전력망을 보강하지 않아 문제가 불거졌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한국에서도 이 같은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재명 정부는 지난해 처음으로 10%를 넘긴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20% 선으로 끌어올릴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마련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계획대로 집행될 경우 2038년 태양광·풍력발전소 설비용량은 117.9GW로 올해(37GW)보다 3배 이상으로 불어난다.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는 “제조업 중심 국가인 한국에서 대정전이 난다는 것은 스페인과는 다른 의미”라며 “특히 반도체 설비의 경우 정전 전후 생산 물량을 폐기해야 하는 것은 물론 장비 전체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철강·석유화학 역시 안정적인 전기 공급이 굉장히 중요한 업종”이라면서 “그렇기 때문에 제철소나 석화단지에는 자체 발전소를 설치하는 경우도 많은데 무작정 태양광 에너지만 외치니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
“에너지는 이념에 휘둘리면 안돼…원전은 훌륭한 기저전원”
경제·금융 경제동향 2025.08.07 17:58:136000만 명에 가까운 스페인과 포르투갈 국민들을 14시간 동안 암흑으로 밀어넣은 스페인 대정전을 지켜본 유럽 지역의 석학들은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에 비해 전력망 투자가 미흡했던 점이 대정전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한국이 같은 문제를 겪지 않기 위해서는 에너지믹스 다양성을 유지하고 전력망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너지 문제를 다룰 때는 이념보다 과학에 입각해 판단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미겔 데 시몬 마르틴 레온대 전기공학시스템자동학과 교수는 7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스페인 정부가 재생에너지에 대해 강력한 지원을 하면서 이에 대처할 전력망의 실제 용량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안토니오 고메스 에스포시토 세비야대 전기공학과 교수도 “현재 규정은 재생에너지 발전원은 수력뿐이던 25년 전과 같은 수준”이라며 “시스템을 신속히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미앵 에른스트 리에주대 전기공학 및 컴퓨터과학과 교수는 “정전 초기 국제 연결망 부족으로 전력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다”며 “유도 전력도 충분하지 않아 전압 제어에 실패하면서 결국 대정전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정전 당일 첫 이상 현상이 발생한지 3.5초만에 프랑스 전력망이 차단되면서 전압과 주파수가 급격하게 불안해졌다는 이야기다. 알바로 데 라 푸엔테 길 레온대 전기공학시스템자동학과 교수는 “관성이 높은 시스템은 충격을 흡수해 전력망 운영자에게 충분한 대응 시간을 준다”며 “하지만 전자 장치로 연결된 태양광 및 풍력 발전소는 관성을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베리아 반도 전력망의 높은 재생에너지 의존도가 화를 키웠다는 주장이다. 반면 에스포시토 교수는 “관성 부족 외에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며 “전압을 제어하는데 필요한 무효 전력의 잘못된 배분이 근본적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재생에너지 발전의 본질적 한계보다 스페인 전력 당국의 전력망 관리 능력 부족에 초점을 맞춘 의견이다. 이들은 한국에서도 재생에너지 확대가 불가피한 흐름이 될 것이라는 점에는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한반도의 지리적 여건이 유럽에 비해 불리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에른스트 교수는 “한국은 태양광 발전 설비를 설치할 공간이 스페인에 비해 부족한데 비해 전력 소비량이 상당히 많아 재생에너지를 도입하기 어려운 여건”이면서도 “현재 목표치는 예외적인 수준은 아니므로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에스포시토 교수 역시 “한국은 인구밀도가 높고 수력 발전량이 부족해 전력 시스템이 완전히 탈 탄소화되기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들 것”이라면서도 “해상풍력 발전이 성숙되고 충분히 저렴해지면 전력망 탈탄소화를 위한 유망한 대안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푸엔테 길 교수도 “한국은 산업 수요와 인구 밀도가 높으니 204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 50~60% 달성을 목표로 할 만할 것”이라며 “80%를 넘어서면 간헐성으로 인한 과제가 크게 증가하므로 다각화된 에너지믹스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태양광과 해상풍력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빠르게 늘리려는 한국 정부 역시 스페인의 교훈을 염두에 두고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른스트 교수는 “관성력이 높은 동기 발전소의 비중 30%를 유지해야 계통 안정성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기 발전소는 수력·화력·원자력발전소와 같이 전력망 주파수와 같은 주파수로 작동하는 터빈형 발전소를 의미한다. 호세 루이스 도밍게스 가르시아 카탈루니아에너지연구소(IREC) 전력망 부문 총책임은 “계통 연계를 적절히 계획하는 것은 물론 전력망 장비를 충분히 업데이트해 어떤 상황에도 견딜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푸엔테 길 교수는 전력망 업데이트와 함께 △대규모 에너지 저장 시스템 구축 △유연 전력 요금제 도입 △발전원 다각화 △인접국과 전력망 연계 등을 정책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에너지 정책은 가치중립적인 시각에서 다뤄야 한다는 조언도 제기됐다. 마르틴 교수는 “기술 전문가를 믿고 이념이나 정치에 휘둘리는 결정을 하지 말라는 조언을 한국 정부에 드리고 싶다”며 “모든 상황에 작동하는 만능 모델은 없다. 목표를 향해 유연성을 발휘하며 꾸준히 발전하는 것이 전력망 관리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인터뷰에 응한 전문가 대부분은 원전이 전력망 안정성을 높이는 기저 전원으로서 훌륭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데 동의했다. 푸엔테 길 교수는 “원전은 탄소 배출이 없을 뿐 아니라 주파수 안정성을 높이는 데도 기여한다”며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유효한 선택지”라고 설명했다. 에른스트 교수도 “유럽 전력망의 관성은 프랑스의 대규모 원자력 발전소에 의해 대부분 보장되고 있다”며 “원자력은 분명히 전력망 안정성을 보장한다”고 답했다. 가르시아 총책임은 “현재 전력망은 고전적인 관성 전원에 적합한 방식”이라며 “같은 관성 전원이라도 원전이 화력발전소보다 규모가 크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고 부연했다. 같은 관성 전원인 화력·원자력 발전소 중 원자력 발전소가 탄소 배출이 없을 뿐 아니라 설비 용량이 커 전력망 안정성에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다만 원자력 발전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마르틴 교수는 “원자력 기술이 에너지 믹스에서 나름의 자리를 차지한다”면서도 △높은 건설 비용 △긴 시운전 시간 △사고 위험 △폐기물 문제 등의 단점이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스포시토 교수는 “스페인 대정전의 원인을 관성 부족으로 요약할 수만은 없다”며 “기존 원전 설비는 최대한 활용해야겠지만 소형모듈형원자로(SMR)과 같은 차세대 방식은 재생에너지에 비해 경쟁력이 있는지 입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작년 열흘에 한 번꼴로, 수도권 '전력망 과부하'
