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위원장을 만나 그의 근황과 진보정당 통합 방안, 그리고 진보정당이 바라보는 현 과학기술계의 문제점에 대한 날선 비판과 그 대안에 대해 들어봤다.
진보신당 대표직에서 물러난 후 사실상 처음으로 정치 일선에 돌아왔다. 어떤 일을 하며 지냈나?
주로 강연회를 많이 다녔고 지역구 주민들과도 만나면서 보냈다. 등산이나 낚시를 즐기면서도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평소에 하고 싶었던 것을 다하고 지낸 셈이다.
원래 등산과 낚시를 좋아하나?
굉장히 좋아한다. TV프로그램 때문에 엄홍길 대장과 함께 1박2일로 내장산에도 갔었다. 등산 모임에서는 수락산, 불함산, 북한산 등을 다녔다. 등산에 비해 낚시는 자주 못갔던 것이 아쉽다.
진보진영 통합의 중임을 맡았다. 어떤 형식으로 통합을 이끌 것인지 궁금하다.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먼저 성격이 비슷한 진보정당이 나뉘어져 있는 현재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 민주노동당과 사회당, 진보신당이 모여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하나의 당으로 통합되기 어려운 정당들, 다시 말해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과 선거에서 연대하는 후보 단일화 방안이다.
애초에 갈라섰던 만큼 독자노선 지지파의 반대도 만만치 않을 듯싶다.
여러 가지 우려와 경계심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끝까지 독자적으로 가자는 사람은 없다. 진보신당을 처음 만들 때부터 새로운 세력들을 규합해서 진보의 재구성이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과거에 싸우고 헤어지긴 했지만 몇 가지 문제는 이미 풀었고, 안 풀린 문제는 앞으로 풀면 된다.
사회당 같은 경우는 과거에 함께 하지는 않았지만 새롭게 같이 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영원히 독자적으로 간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이 안 된다. 진보정당의 목표는 집권을 해서 우리 사회를 진보적으로 개선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서로 작은 상태로 나뉘어 있으면 결국에는 자기주장만 내세울 뿐 우리가 대변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아무것도 못하는 그런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대통합으로 나서는 게 올바르다고 본다.
진보정당 통합을 위해서는 북핵과 권력세습 문제가 논의될 텐데 합의점은 어떻게 찾고 있나?
일단 진보정당 건설 추진위원장으로서 개인의 생각보다는 당 대회에서 결정 한 사항을 관철하는 게 내 임무다. 위원장으로 선출된 직후에 민주노동당 강기갑 통합추진위원장을 만나러 가서 결정된 사항을 전달했다.
핵심은 3 대 세습 반대와 핵 개발의 원천적 반대다. 물론 그 두 가지만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에 대해 일방적인 편들어 주기는 안 된다.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 한다.
그게 상식이 아닌가? 그런데 과거에는 이런 것이 부족했거나 오해받은 대목들이 있다. 오해는 풀어야 할 것이고 부족하면 개선해야 한다.
진보라고 하면 빨간색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새로 출범할 정당의 정치적 지향점은 무엇인가?
우리나라에서 진보하면 이데올로기적으로 보는 경향이 많다. 특히 북한과의 관계 때문에 더 그렇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진보는 화해와 평화, 그래서 대화와 상호교류를 통해 남북간에 갈등을 없애자는 것이지 북한 편을 들자는 게 아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지향하는 진보는 이데올로기적 진보가 아니라 국민들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느 당을 지지하던지 우리 국민 대다수가 바라는 것은 선진복지국가 아닌가? 진보정당의 힘이 크지 않고서 선진복지국가로 이행된 나라는 단 하나도 없다. 물론 진보정당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많은 국민들은 정치에 큰 관심을 가지지 못한다.
국민 대부분이 한국 정치가 뒤떨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럼 뒤떨어지지 않은 바람직한 정치, 선진 정치는 무엇일지 생각해보자. 바로 여러 정당들이 국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와 관련된 노선의 차이로 서로 대립하고 경쟁하면서 국민의 선택을 받아서 정권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 경쟁이 된다.
