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캐스팅도, 눈을 뗄 수 없는 고풍스러운 의상도 있다. 2시간 넘게 무대를 휘저으며 뛰고 기고 날아다니는 군무와 아크로바틱도 있다. 스토리가 '빈곤'인 상황에서 재료의 '풍요'는 오히려 독이 됐다. 뮤지컬 '태양왕'이 아쉬움을 남기는 이유다.
지난 10일 개막한 태양왕은 프랑스 절대군주 루이 14세의 삶과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안재욱·신성록·김소현·윤공주 등 스타캐스팅과 360여벌에 달하는 의상으로 일찌감치 기대를 모았다. 국내 제작사인 EMK뮤지컬과 마스트엔터테인먼트는 이번 작품을 위해 프랑스로부터 음악과 대본만 사와 국내 정서에 맞게 스토리를 재창작했다. 막상 막을 올리고 보니 가장 중요한 스토리가 안 보인다. 화려한 안무와 의상을 지켜보며 '이제 좀 시작하려나' 싶으면 또 다른 에피소드가 시작되며 안무와 패션쇼가 반복된다. 그 사이 루이14세의 사랑과 고뇌, 민중과의 갈등 같은 절대왕정을 이룬 한 사나이의 삶의 이야기는 빠져들 틈 없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 제작사가 초점을 맞췄다던 루이 14세의 러브스토리도 아쉽기만 하다. 마리 만치니, 몽테스팡 부인, 프랑소와즈 등 3명의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스토리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첫 눈에 반해 시작되다 보니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 주인공에 대한 감정이입이 어렵다.
빈약한 스토리 속에 조연들의 탄탄한 연기마저 빛을 잃은 것이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루이 14세에게 바른말을 할 줄 아는 몇 안되는 신하 중 한명인 보포르 공작, 그와 함께 민중들의 목소리에 힘을 싣는 이자벨, 극중 유일한 '경쾌 캐릭터'이자 루이14세 동생인 필립의 존재감은 분명 강했다. 다만 붕 떠 있는 스토리 탓에 캐릭터들이 극에 유기적으로 녹아들지 못하다 보니 강한 존재감에도 불구하고 존재의 이유에 대해서는 계속 의문이 남는다. 연기와 노래에 감탄하면서도 '이 부분에 굳이 이렇게 긴 시간이 할애돼야 하는가'하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절대군주의 삶을 150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녹여내기가 어려웠던 것일까. 작품이 소화 못한 이야기를 관객이 받아들이려니 더부룩함만 커진다. 4m가 넘는 푸른 망토를 비롯해 태양을 삼킨 듯 붉은 빛이 매혹적인 가운, 거울조각을 이어붙여 화려함을 더한 파티복 등 루이14세의 컬렉션과 360벌이 넘는 주조연들의 의상, 무대와 공중, 심지어 객석을 오가는 안무와 아크로바틱까지. 화려한 볼거리에 관심 있는 관객들이라면 눈은 즐거울 수 있는 공연이다. 뮤지컬 태양왕은 6월 1일까지 서울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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