경제·금융 경제동향 2025.08.07 17:47:42지난해 여름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내는 송전선은 열흘에 한 번꼴로 과부하 위기에 처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여름철 한낮 태양광발전을 통한 전력 생산이 과도해지면서 수도권 송전선이 감당 가능한 용량을 초과할 정도로 전기가 몰렸기 때문이다. 7일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7~9월) 총 2208시간 중 수도권 융통선로 마진이 5% 이하로 떨어진 시간은 202시간에 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 융통선로 마진은 전국에서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내는 송전선의 여유 용량으로, 이 마진이 5% 이하라는 것은 수도권으로 연결되는 송전선이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이 5%도 안 남았다는 의미다. 고속도로에 자동차가 너무 많이 몰리면 도로가 마비되는 것처럼 송전선에도 전기가 너무 많이 몰리면 과부하가 발생하며 이는 자칫 정전이나 계통 불안정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지난해 8월 23일 오전 11시께에는 여유 용량이 모두 차 마진이 –0.3%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이 같은 여름철 수도권 송전선 과부하 우려는 해가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2021년 3분기에는 수도권 융통선로 마진이 5% 이하로 떨어진 시간이 2208시간 중 4시간에 불과했는데 이것이 2022년 84시간, 2023년 143시간 등으로 크게 늘어나는 식이다. 1분기의 경우 마진이 5%를 하회한 시간이 지난해 39시간에서 올해 12시간으로 축소되기는 했지만 여름철에는 여전히 융통선로 마진 악화 우려가 해소되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전력거래소 측은 “마진 하락은 주로 신재생 발전량이 많은 낮 시간에 발생했다”며 “수도권 융통전력 실적이 한계량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수도권 부하를 차단하는 고장파급방지시스템(SPS)을 운전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 보급을 늘리기에 앞서 전력 인프라를 먼저 확충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발전설비가 급격히 늘어난 반면 송배전망 증가 폭은 이에 미치지 못해 발전과 송전 간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
獨 추락 지켜본 유럽…원전 36기 짓는다
경제·금융 경제동향 2025.08.05 17:41:21폭스바겐의 본사 소재지이자 독일 자동차 산업의 심장으로 통하는 볼프스부르크.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방문한 이곳에서는 독일 1위 자동차 도시다운 활기를 느끼기 어려웠다. 중심 상업지구인 포르쉐거리 곳곳에는 문을 닫은 상가들이 눈에 띄었고 시가 운영하는 연방고용지원센터 앞에는 일자리를 잃은 시민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에르판 자마니 씨는 “올해 초 폭스바겐에서 해고됐다”며 “월세 650유로(약 104만 원)를 내기도 힘들어 지금 할 수 있는 건 신에게 기도를 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한때 히든챔피언의 나라로 불렸던 독일의 제조업이 이처럼 후퇴한 배경에는 에너지 경쟁력 저하가 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급등하며 전기요금이 뛰었고 2023년에는 마지막 원전까지 가동을 중단하며 고(高)비용 에너지 구조가 제조업 전체를 흔들었기 때문이다. 끝없는 경기 부진 속에 올해 2월 총선에서는 극우 ‘독일을위한대안(AfD)’이 원내 제2당으로 떠오르며 정치 판도까지 재편되고 있다. 독일의 실패를 지켜본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탈(脫)원전 기조를 포기하고 잇달아 원전 확대를 선언하고 있다.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올 6월 기준 현재 유럽에서 건설 중이거나 추진 중인 원자력발전소는 총 36기에 달한다. 네덜란드 기후정책녹색성장부 관계자는 “유럽에서 원자력을 바라보는 시각이 상당히 많이 바뀌고 있다”며 “유럽에서는 이를 ‘핵 르네상스’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실제 2023년 프랑스 주도로 결성된 원자력 동맹에는 체코·네덜란드·벨기에 등 EU 회원국 중 14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전체 회원국(27개국)의 절반 이상이 원자력을 탄소 중립 에너지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하자는 데 동의했다는 의미다. -
덴마크, 40년 만에 원전 검토…네덜란드는 전담 인력 30배 늘려
경제·금융 경제동향 2025.08.05 17:35:45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탈원전을 선언했던 유럽 주요 국가들이 최근 잇달아 원전으로 복귀하고 있다. 원전 강국 프랑스는 물론이고 네덜란드·루마니아·체코·영국·스웨덴·슬로바키아 등이 신규 대형 원자력발전소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탈원전 전도사로 통했던 독일에서조차 원자력을 에너지믹스에 추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네덜란드 기후정책녹색성장부 원자력국 관계자들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탄소를 발생시키지 않으면서도 안정적으로 대규모 전력을 생산하는 원전이 있어야 ‘넷제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유럽 각국에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적인 문제뿐 아니라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수단으로서도 원자력의 가치가 유럽에서 재조명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현재 원전 1기를 운영하고 있는 네덜란드는 대형 원전 2기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에 따르면 이들 원전이 완공된 뒤 2040년께에는 네덜란드 총 전력 수요의 10~15%를 원전이 담당하게 된다. 