그런데 대개 한 정당 안에 보수와 진보가 모두 있다. 지역기반으로 영남이 집권했다가 호남이 집권했다는 얘기가 안 나오려면 어떤 정책을 추구하는 집단이 집권 했다로 가야 되고 그게 정치 선진화가 아닌가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진보 정당이 커가는 것은 필수적이다.
이명박 정권 집권 후 과학기술부와 교육부가 통합됐다. 이 결정을 어떻게 보고 있나?
철학의 문제와 능력의 부족으로 본다. 국가경영의 주요 철학으로 과학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지, 또한 우리의 제반 조건 하에서 앞으로 먹고 살아가며 국민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 과학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철학이 없었다는 말이다. 최근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선정 과정을 보면 균형발전과 관련된 철학의 부재도 확인된다.
그동안 현 정권은 실질적인 균형발전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한 판단 없이 여기저기 떡 하나씩 주겠다는 식으로 일관해 왔다. 여기는 쑥떡. 저기는 찰떡 식으로 말이다. 그러다가 문제가 생기면 쑥떡은 없애고 찰떡을 나눠주겠다고 한다.
달라는 곳이 많으면 찰떡을 세 동강을 내서 주겠다고도 한다. 그것이 과연 진정한 균형발전을 이루는 길인지 묻고 싶다. 과학과 관련된 철학, 균형발전과 관련된 심도 깊은 고민 없이 공약을 하고 정략적으로 대응하면서 민심은 민심대로 흉흉해지고 과학은 과학대로 난도질 당한 상황이 된 것 같다.
그렇다면 통합 진보정당에서 바라보는 대안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기초 과학에 대한 국가적 투자와 신성 장동력에 대한 아젠다를 찾아내서 중소기업이나 여러 연구소들에 대해 지원을 해야 한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그렇지 못한 것이 있는데 이 두 가지 분야는 기업에게 강제로 시킬 수 없는 것에 속한다.
국가가 투자하거나 기업을 독려해 협동하는 형태로 진행해야 한다. 산업 정책에 관해서도 지금처럼 나눠주기식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국토의 균형 발전과 과학 그 자체의 발전 메커니즘은 서로 다르지 않나?
기초 과학에 대한 투자, 과학과 산업의 연계와 관련된 국가의 책임을 균형발전과 연관시키는 마스터플랜이 필요한데 지금은 과학이 마치 정치의 장난감이 된 듯한 모습이다.
정부부처 통폐합은 현 정부가 작은 정부를 지향한 데 따른 결과다.
작은 정부도 필요하다. 하지만 비만인 사람을 다 이어트 시켜야지 영양실조인 사람을 다이어트 시켜서는 안 된다. 과학과 관련해서 우리는 영양실조 상태다. 그런데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고 더 작게 만들어 버리면서 아사 직전에 몰리고 있다. 개인적 의견으로는 우리 나라 과학기술계는 복부는 비만인데 근육은 없는 사람과 같다.
이런 사람은 복부 지방을 빼고 근육을 키워야 한다. 하지만 지방은 빼지 않고 근육을 빼버리고는 작은 근육이라고 말한다. 대덕연구개발특구의 경우에도 더 많이 투자하고 미래를 보장해줘야 하 는데 비정규직 비중이 높다. 그럼에도 자력갱생하라고 요구한다. 이렇게 되면 당장 돈이 되는 기술만 개발하게 된다. 오랜 기간 투자하고 실험해야 하는 부분은 연구하지 못한다.
다양한 정책에도 불구하고 이공계 기피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해법은 없을까?
