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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르네상스 미술은 불황 타개위한 소비형태"

■상인과 미술(양정무 지음, 사회평론 펴냄)


서유럽 문명사의 가장 빛나는 시기로 평가되는 르네상스 시대. 동양과의 중개 무역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한 메디치 가(家) 같은 이탈리아 상인들이 재력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ㆍ미켈란젤로ㆍ라파엘로 같은 천재적인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했고 그로 인해 수많은 명작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게 르네상스에 대한 일반론이다. 저자인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교수는 이 같은 통념을 뒤집는다. 르네상스 시대는 알고 있던 것처럼 그렇게 부유하지 않았을 수 있으며 그 시대의 예술이 인문주의의 부활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 소비문화의 시작으로 볼 수도 있다는 주장을 다양한 사료를 토대로 짚어준다. 저자는 중세 유럽 경제사 연구자인 로버트 로페즈의 '르네상스 장기불황론'을 인용해 중세 안정기 이후 르네상스 시기인 1330년대부터 200여 년간 유럽은 대불황에 빠져 있었다고 지적한다. 금융위기와 흑사병에 따른 생산력 감소, 부동산 가격 하락 등의 악재가 이어졌다. 결국 경제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발생한 지배층의 기형적 소비형태가 르네상스 미술이라는 주장이다. 저자는 일례로 르네상스 미술의 대표적인 후원자 로렌초 메디치가 거듭된 사업 실패와 자신의 무능을 감추기 위해 '문화나 예술로 포장하는' 재주를 부렸다고 지적한다. 즉 자신 때문에 피해를 보게 된 사람들의 눈을 가리기 위해 더욱 화려하고 찬란한 미술품들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현대 기업가의 원조로 불리는 르네상스 상인 프란체스코 디 마르코 다티니는 흑사병으로 부모를 잃고 죽음의 공포에 시달린 탓에 구원받고자 하는 목적으로 다양한 종교 미술품을 봉헌했다. 또한 부의 양극화로 신흥 지배층에 편입된 세력들에게는 '문화 소비'가 자신들의 당위성을 보장해 주는 장치이기도 했다. 이런 현상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르네상스 미술에 대한 후원이자 투자가 됐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르네상스 미술은 서구 상업문화의 역사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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