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치권이 부채한도 협상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금융시장은 여전히 '채무상환 불이행(디폴트)'에 대한 불안감에 따라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을 헤매고 있다. 전문가들은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당분간 달러화 약세 추세는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들이 미 정부에 '확실한 액션'을 요구하는데다 금융시장에서도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될 때까지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관측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기상품으로 몰렸던 자금은 협상 결과에 따라 큰 흐름이 바뀌는 등 시장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천장 뚫린 엔화에 약달러 장기화 우려=29일(현지시간) 뉴욕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0.91엔 하락한 76.76엔을 기록했다. 이날 장중 한때 엔화값은 76.72엔을 기록하기도 했다. 엔ㆍ달러 환율이 76엔대로 올라선 것은 지난 3월 이후 4개월여 만에 처음이다. 엔화값 급등의 원인은 역시 부채협상에 대한 위기감 탓이다. 불안감을 느낀 환율시장에서 달러를 팔고 엔화를 사는 손길이 더욱 분주해졌기 때문이다. 안전 통화로 분류되는 스위스프랑 역시 고공행진하고 있다. 스위스프랑·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0.0157프랑 하락한 0.7855스위스프랑을 기록했다. 26일 기록한 사상 최저치(0.7998프랑)를 갈아치웠다. 소마 쓰토무 오카산증권 채권 딜러는 "미국이 만약 부채한도 상향 조정에 실패한다면 달러화 매도세는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이 이번주에 부채한도 상향 조정안에 합의하더라도 시장의 불안감이 완전히 사라지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달러화를 제외한 스위스프랑이나 일본 엔화 등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도는 여전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야마모토 마사후미 바클레이스캐피털 외환 전략가는 "부채협상이 순조롭게 마무리되더라도 달러화 약세 추세는 여전할 것"이라며 당분간 기존 매매전략을 고수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글로벌 자금 향배에 관심=최근 미국 달러화에 이어 국채에 대한 신뢰도가 시험대에 오르면서 글로벌 자금의 향배도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상황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이번 사태로 미 국채에 대한 메리트가 크게 떨어진 만큼 향후 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최근 시장의 불안감을 반영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급등세를 보여왔다. CDS프리미엄이란 국가나 기업이 발행한 채권이 부도가 났을 경우 원금을 받기 위해 가입하는 보험료다. 이 프리미엄이 높을수록 그만큼 부도 확률이 높다는 의미다. 그나마 미 국채 10년물의 금리가 역사적인 평균치보다 낮다는 것은 시장에 안도감을 주고 있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지난 10년간 평균 4.05%였고 미국이 예상흑자를 기록했던 1998~2001년에는 평균 5.48%를 기록했다. 10년물은 29일 2.79%에 마감돼 전날보다 0.15%포인트 하락했다. 미국이 디폴트까지 가지 않더라도 국가 신용등급이 강등되는 사태가 발생하면 미 국채를 대량 보유한 채권자의 손실이 불가피하다. 대외적으로는 중국이, 내부적으로는 미국의 머니마켓펀드(MMF)가 국채가격 하락에 따른 자산 가치 감소의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MMF의 경우 최근 며칠 새 인출 규모가 크게 늘어나 급격한 자금 이동의 직격탄을 맞기도 했다. MMF는 주로 미 국채에 투자해 운용하는데 이런 현상은 미국 금융기관도 미 국채를 불안하게 여기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주 대형 은행과 기업은 미 국채 등에 투자하는 MMF에서 375억달러를 인출했다"며 "이는 주간 기준으로는 올해 들어 최대 규모"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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