우리나라는 사람이 곧 자원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는 값싼 노동력으로 돈을 벌었다. 하지만 이제는 중국 때문에 그런 경쟁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진 것은 사람뿐이니 지금부터는 머리, 즉 남보다 앞선 과학기술력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
대기업은 필요한 기술을 여기저기서 사와서 좋은 제품을 만들어 팔면 되지만 국가차원에서 보면 기술력을 기르지 않고서는 국가의 산업이 성장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의 현실은 과학도들이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면서 중간에 방향을 바꿔 의대로 가고, 로스쿨로 간다.
그런 선택을 한 사람들을 탓할게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메리트를 줘야 한다. 또한 중소기업들이 기술을 개발·육성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만 과학자들 일자리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공업고등학교의 홀대 분위기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그렇다. 우리보다 산업화가 더 발달한 독일이나 스웨덴 등의 국가는 공고를 나와도 대학 나온 사람만큼 인정받는다. 그러니 대학 진학률이 50%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공고를 나오면 사람 취급을 못 받는 분위기다. 그래서 다들 비싼 등록금 내고 4년제 대학을 가려고만 한다.
이렇게 80%의 학생이 대학에 들어 가니 졸업해도 직장이 마땅치 않고 다른 나라에서는 고졸자들이 하는 일을 우리는 대학 나와서 하고 있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과학의 미래도 어두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미래는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정책이 필요하지만 가장 기본적으로 학교 교육부터 바꿔야 한다. 그중에서도 문과와 이과를 나누는 것부터 고쳐서 누구나 두 분야를 함께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통섭과 소통, 창의성의 시대에 맞는 과학인재를 키울 수 있다.
앞으로는 인문학적 소양을 가지고 공대에 진학하고 자연과학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인문학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 사실 문과와 이과를 구분 짓는 국가는 세계에서 우리가 유일하다.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력 재고도 필요하다. 중소기업 얘기를 자주 언급하 는 것은 경쟁력 있는 대기업들은 고용하는 사람의 수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규모가 커져도 고용자 수는 줄어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 전체로 볼 때 정부는 고용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양질의 기술을 가지고 많은 돈을 벌어서 임금을 제대로 주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중소기업의 기술향상 프로그램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우리나라를 이끌어 나갈 과학도들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과학기술의 생명은 창의력이다. 무한한 창의력이 새로운 기술 혁신을 낳는다. 그런데 그 창의력을 강조해야 할 대학에서 창의력에 심취한 학생은 성적이 낮게 나오고 우리는 그 성적으로 사람을 평가한다. 이것은 반(反) 과학적인 행태다. 로봇 신동으로 뽑았다면 그 사람이 로봇 분야에서 천재성을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
최근의 카이스트 사태를 지켜보며 너무 속이 상하고 정치하는 사람으로서 공대생들에게 죄송한 마음뿐이다. 공대생들이 자부심을 갖고 자기 방면에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그리고 땀 흘린 만큼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과학 정책을 만들어 낼 것을 약속한다. 현실이 어렵더라도 과학도로서 자부심을 잃지 말 것을 당부 드린다.
PROFILE
학력
1976년 경기고
1983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1998년 고려대 노동대학원
경력
1987년 인천지역 민주노동자연맹 창립
1992년 진보정당추진위원회 대표
1993.2003년 한국노동 정책정보센터 대표
1996년 노사관계 개혁위원회 자문위원
1998년 국민승리21 정책자문위원장
1999년 민주노동당 정치개혁특별위원장·기획위원장
2000년 민주노동당 부대표
2002.2004년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2004.2008년 제17대 국회의원
2005년 한·프랑스의원 친선협회 부회장
2006년 민주노동당 민생특별 위원회 위원장
2006년~현재 해외반출 문화재 되찾기의원모임 대표
2008년 진보신당 상임대표
2011년~현재 노회찬마들 연구소 이사장
상훈
2004년 전태일문학상 특별상
주요저서
노동자와 노동절, 87·88정치위기와 노동운동,
민주노조운동과 전노협, 지역감정과 정치발전,
힘내라 진달래, 노회찬의 약속
이기원 기자 jack@hmgp.co.kr
사진_이종철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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