기후정책녹색성장부 원자력국 관계자는 “지난 정권에서 대형 원전 2기 건설이 확정됐는데 이번 연정은 이를 4기까지 늘리고 소형모듈원전(SMR)도 추가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다”며 “원자력은 의회에서 안정적인 지지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10월 총선 이후에도 원전 신설 프로젝트는 뒤집히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원전 확대를 위한 정책적 노력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21년까지만 해도 네덜란드 기후정책녹색성장부에는 원자력 정책 담당자가 2명에 불과했지만 2025년에는 약 60명으로 불었다. 4년 만에 30배나 전담 인력이 늘어난 것이다. 네덜란드는 올해 신규 대형 원전을 발주할 특수목적법인(SPC)도 신설한 뒤 직원을 대거 채용할 계획이다.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유럽 곳곳이 핵 르네상스에 편승하고 있다. 체코 정부는 한국수력원자력에 두코바니 5·6호기 신설을 맡겼다. 원자력 산업의 전통적인 강호 프랑스는 2050년까지 최대 14기의 원자로를 새로 짓는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이 중 6기는 이미 구체적인 추진 계획이 나온 상황이다. 핀란드는 세계 최초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인 ‘온칼로’를 준공해 원전 지속 운영의 기반을 열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 각국이 내놓은 대형 원전 신규 건설에 2050년까지 2410억 유로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재생에너지 발전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유럽 국가들도 속속 원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벨기에 의회는 5월 새 원자로 건설을 허용하는 내용이 담긴 정부의 원전 부활 계획을 승인했다. 2003년 탈원전을 선언한 지 22년 만에 노선을 바꾼 것이다. 1985년 원자력발전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 원전이 하나도 없는 덴마크에서도 해당 법안을 폐지하자는 데 여야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덴마크는 풍부한 해상풍력을 바탕으로 전력 수요의 90% 이상을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나라다. 스페인에서도 4월 대정전을 겪은 후 2035년까지 원전 7기를 폐쇄하겠다는 기존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 역시 마지막 원전이 폐쇄된 지 25년 만에 원자력 기술 사용을 허용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유럽 탈원전 정책을 주도해온 독일에서도 변화의 흐름이 포착된다. 올해 총선에서 승리한 독일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은 선거공약에 폐쇄한 원전의 재활용을 검토한다는 내용을 명시했다. 가동을 멈춘 원전을 재가동하는 것까지 의회의 동의를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겠지만 SMR과 같은 차세대 원전에 투자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공감대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각국은 차세대 원전에 대한 투자도 확대하고 있다. 네덜란드 기후정책녹색성장부는 SMR과 같은 차세대 원전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2030년까지 6500만 유로의 예산을 투입할 예정이다. 이뿐만 아니라 원전 생태계를 강화하는 데도 6500만 유로의 예산을 추가로 투입한다. 프랑스는 2021년 발표한 300억 유로 규모의 신산업 육성 계획에 차세대 원자로 개발에 투자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영국 역시 장기간 표류했던 사이즈웰C 원전 건설을 재추진하면서 SMR을 추가 건설하기 위해 수십억 파운드의 예산을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
獨 전기료 급등에 공장 폐쇄도…폭스바겐 생산직 "월급 35% 줄어"[K에너지 시프트]
경제·금융 경제동향 2025.08.05 17:38:19“폭스바겐 생산직으로 일하는 우리 남편은 원래 매달 3800유로(약 610만 원)는 벌었는데 이제 2500유로(약 401만 원)밖에 못 받습니다. 소비와 저축을 줄여가며 버틸 수밖에 없어요.” 폭스바겐 최대 공장이 위치한 독일 볼프스부르크에서 만난 라다 알리 씨는 “이 지역에 정착한 후 이렇게 경기가 안 좋은 것은 처음”이라며 이처럼 토로했다. 남편이 실직은 면했지만 야간 근무가 사라지고 성과금이 줄면서 월 소득이 35% 가까이 감소해 생활고를 겪고 있다는 게 알리 씨의 하소연이다. 유럽 최대 자동차 기업 폭스바겐의 흥망성쇠는 에너지 후진국으로 주저앉은 독일 경제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폭스바겐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사상 최초로 독일 내 공장 중 일부를 셧다운하는 방안까지 고민했으나 노조와의 합의를 통해 2030년까지 독일 내 생산을 절반으로 줄이고 전체 인력의 30%에 가까운 3만 5000명을 감축하기로 했다. 볼프스부르크시 연방고용지원센터에서 만난 조슈아 존슨 씨는 “직장을 잃은 지 반년이 넘었는데 아직 다시 일을 구하지 못해 일자리를 알아보러 왔다”며 “이렇게 오래 실직 상태인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폭스바겐에서 일했다는 또 다른 시민은 “생산직 노조원은 상당수 자리를 지켰지만 서비스직과 계약직은 무차별 해고됐다”며 “나와 같은 부서에서 일하던 22명은 같은 날 한꺼번에 직장을 잃었다”고 말했다. 지역 경기는 혹한기 수준으로 얼어붙었다. 볼프스부르크는 과거 독일에서 가장 소득이 높은 도시 중 한 곳으로 꼽혔으나 이제는 문을 연 상점보다 문을 닫은 상가를 찾는 게 더 쉬울 정도가 됐다. 폭스바겐에서 27년 동안 근무한 게오르크 루소 씨는 “지금까지 살면서 겪은 경제위기 중에 최악”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같은 경제 위축이 단순이 볼프스부르크에만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유럽 경제의 우등생이던 독일의 간판 제조업 기업들이 잇따라 경영난에 빠지면서다. 실제 독일 전력 도매 가격은 2020년 1월 MWh당 35유로 수준에 불과했지만 전쟁 발발 약 반 년 후인 2022년 8월에는 MWh당 699.44유로까지 치솟았다. 올해 8월 독일 전력 도매 가격은 MWh당 70유로로 5년 전보다 2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운영 중이던 원전 전체를 폐쇄하며 탈원전 속도를 높인 탓에 값비싼 대가를 치른 셈이다. 이에 세계 최대 규모의 화학 기업인 바스프(BASF)는 독일 루트비히스하펜 공장 일부를 폐쇄하고 인력을 조정해 2026년까지 11억 유로의 비용을 절감할 계획이다. 독일 최대 철강 회사인 티센크루프스틸은 전체 인력의 40%를 정리할 방침이다. 폭스바겐 위기의 여파에 ZF프리드리히스하펜·셰플러·보쉬와 같은 부품 업체들은 잇따라 인력 감축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위기는 수치로도 드러난다. 2022년 말 2.9%까지 떨어졌던 독일 실업률은 올해 들어 3.8%까지 올랐다. 