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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캔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아...그림과 소통하며 상처 달래죠"

[고캔디 국내 첫 갤러리개인전]

아이들 서툰 낙서 같은 무의식기법에

웅크린 인형·흐느끼는 사람·괴물 등

이성의 반대편서 감성·감정적 표현

을지로 상업화랑서 25일까지 전시

뉴욕에서 활동하는 고캔디 작가의 국내 첫 개인전 ‘포트레이츠’가 25일까지 을지로 상업화랑에서 열린다.




서울 지하철 을지로3가역 6번 출구로 나와 즐비한 조명상가를 비집고 들어가 만나는 ‘상업화랑’은 대로변에 간판이 있다지만 찾기가 쉽지는 않다. 3층 계단을 오르는 동안도 “여기가 전시장 맞을까?” 의구심이 드는데 막상 들어가도 “여기가 화랑인가” 싶다. 요즘 주목받는 대안적 성격의 공간이다. 안쪽 구석 책상에 노란 머리의 여자가 웅크리고 앉아 뭔가를 적고 있다. 메모지에 큼지막하게 적은 것은 심한 욕설(Eat Shit)이다. 쉼 없이 적던 그가 고개를 들어 말한다.

“가져가셔도 돼요. 친구에게 나눠줘도 되고요.”

뉴욕에서 활동하는 현대미술가 고캔디(32·사진)이다. 그의 국내 첫 개인전 ‘포트레이츠(Portraits)’가 개막한 지난 14일 상업화랑에서 작가를 단독으로 만났다. 선과 색으로 휘갈긴 듯한, 추상표현주의 같은 작품들 곁에 선 작가는 주술사처럼 보였다.

“지난해 뉴욕 전시에서 퍼포먼스를 했어요. 내가 책상에 앉아있으면 사람들이 마주앉아 고민을 얘기하고, 나는 그들의 바람과 소망에 맞춰 작은 그림을 그려줍니다. 그림을 어디에 걸라고도 얘기해 줬는데, 한국식으로 보자면 무당이 부적을 써 준 셈이죠. 자본주의적 교환방식을 미술적으로 차용한 퍼포먼스였어요.”

작가가 원하는 것은 ‘소통’이다. 하지만 한국은 ‘진짜’ 무당과 부적이 있는 곳인지라 다른 방식을 택했다. 고 작가는 “내가 뭔가를 적으면 사람들이 다가올 테고 그들에게 작은 선물처럼 집어갈 종이를 주는 것”을 두고 “찌질하지만 내 나름의 소통방식”이라고 말했다. 알고보면 그는 찌질하기는 커녕 ‘최상위 엘리트’다. 미국 명문 뉴스쿨에서 조각과 문학 학위를, 스쿨 오브 비쥬얼 아트에서 미술비평으로 석사를, 뉴욕의 포덤대 로스쿨에서 지적재산권을 전공해 졸업한 후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전시장을 채운 그림들은 꼭 어린아이의 서툰 낙서처럼 보인다. 크레용과 사인펜으로 마구 그은듯하나 그 틈에서 웅크린 인형, 흐느끼는 사람들, 무섭게 입을 벌린 괴물 같은 어떤 ‘존재’가 감지된다. 색깔은 강렬하고, 선은 끊기지 않고 굽이굽이 이어진다. 끝까지 붙들고 싶은 어떤 심리를 암시한다. 기법은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이성에 의한 일체의 통제 없이, 무의식적으로 그리다시피 한 ‘자동기술법’이다.

고캔디의 ‘무제(20190112-Red/Blue)’


고캔디 ‘무제(20190210-Flag)’


고캔디의 개인전 ‘포트레이츠’ 전시 전경.


“내 작업은 이성의 극한 반대편, 극도로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것을 보여주고자 해요. 미술과 문학을 공부한 후 평가하고 표현하는 글쓰기를 하면서 이성적 행위의 극단이 뭘까 고민해 로스쿨을 갔죠. 그런데 이성의 극단인 그 과정을 통과하면서 우리 사회가 왜 병들었는지가 보였어요. 그 세상의 아픔을 치유하고 싶어 다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변호사를 버리고 화가를 택한 이유다. 작가는 “경쟁 위주의 교육시스템에서는 공감능력을 키우기보다는 누구를 짓밟고 먼저 올라갈 것인지를 가르치다보니 서로에게 상처주는 것에 무뎌진다”면서 “완전 이성의 세상에서는 사람이 완전할 수 없고 인간은 이성과 감성이 공존하는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자신부터 솔직해졌다. “어린 시절의 학대, 성폭행, 학교로부터의 방치 같은 트라우마로 대인공포증이 생겼고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살 수 없을 정도”라는 작가는 주로 밤 10시 이후 새벽 2시 무렵까지, 세상이 잠든 동안 그린다. 4점을 그리면 3장은 버리고 겨우 1장 정도 건진다. 작업 순간을 중시해 작품에는 꼭 날짜와 시간, 날씨까지 적는다.



고캔디 ‘무제(20190414)’


고캔디 개인전 전경.


그의 심오하고도 난해한 작품에, 관람객은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작가는 “그냥 보고 느끼라고 권하고 싶다”면서 “머리로는 이해될 수 없는, 보고 느낄 수밖에 없는 그림을 ‘느껴보는 경험’과 보는 훈련 만으로도 (관객이) 마음의 짐을 덜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작가의 이름이 독특하다. 어머니가 만화 ‘들장미 소녀 캔디’의 주인공 이름을 따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말라’는 뜻으로 지었다. 어머니인 동양화가 박유아 씨는 고인이 된 박태준 전 포스코회장의 차녀다. 지난 2014년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고승덕 전 국회의원이 작가의 아버지다. 상처많은 가족사를 겪은 작가는 지난해 11월에 한국에 와 “여기서 작업하겠다”며 1년 정도 머무르기로 했다. 작가 친구의 주선으로 전시가 성사됐고 최재원 독립큐레이터가 기획을 맡았다. 무례를 무릅쓰고 아버지가 전시를 보러 온다면 어떨지를 물었다. 매양 번뜩이던 그의 눈빛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만약 온다면 뭐…아녜요.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상처가 깊을수록 고캔디의 작품은 더 강렬해진다. 전시는 25일까지.
/글·사진=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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