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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m 퍼트실패' 2주전 악몽 딛고 메이저 제패·상금왕 경쟁 합류
270야드 날린 뒤 갤러리 탄성에 희열
외모도 골프 스타일도 남자같대요…긴머리·치마 한번 생각해봐야죠
친구이자 매니저·멘털 코치, 시상식서 엄마 생각하니 눈물이…
"긴 머리에 치마요? 차차 생각해봐야죠."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2년 차 박성현(22·넵스). 기사 속 사진이나 TV 중계로 그를 처음 본 사람들은 '소년 같다'는 느낌을 가장 많이 받는 것 같다. 댓글의 상당수가 그런 쪽이다. 태권도 공인 3단인 어머니를 닮아선지 270야드 드라이버 샷에 일단 '지르고' 보는 화끈한 골프 스타일도 남자 같다. 하지만 실제로 박성현을 만나본 사람들은 '천생 여자'라는 정반대의 말을 한다. 뽀얗고 주먹만 한 얼굴에 오목조목한 이목구비, 조곤조곤한 말씨 때문일 것이다. 차차 머리도 길러볼 생각이라는 박성현은 "의류 후원해주는 곳에서 '치마 좀 보내줄까'라며 장난스럽게 물어오는데 그것도 생각해볼 문제"라며 웃어 보였다.
'신데렐라' 박성현의 등장으로 국내 골프계가 뜨겁다. 1m 버디를 놓쳐 우승을 날리고 쏟은 통한의 눈물, 2주 만에 비슷한 상황을 맞아 이번에는 가까스로 우승을 지킨 스토리가 대회 뒤에도 화제다. 우승한 날 고깃집 뒤풀이에는 팬 40~50명이 몰렸다. 지난 22일 서울경제신문사를 찾은 박성현은 "축하 전화를 하도 많이 받아 목에 담이 걸렸다. 우승 뒤 이런저런 일정도 많아 딱 하루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 누워 있고 싶다"면서도 "그래도 행복한 불평이다. 이런 불편함쯤은 몇 번이고 견딜 수 있다"고 했다.
박성현은 21일 기아자동차 한국 여자오픈에서 우승했다. 데뷔 2년째에 첫 우승을 내셔널 타이틀이 걸린 메이저대회 제패로 장식한 것이다. 상금 2억원에 부상으로 받은 자동차(카니발 하이 리무진), 소속사 인센티브 등을 더해 3억5,000만원이 넘는 '대박'을 터뜨렸다. 드라이버 샷 난조로 컷 통과도 버거웠던 지난 시즌에는 총상금이 1억2,000만원이었는데 올 시즌은 반도 지나지 않아 3억1,000만원(4위)을 벌며 상금왕 경쟁에 뛰어들었다. 지난 겨울 미국 전지훈련 기간 넓은 코스에서 마음껏 드라이버 샷을 날리며 아웃오브바운즈(OB)에 대한 불안감을 떨친 게 컸다. 별도로 코치를 두지 않는 박성현은 독학으로 샷을 바로잡았다. 박성현의 어머니 이금자씨는 "지난해에는 치는 족족 OB가 나서 보는 나도 명을 단축하고 다녔는데 올해는 정말 편안하게 보고 있다. 퍼트만 빼고…"라며 웃었다.
박성현의 짧은 퍼트는 본인과 가족뿐 아니라 골프팬들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2주 전 롯데칸타타 여자오픈 최종일 3타 차 1위로 출발했던 박성현은 마지막 홀 1m 버디 퍼트를 왼쪽으로 흘려보내 연장 끝에 졌다. 이번 한국 여자오픈에서는 5타 차 선두로 더 넉넉했지만 결과는 1타 차 진땀승이었다. 막판 짧은 퍼트를 2~3차례 놓친 탓이었다. 잔잔한 드라마가 예측불허 스릴러로 바뀌었고 중계 방송사는 올 시즌 최고 시청률을 찍었다. 역전패 트라우마가 스멀스멀 피어오를 때쯤 박성현은 18번홀에서 먼 거리 퍼트를 홀에 바짝 붙인 뒤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대청중학교 선후배 사이에다 이미지도 비슷한 이정민(23·비씨카드)과는 잇따른 챔피언조 결투를 통해 부쩍 친해졌다고 한다.
시상식에서 갑자기 터진 눈물은 엄마 때문이었다. 어머니 이씨는 홀로 박성현을 돌보고 있다. 작은 사업을 하는 남편은 외국에 머문 지 오래고 함께 대회장을 따라다니던 큰딸은 최근 해외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났다. 박성현에게는 어머니가 친구이자 매니저이자 멘털 코치다. 박성현은 "내색은 안 하셨지만 그동안 엄마의 마음고생을 모를 리 없다. 첫 우승을 메이저에서 보여 드리게 돼 더 기뻤다"고 했다. 1부 투어 진출권이 걸린 시드전을 보러 가다 교통사고를 당하는 등 모녀에게는 풍파가 많았다. 이씨는 딸에게 골프를 시킨 것을 아직도 후회한다고 했다. "주의가 산만해서 아홉 살 때 골프를 배우게 했어요. 성격은 차분해졌는데 아이가 받는 스트레스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죠. 괜히 시켰다는 생각이 커요." 딸은 "엄마가 그런 생각하지 않게 더 잘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는 3년 뒤에나 도전해볼 계획이라는 박성현은 "드라이버 샷을 하고 나서 '이야!'하는 갤러리의 탄성을 들을 때 소름이 돋고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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