이에 따른 독일 전체 실업자 수는 300만 명에 육박해 10년 내 최대 규모까지 치솟았다. 국내총생산(GDP)도 뒷걸음질 치고 있다. 독일 경제성장률은 2023년과 2024년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한 데 이어 올해도 제로(0) 성장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미국 정부와 관세 협상에 따른 상호관세 15%도 수출·제조업 국가인 독일에는 불리한 요인이다. 실제 2025년 5월 독일 산업생산지수는 92.9로 2021년 이후 4년 전보다 뒷걸음질 쳤다. 이 같은 경제 체력 저하는 독일의 국가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독일은 2014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하는 국가 경쟁력 순위에서 6위에 올랐으나 지난해에는 24위로 10년 만에 18계단 떨어졌다. 탈원전을 추진한 후 종합적인 국가 경쟁력이 꾸준히 악화됐다는 의미다. 올해 순위는 19위로 소폭 올랐지만 경쟁력 위기는 여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에너지는 기업에 가장 중요한 생산 요소 중 하나”라며 “기업에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구조적 변화 없이는 상황이 달라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우리나라도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전력 수요자 관점에서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한다”며 “재생에너지 도입이 필요한 산업군, 무탄소 전원이 중요한 산업군,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시급한 산업군 등 산업별로 재분류해 전력 수요자의 선택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에너지 위기가 제조업 망가뜨려…차세대 원전 투자해야"[K에너지 시프트]
경제·금융 경제동향 2025.08.05 17:40:01“에너지 정책은 단순히 환경이나 기후 정책으로 가서는 안 됩니다. 산업 및 안보 정책의 핵심 축으로서 훨씬 더 포괄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독일 볼프스부르크를 지역구로 둔 알렉산더 조던 기독민주당(CDU) 의원은 5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경쟁력 있는 비용으로 에너지 주권을 확립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볼프스부르크는 글로벌 자동차 제조 업체 폭스바겐의 대규모 공장이 들어서며 유럽 최대 자동차 단지로 떠올랐지만 전력 비용, 인건비 상승 등으로 폭스바겐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함께 위기를 맞고 있다. 조던 의원은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던 2000년대 초의 기억이 현재 폭스바겐 도시인 볼프스부르크에서 되살아나고 있다”며 “반도체 및 원자재 공급 병목현상과 높은 에너지 가격, 인건비는 독일의 산업 입지 경쟁력을 저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에서는 유럽연합(EU)이 부과하는 엄격한 탄소 배출 기준이 신기술 개발 압력을 가중시키고 다른 한편에서는 중국 비야디(BYD), 미국 테슬라 등 해외 제조 업체와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독일 자동차 산업의 위기가 지역 경제 위기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에너지 비용 상승이 제조업 위기를 가속화했다는 분석에도 동의했다. 조던 의원은 “에너지 비용 상승은 현재의 산업 위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심화된 에너지 위기는 독일 제조업에 이미 존재했던 구조적 취약성을 실제로 드러내고 가속화했다”고 지적했다. 또 “특히 화학·철강·기계공학과 같은 에너지 집약 산업은 특히 안정적이고 경쟁력 있는 에너지 가격에 의존하기 때문에 더욱 큰 압박을 받고 있다”며 “많은 기업들이 생산 시설을 해외로 이전하거나 투자를 연기해야 했다”고도 말했다. 이에 현재 독일에서는 기존의 탈원전 기조를 벗어나 원전 생태계 복원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조던 의원은 “기민당 일부를 포함해 독일에서는 노후 원전의 운영 수명을 연장하거나 소형모듈원자로(SMR) 및 핵융합과 같은 신기술을 도입한 원전으로의 복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다”며 “이념적 편견 없이 열린 마음과 냉정한 판단으로 논의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재래식 원자력발전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SMR이나 액체염(용융염) 원자로처럼 더 안전하고 유연하면서 소형인 원자로 연구는 상황이 다르다”며 “이 기술을 개발하는 데 대규모 예산이 배정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 믹스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조던 의원은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확대는 불가피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단기적인 전력 공급 안정성을 보장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며 “균형 잡힌 에너지 믹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새로운 발전 설비 용량은 그리드(전력망) 친화적인 방식으로 관리돼야 한다. 신속·표준화된 승인 절차, 명확한 법적 요건, 디지털화 등을 통해 그리드 확장도 대폭 가속화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한편 그는 제조업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독일의 에너지 정책이 산업·안보의 관점에서 다뤄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각적·장기적 파트너십 구축을 통한 에너지 공급 안정 △산업 부문의 에너지 경쟁력 확보 △에너지 빈곤이 사회적 분열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사회적 균형 등을 고려해 에너지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조던 의원은 특히 에너지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에너지 집약 기업에 대한 합리적인 산업용 전기요금 책정, 에너지 저장 기술의 집중적인 홍보 및 대규모 네트워크 확장이 수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
수소법 처음 만든 韓…글로벌 비중 고작 2%
