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진정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소장하게 된다. 이런 사람은 그저 모으는 사람과는 다르다."
조선시대의 문인 유한준은 중인 출신 수집가인 석농 김광국이 평생 모은 그림으로 화첩 '석농화원'을 꾸미자 이 같은 발문을 써주었다. 이 울림에 감화된 저자는 조선시대 컬렉터들을 찾기 시작했고 3년 만에 책을 엮어냈다.
우선 발문의 찬사를 받은 김광국을 보자. 영ㆍ정조 시대를 살았던 그는 부를 축적한 '중인 컬렉터' 시대를 연 상징적 인물이다. 당시 국제적 컬렉션이라 자랑하던 이들도 중국 그림 일변도가 고작이었던 데 비해 그는 일본의 '우키요에'와 네덜란드의 동판화까지 동서양을 섭렵했다. 그림마다 짧은 평문을 받아 가치를 부여했는데 그런 인물은 김광국이 유일했다고 한다.
조선의 왕족도 컬렉터로 활약했다. 특히 안평대군은 10대 때부터 서화를 사 모아 조선 초기 최고의 수집가로 이름을 남겼다. 비해당이라는 호로 유명한 전체 소장품 174점 중 136점이 중국 그림이었는데 고개지ㆍ소동파ㆍ곽희ㆍ조맹부ㆍ마원까지 방대한 그림들을 높은 안목으로 손에 넣었다. 그가 수집한 조선화가로는 안견이 유일했다니 '몽유도원도'를 그린 안견에 대한 안평대군의 애정을 알 수 있다.
양반 컬렉터 가운데는 18세기 후반 서화 수집 열기의 아이콘인 상고당 김광수가 으뜸이었다. 그는 만 30세에 진사에 합격했으나 벼슬도 마다하고 골동 취미에 몰두했으며 재산이 줄어드는 것도 개의치 않고 사 모은 물건을 어루만지며 삶의 낙을 찾았다 한다. 육교 이조묵의 '수집열'도 만만치 않았다. 공민왕이 사용했다던는 거문고는 단지 '왕이 소유했다'는 이유로 비싼 값에 사들였으며 왕희지 때의 것이란 얘기를 듣고는 죽은 파리도 비싸게 구입했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책 말미에는 '조선시대 그림 값은 얼마였을까', '조선시대에도 위작이 판쳤다' 등의 내용이 덧붙어 흥미를 끈다. 1만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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