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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인플레이션에 겁먹지 말라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바이든 부양책 비판 끊이지 않지만

경기 진작 긍정적 효과 차고 넘쳐

불과 두 세 달의 물가 상승 자료를

재난 증거로 내세우지 못하게 해야

폴 크루그먼




2010~2011년의 인플레이션 소동을 기억하는가. 내년에 비슷한 상황이 재연될 수 있으니 이쯤에서 찬찬히 복기를 해보자.

2008년 금융 위기로 미국 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지자 새로 출범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연방준비제도(연준)는 다양한 지출 프로그램과 대규모 채권 매입을 통한 적극적인 경기부양에 나섰다. 현재 이코노미스트들 사이에는 당시의 경기 부양 노력이 유용했으나 지출 규모가 충분치 않았다는 공감대가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다.

하지만 우파에게 정부의 적극적 개입은 아무리 절박한 상황이라도 금기에 속한다. 지금도 보수 진영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타격을 입은 경제 회생을 위한 조 바이든 행정부의 부양 노력에 인플레이션 우려를 내세운다.

되돌아보면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2010년 중반에 이르도록 그들이 경고했던 고도 인플레이션이 현실화하지 않자 노골적인 실망감을 드러냈다. 사실 그 이후 몇 달 간 물가가 들썩이긴 했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4%에 육박했다. 게다가 오일, 대두와 같은 상품의 평균 가격은 연 40% 가까이 상승했다. 공화당은 심각한 통화 가치 하락을 유발할 것이라며 연일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나 연준은 물러서지 않았다. “물가 상승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 1970년대 식 스태그플레이션의 전조가 아니다”며 양적 확대 기조를 그대로 유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플레이션은 힘을 잃었고, 그 이후 줄곧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현 상황을 보자. 바이든이 강력히 밀어붙인 1조 9,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구조 계획’은 분명 상당한 경기부양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민간부터 연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경기 전문가들은 초대형 부양안으로 미국이 1980년대 이후 전혀 보지 못했던 고도 경제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물론 물가도 연준의 연간 억제 목표선인 2% 위로 올라설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물가 상승은 곧바로 스테그플레이션 논쟁으로 번질 것이다. 사실 스테그플레이션 공방은 이미 시작됐다.

인플레이션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오일과 대두와 같은 일부 상품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변화에 반응하며 하루 단위, 혹은 분 단위로 변한다. 이런 상품들의 가격은 시장 상황에 따라 쉽게 오르내린다.

그러나 임금을 비롯한 다른 많은 가격은 자주 변하지 않는다. 대다수 근로자들의 임금은 1년에 단 한 번 조정된다.

스테그플레이션은 주로 임금처럼 변화가 심하지 않는 이른바 ‘가격 경직성(sticky price)’을 포함한다.



소비자들 모두 높은 물가 상승률이 오랫동안 이어질 것으로 점치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이런 상황에서 다음 해 상품 가격을 책정하는 기업이 경쟁사들이 매기는 가격과 그들이 제안하는 임금이 장기간에 걸쳐 오를 가능성을 감안하지 않을 리 없다.

기업들은 이런 예상을 기초로 새로운 가격을 책정한다. 바로 여기서 그들이 두려워하는 인플레이션을 키운다.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예상이 경제의 저변에 깔리면 물가 상승은 외부 요인 없이 스스로 지속되고, 한번 오른 물가를 끌어내리는 일은 대단히 어려워진다. 공포심이 만든 인플레이션이기 때문에 잡을 방법도 없다. 바로 이것이 고실업 상황임에도 물가가 뛰는 스테그플레이션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나 요점은 휘발성이 높은 상품 가격의 단기 변동만으로는 스테그플레이션 위험 여부를 예측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연준은 일반적으로 소비자물가 대신 변동성이 높은 음식과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근원 물가에 초점을 맞춘다.

경기 호황이 예상되는 앞으로의 몇 달 동안 많은 상품의 가격이 일시적으로 상승할 것이다. 여기에 팬데믹의 영향까지 함께 겹치면서 전 세계적으로 운송 컨테이너 부족과 같은 흔치 않은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 같은 가격 상승이 2010~2011에 보았던 것처럼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것인지 아니면 좀 더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질 것인지 여부이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소비자물가지수가 아닌 기저 인플레이션 수치에 주목할 것이다. 단지 연준의 표준 핵심 지표 뿐 아니라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의 가격경직성지수까지 살펴보아야 한다는 얘기다.

일회성 사건들도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다. 예를 들어 기업들이 미래의 높은 물가 상승 전망에 근거해 이를 상품 가격과 임금 책정에 반영하기 시작했는지 파악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뜻이다.

바이든의 경기부양이 불러올 물가 상승이 지속적인 인플레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2010~2011년 당시 우리가 배운 ‘겁먹지 말라’는 교훈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경제를 도우려는 정부의 시도를 맹렬히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이든의 미국 구조 계획이 너무 훌륭한 정책이었다는 평가를 받을 가능성은 차고도 넘친다. 이제 우리는 정부의 개입을 마땅치 않아하는 쪽에서 불과 2~3개월의 단기 물가 상승 자료를 임박한 재난의 증거로 내세우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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