경제·금융 경제동향 2025.08.15 17:44:45미래 에너지로 각광받았던 수소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존재감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 2020년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수소산업특별법을 통과시켰지만 꿈의 에너지로 불리는 ‘그린수소(재생에너지로 물을 전기분해해 생산하는 수소)’ 분야에서 유럽에 주도권을 내주는 등 경쟁력이 갈수록 후퇴하고 있어서다. 불과 5년 전 수소 선도 국가였던 한국이 이제는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라는 분석이 나온다. 15일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0년 9000만 톤이던 전 세계 수소 생산량은 2024년 1억 톤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한국수소연합에 따르면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수소 생산량은 250만 톤 내외로 추산된다. 전체 수소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 수준에 그치는 셈이다. 이는 수소시대를 열겠다는 선언은 남들보다 한발 빨랐지만 설비 구축 등 생태계 조성이 늦어진 결과다.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수소는 대부분 ‘그레이수소(천연가스로 생산되는 수소)’여서 수준도 높지 않다. 한국이 뒤처지고 있는 사이 경쟁국들은 탄소 중립 목표를 위해 그린수소 설비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그린수소를 연간 1000만 톤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수전해 설비 확충을 선언한 바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2.2GW 규모의 수전해 설비를 마련해 청정에너지 생산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비전을 내놓았다. 중국 국가에너지국(NEA)은 중국 전역에 대형 그린수소 플랜트를 구축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수소산업발전장기규칙’을 마련했다. 반면 한국은 민간기업 중심으로 소규모 생산 설비가 설치된 것을 제외하면 그린수소 생태계는 사실상 성장을 멈췄다. 수소가 탄소 중립 실현을 위한 핵심 에너지이자 선박, 비행기, 대형 트럭 등의 핵심 연료인 점을 감안하면 강력한 투자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수석전문위원은 “한국의 수소산업은 이제 생존이 가능한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
네덜란드 HH1, 해상풍력 통해 ‘트럭 2300대 충전’ 수소 생산…韓은 예산 후퇴
경제·금융 경제동향 2025.08.15 17:38:43지난달 24일 네덜란드 로테르담 중앙역에서 자동차를 타고 니우어마스강을 따라 남서쪽으로 90분 가까이 달려가자 세계적인 석유 회사 셸의 그린수소 플랜트인 ‘HH1(Holland Hydrogen 1)’이 모습을 드러냈다. 축구장 6개 크기인 4만 ㎡ 부지에는 이미 물을 전기분해하는 수전해 설비와 변압기·공랭기 등 핵심 설비 반입이 마무리됐고 전선·파이프 등을 연결하는 후반 공정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셸이 한국 언론에 HH1 현장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가운데 핵심 시설인 수전해 플랜트로 들어서자 20㎿ 규모의 수전해 설비가 가득 찬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각 시설들은 소형차만 한 수조 296개가 기차처럼 길게 연결된 형태다. 현장을 총괄하는 로엘 아레츠 총책임은 “내년 중 본격 가동을 시작하면 하루에 그린수소를 60톤씩 생산할 수 있다”며 “이는 수소트럭 2300대를 완전 충전할 수 있는 분량”이라고 설명했다. 이 플랜트의 핵심은 재생에너지로 수소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재생에너지로 생산해야 탄소가 1g도 방출되지 않는 그린수소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이 공장은 이에 따라 로테르담 해안가에서 약 88㎞ 떨어진 먼바다에서 생산되는 크로스윈드 해상풍력발전소의 전기를 끌어오는 방식으로 전력 문제를 해결한다. 이렇게 생산된 수소는 32㎞ 길이의 전용 파이프를 통해 세계 최대 화학 플랜트 중 하나인 로테르담 퍼니스 공장으로 직접 이송된다. 이 같은 생산·수송·소비 체계를 갖추면 HH1은 사실상 세계 최대 규모의 그린수소 생산 생태계를 갖추게 될 예정이다. 중국석유화공집단공사가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 쿠차 인근에 260㎿ 규모의 수전해 설비를 가동 중이지만 수요처와 연계돼 있지 않아 가동률이 저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프랑스·독일·사우디아라비아 등에 추진되고 있는 200㎿급 이상 설비들은 2028년 이후에나 가동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2030년대가 되면 전 세계적으로 그린수소 생산량이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유럽과 중국·미국은 물론 사우디아라비아나 오만·이집트 등 신흥국들도 앞다퉈 수전해 설비투자를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는 일찌감치 그린수소 생산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로테르담항 마스블락터 지역에 최대 1GW 규모의 수전해 설비가 들어올 수 있는 ‘전환 파크’를 마련했다. 투자를 확약한 기업과 발전사, 파이프 공급사 등 각 생태계 부문별로도 보조금을 지급해 투자를 촉진했다. 이를 바탕으로 산업용 수소 수요가 집중된 독일 라인란트 지방에 수소를 공급할 수 있도록 파이프를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다. 전 세계 수소의 3분의 1을 생산하고 있는 중국은 2030년까지 100GW 규모의 그린수소 생산 설비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중국의 수전해 장비 주문이 크게 늘면서 2020년 10%대에 불과했던 중국의 수소 제조 설비 점유율은 2024년 60%대로 뛰기도 했다. 이집트도 수에즈 운하 경제특구에 그린수소 생산 기반을 갖추기 위해 120억 달러의 투자를 모집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2021년 0.6GW에 불과했던 전 세계 수전해 설비 설치 규모는 2024년 5.2GW로 9배 가까이 크게 늘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현재까지 발표된 수전해 설비 프로젝트를 모두 더하면 2030년 전 세계 누적 수전해 설비는 520GW에 달할 예정이다. 실제 투자까지 집행돼 준공되는 비율이 4%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해도 5년 뒤 설비 규모가 4배로 늘어나게 된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어스튜트 애널리티카에 따르면 지난해 2310억 달러(약 320조 원) 수준이던 수소 시장 규모는 2050년께 1조 6570억 달러(약 2304조 원)로 7배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한때 수소경제의 선도자로 여겨졌던 한국의 존재감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전기차의 부상으로 수소경제의 초점이 모빌리티에서 연료전지 발전과 산업용 수소로 옮겨갔는데도 정책 전환을 과감하게 하지 못한 탓이다. 제주와 성남 등에 있는 국내 그린수소 생산 플랜트는 모두 10㎿ 이하의 소규모 실증 설비에 불과하다. 정부의 수소산업 예산 역시 2023년 3339억 2500만 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2년 연속 감소해 올해 2807억 1900만 원이 된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제철 기업과 같은 대형 수요처를 중심으로 체계적인 그린수소 생산·소비 생태계를 갖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과정에서 단기간에 태양광·풍력 기반 전력 공급이 어렵다면 원자력발전소를 활용한 핑크수소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수석전문위원은 “특정 지역에서 수백만 톤의 수소가 쓰이면 조달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지금으로서는 핑크수소 외에는 대안을 생각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
中 제조업 굴기 뒤엔…지구 1.3바퀴 '특고압 송전망'
경제·금융 경제동향 2025.08.12 17:37:48우리나라와 반도체·전기차 등 제조업 부문에서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의 800㎸급 이상 특고압(UHV) 전력망 길이가 5만 200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구 둘레의 1.3배에 해당하는 길이로 우리나라 전체 500㎸ 이상 초고압직류송전망(HVDC) 길이(340㎞)보다 153배 더 긴 수치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면적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중국이 한국보다 더 촘촘하게 송전망을 깔아 전력 경쟁에서부터 앞서가고 있는 것이다. 12일 서울경제신문이 중국국가전력망공사(SGCC)가 설치한 중국 국가전력망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말 기준 중국의 특고압 전력망 길이는 총 5만 1670㎞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정부가 특고압 전력망 설치를 본격 추진하기 시작한 2008년만 해도 중국 내 800㎸ 이상 특고압망은 640㎞에 불과했으나 16년 만에 80배 늘었다. 중국은 특고압망 설치에 필요한 변압·송전 설비도 대부분 국산화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2008년부터 서북부에 위치한 풍부한 재생에너지 자원과 석탄화력발전소의 전력을 인구와 산업이 몰린 동남권으로 전송하는 ‘서전동송(西電東送)’ 전략을 펼쳐왔으며 이 같은 풍부한 전력을 바탕으로 철강·석화 등 전통 제조업부터 반도체, 로봇, 인공지능(AI) 산업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초일류 국가로 거듭나고 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송전망에 대한 투자는 한국이 다른 나라들에 이미 한발 늦은 상황인 만큼 지금이라도 과감한 투자와 규제 완화 및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이해 조정 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지자체에 가로박힌 ‘동전서송’…한전 직원 119일째 1인 시위
경제·금융 경제동향 2025.08.12 17:31:0412일 경기 하남시 감일동 행정복지센터 앞 한 남성이 “동서울변전소가 이렇게 바뀝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팻말을 들고 시민들이 지나는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동서울변전소 증설·옥내화 사업을 마치면 오히려 지역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내용을 홍보하는 내용이었다. 팻말을 든 주인공은 한국전력공사 초고압직류송전(HVDC) 건설본부 직원이었다. 하남시의 정책 지연으로 동서울변전소 증설·옥내화 작업이 늦어지자 한전 직원들이 돌아가며 1인 시위에 나선 것이다. 올해 4월 16일 첫 시작한 한전의 1인 시위는 이날로 119일째 이어졌다. 이날 시위에 나선 장현세 한전 대리는 “전력망 확충이 시급한데도 지자체와 일부 주민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말했다. 동서울변전소는 동해안~수도권 HVDC 송전망의 핵심 구간이다. 동해안~수도권 HVDC 사업은 강원도 동해안의 화력·원자력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약 280㎞ 길이의 송전선을 통해 경기도로 보내는 사업이다. 수도권 지역 주민들은 물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국가 기반 산업 시설에 전기를 공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문제는 지자체의 반대에 부딪혀 공사는 시작조차 못했다는 점이다. 당초 한전은 동해안~수도권 HVDC 송전망 구축을 위해 2026년 6월까지 동서울변전소 증설·옥내화 작업을 마칠 계획이었다. 예정대로 사업을 진행하려면 지난해 5월께 공사를 시작했어야 했지만 하남시가 허가를 내주지 않아 사업은 무기한 지연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경기행정심판위원회는 한전의 사업을 막지 말라는 판정을 내렸지만 하남시는 주민 수용성이 부족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행정절차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한전은 동서울변전소 건설 지연에 따라 추가로 발생하는 전력 구입 비용이 연간 3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전은 이미 지역 주민과의 소통을 위한 자리는 여러 차례 마련했을 뿐 아니라 하남시를 위한 상생안도 충분히 마련했다는 입장이다. 한전 관계자는 “이미 한전은 철탑을 줄이고 녹지를 늘리는 것은 물론 아니라 변전소 외관을 세련되게 다듬는 경관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며 “또 증설된 변전소에는 한전 동서울 지사와 설비 관련 기업을 유치해 지역 경제에도 기여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업계에 따르면 동서울발전소 외에도 전국 곳곳에서 전력 설비가 지어지는 곳마다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당초 2012년 6월 준공을 목표로 했던 북당진~신탕정 345㎸ 송전선 건설 사업의 경우 주민 민원으로 입지 선정이 미뤄지면서 150개월이 지난 지난해 12월에야 공사가 마무리됐다. 시흥과 송도 사이를 연결하는 345㎸ 송전선 건설 사업에서도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의 부지 제공 지연과 시흥시의 도로·공원 점용 인허가 취소 등으로 사업이 66개월 밀렸다. 당진화력~신송산 345㎸ 전력망 건설 사업도 당초 계획보다 90개월 지연됐다. -
강원도 작년 수요량 1.6배 전력 생산…송전망 없으면 무용지물
경제·금융 경제동향 2025.08.12 17:30:15전력 수요가 가장 많은 수도권의 지난해 연간 전력 소비량 대비 발전량은 0.66배에 불과한 반면 강원도는 소비 전력의 1.6배에 달하는 전기를 생산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력 수요는 수도권에 집중된 데 비해 발전 설비는 비수도권 중심으로 증설돼 발전 설비 불균형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서울경제신문이 한국전력 전력통계월보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강원 지역의 연간 전력 소비량 대비 발전량은 1.56배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강원도는 2014년만 해도 연간 전력 소비량 대비 발전량 비율이 0.63배에 불과해 외부로부터 전기를 공급받았지만 이후 화력발전 설비가 크게 늘어나면서 비율이 역전됐다. 강원도 다음으로 전력 소비량 대비 발전량이 높은 곳은 국내 원자력발전소 대부분이 몰려 있는 영남(1.45배)인 것으로 나타났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설비가 많은 호남·제주 권역의 전력 소비량 대비 발전량 비율은 1.32배, 충청권은 1.23배였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살고 있는 수도권의 전력 소비량 대비 발전량은 0.66배로 5대 권역 중 유일하게 1을 밑돌았다. 이 같은 전력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은 앞으로 더 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의 태양력·풍력 자원은 전남·경남 지방에 밀집해 있어 이들 지역에서 발전 설비가 집중적으로 확대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석탄발전소는 퇴출 수순인데 새 정부는 해상풍력발전소와 태양광발전소 투자를 늘리려고 하지 않느냐”며 “남부 지방의 남는 전력을 수도권과 산업 단지로 어떻게 옮기느냐가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재생에너지 발전소 설비 용량이 늘어나면서 발전설비 대비 발전량은 꾸준히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전에 따르면 2014년 전국 발전설비 용량 대비 실제 발전량은 0.64배였으나 2024년에는 이 수치가 0.44배로 떨어졌다. 2014년에는 전국 발전소 설비의 가동률이 64%였다면 지난해에는 44%로 하락했다는 이야기다. 사실상 24시간 내내 돌릴 수 있는 원자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와 달리 태양력 발전소와 풍력발전소는 발전 효율이 낮아 생기는 현상이다. 우리나라에서 태양광 발전소와 풍력 발전소의 발전 효율은 각각 20%, 40%대로 알려졌다. -
韓, 이제야 터 파는데…中은 거미줄 초고압망 42개나 갖춰
경제·금융 경제동향 2025.08.12 17:29:098일 방문한 전북 장수군 노하리에 위치한 신장수변전소 건설 현장에서는 축구장 2.5개 규모 부지의 터를 고르는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변전 용량 200㎹A 규모이던 기존 장수변전소 옆에 2026년 10월까지 500㎹A짜리 변전소를 새로 짓기 위한 기초 공사다. 현장 관계자는 “현재 설비만으로는 무주·장수·진안 일대에서 생산되는 재생에너지를 다른 지역으로 송·변전하기 힘들다”며 “신장수변전소 건설 사업이 마무리되면 인근 지역에 전력을 원활히 공급하는 것은 물론 여기에서 만든 전력을 수도권까지 보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2031년에서 2038년 사이 에너지고속도로가 구축되기 전 신장수변전소가 전력망의 숨통을 틔우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신장수변전소에 연결되는 345㎸ 송전망은 신옥천변전소와 연계돼 수도권까지 계통이 연결돼 있다. 이재명 정부는 전국 에너지고속도로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송전망이나 변전소 부지 등은 아직 결정되지 않아 실행까지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반면 중국에서는 대규모 전력망이 척척 깔리고 있다. 중국국가전력망공사(SGCC)는 최근 쓰촨성 진사강 상류와 후베이성을 잇는 800㎸ 특고압(UHV)망 건설 공사가 마무리돼 곧 상업운전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이 송전망 하나의 길이만도 1901㎞로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설치된 초고압송전망 총길이의 5.6배에 육박한다. 진사강 상류~후베이 송전망은 중국 특고압 전력망 중 처음으로 수력·태양광·풍력 등 청정에너지로 만든 전력만 송전하게 될 예정이다. 창장강 상류의 일부인 진사강에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바이허탄댐을 비롯해 대형 수력발전소가 잇따라 건설됐고 쓰촨성과 티베트 고원 일대의 히말라야 산맥 자락에는 방대한 규모의 태양광발전 및 풍력발전소가 설치돼 있다. 진사강 상류~후베이 송전망은 여기에서 만든 전력을 인구와 산업이 밀집한 동부 지역으로 옮기는 역할을 맡는다. 중국에는 이와 같은 대규모 특고압 송전망이 벌써 42개나 설치됐다. 가장 긴 송전망은 신장웨이우얼자치구 고비사막 태양광발전소의 전력을 안후이성으로 보내는 1100㎸ 노선으로 길이가 3324㎞에 달한다. 화북 지방의 풍부한 석탄 에너지와 티베트·히말라야·고비사막의 넘치는 수력·풍력·태양광 에너지를 활용하기 위해 2008년부터 특고압 전력망 구축에 전력을 쏟은 결과다. 대규모 전력망을 갖춘 덕에 중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중국의 태양광발전 설비 용량은 2012년까지만 해도 3.1GW에 불과했으나 2024년에는 840GW로 급증했다. 지난해 한 해 추가된 태양광 설비 규모만 해도 277GW로 우리나라 총 발전 설비 규모(153GW)를 뛰어넘었다. 풍력 발전 설비 역시 2012년 47.1GW에서 2024년 510GW로 뛰었다. 이에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4년 세계 에너지 전망’ 보고서에서 “지난 10년간 새로 발생한 전기 수요의 3분의 2는 중국발”이라며 “오늘날 에너지와 관련된 거의 모든 이야기들이 본질적으로 중국과 관련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국이 이처럼 질주하는 동안 한국은 전력망 분야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력망 구축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고 지난해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을 입법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전력망 건설 속도가 충분하지 않다는 내용이다. 새 정부는 U자 형태의 에너지고속도로 구축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남해안·동해안 초고압직류송전(HVDC) 송전망은 계획조차 없는 형편이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내용이 반영된 서해안 HVDC 역시 2038년까지 만든다는 구상만 나왔을 뿐 구체적인 입지와 건설 방식은 아직 미정이다. 전력망 건설 계획이 구체화된다 해도 계획대로 공사가 진행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는 것이 전문가와 업계 관계자의 중론이다. 전력 설비 공사가 진행될 때마다 어김없이 지자체와 주민 반대가 따라붙기 때문이다. 실제 2022년 마련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됐던 주요 송전망 공사 31곳 가운데 공사가 정상적으로 준공된 사례는 5곳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발전소를 만든다거나 송전망이 지나간다는 소문만 들리면 지역 주민들이 보상 단가가 높은 과실수부터 심고 본다”며 “설비 건설보다 주민과 지자체 동의를 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
신재생 쏠림에 블랙아웃…韓도 '제2 스페인' 전조
경제·금융 경제동향 2025.08.07 17:36:52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 엘프라트 공항에서 자동차를 타고 10분 정도 이동하자 바르셀로나 항구가 나타났다. 이곳에 창고를 둔 물류 업체 직원들은 4월 28일 일어났던 블랙아웃(대정전)을 두고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전기로 움직이는 각종 시설은 물론 휴대폰까지 먹통이 되면서 항구 전체가 멈춰섰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 항에서 물류창고를 운영하고 있는 태웅로직스 현지 주재원은 “그날 나가야 하는 화물 예약을 다 잡아뒀는데 모두 미룰 수빆에 없었다”며 “다 소화해내는 데 며칠이 걸렸다”고 전했다. 당일 바르셀로나에서 마드리드로 출장을 가던 직원은 중간에 기차가 멈춰 사라고사 인근 시골 마을에서 꼼짝없이 하루를 묵어야 했다. 전문가들은 만약 우리나라에서 스페인식 대정전이 발생할 경우 훨씬 더 피해가 클 것이라고 경고한다. 반도체·철강·화학 등 고(高)전력 제조 기업의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국내 반도체 업계의 한 임원은 7일 “삼성전자 반도체 라인이 멈춰설 경우 손실이 하루 최소 수백억 원에 이를 것”이라며 “삼성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국내총생산(GDP)까지 흔들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페인 정전 당시 경제 손실이 하루 4억 유로(약 6500억 원)로 추산됐는데 한국은 이보다 더 피해가 클 수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우리나라도 정전 안전 국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재생에너지 쏠림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태양광과 같은 재생에너지는 한낮에 갑자기 발전 용량이 폭주하면서 송전망 전체에 과부하를 줄 수 있어 주전원으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사례도 있다. 이미 제주도에서는 대정전의 전조로 분류되는 전력도매가격(SMP) 마이너스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는 전기 발전량이 넘쳐 발전사들이 손해를 보며 전력을 내다 판다는 의미다. 스페인에서는 4월 대정전을 앞두고 한 달 동안 22일간 마이너스 가격이 나타났고 제주도에서도 올 들어 총 27시간의 마이너스 현상이 발생했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발전 용량과 송배전망 간 불균형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
韓 기업도 전기료에 신음…포스코는 원전 전력 조달 추진
경제·금융 경제동향 2025.08.05 17:33:47에너지 요금 인상과 이에 따른 산업 경쟁력 약화는 독일만의 고민이 아니다. 국내 기업들 역시 미국·중국·일본 기업들과 경쟁하는 동시에 최근 몇 년 새 급증한 전기료 부담까지 떠안고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산업계의 자체적인 원자력발전 운영·전력 거래 등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5일 한국전력공사 전력통계월보에 따르면 올해 5월 산업용 전기 판매량은 전년 동월 대비 1.9% 줄었다. 산업용 전기를 사용하는 개별 업체들이 지난해보다 전기를 덜 썼다는 의미로 한전의 산업용 전기 판매량은 지난해 11월부터 7개월 연속 전년 동월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산업용 전기 판매량이 줄어든 배경에는 경기 부진뿐만 아니라 원가 부담이 급증한 요인도 있다. 한전은 지난해 10월 말 주택·일반용 전기요금을 동결하는 대신 산업용 전기요금을 ㎾h(킬로와트시)당 평균 9.7% 올렸는데 이 같은 인상이 제조 업체를 비롯한 산업계에는 고스란히 비용 부담으로 이어진 것이다. 실제로 대규모 공장 및 산업 시설에서 주로 사용되는 산업용(을) 고압B·C 전기요금은 2022년 ㎾h당 105.5원에서 현재 185.5원으로 약 3년 만에 75.8% 증가했다. 같은 기간 가정·사무실 등에서 쓰는 일반용 전기요금이 31.4% 올랐다는 점과 비교하면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률은 일반용의 2배를 뛰어넘는다. 산업용(을) 고압B·C뿐 아니라 산업용(을) 고압A, 중소기업이 주로 쓰는 산업용(갑) 전기요금도 2022년 대비 각각 64.9%, 46.4%씩 상승했다. 이에 일부 산업계는 원전을 통해 생산된 값싼 전기를 민간기업이 직접 끌어다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경우 비용 절감뿐만 아니라 탄소 중립 과제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포스코홀딩스는 이달 1일 경북도 및 경주시와 손잡고 소형모듈원전(SMR) 1호기 유치에 관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지방자치단체는 SMR 1호기를 경주에 유치한 뒤 포스코홀딩스의 투자를 일부 받아 국가산단을 조성하고 포스코홀딩스는 향후 SMR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식이다. 철강 업계의 한 관계자는 “탄소 중립 달성 수단인 수소환원제철을 가동하려면 대규모 전력을 24시간 공급할 수 있는 무탄소 전원이 필요하다”며 “결국 원전밖에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미 미국에서는 이처럼 직접 원전을 운영하거나 원전 운영사와 전력구매계약(PPA)을 체결해 공장·데이터센터 등에 값싼 무탄소 전력을 조달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 메타는 6월 초 미국 최대 원전 사업자 콘스텔레이션에너지가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운영하는 원전의 전력을 2027년 6월부터 20년 동안 구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콘스텔레이션은 지난해 9월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섬 원전 1호기의 상업운전을 재개해 마이크로소프트 데이터센터에도 20년간 전력을 공급하기로 한 바 있다. 아마존은 2039년까지 500만 ㎾(킬로와트)의 SMR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으며 구글도 50만 ㎾짜리 SMR 건설 계획을 세우고 있다. 미국 정부 역시 원전을 통한 전력 조달을 지원하는 모습이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지난달 말 미시간주 팰리세이즈 원전의 재가동을 승인했다. 이는 미국 내에서 해체 결정이 났던 원전을 다시 운영하기로 결정한 첫 번째 사례로 팰리세이즈 원전 운영사인 홀텍은 연말까지 원전을 재가동한다는 계획이다. 우리 정부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논의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인사청문회 답변서를 통해 “원전 기반 PPA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는 것을 안다”며 “다만 가동 중이거나 현재 계획된 원전이 생산하는 전력을 PPA를 통해 특정 기업에 제공하는 것은 형평성 논란이나 전기요금 인상과 직결될 수 있는 만큼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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