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집 걱정 없는 세상'을 위한 종합선물세트를 풀어놓았다. 하우스푸어나 렌트푸어를 겨냥한 대선 공약인 셈이다. 눈에 띄는 대목은 '목돈 안 드는 전세제도 도입'. 집주인이 금융기관으로부터 자신의 주택을 담보로 전세보증금을 대출받고 세입자는 그 대출금의 이자를 부담하는 방식이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발상의 전환을 꾀한 작품으로 비춰진다. 하늘 모르고 치솟는 전세 값에 밀려 거리에 나앉아야 할 서민들의 속사정을 제대로 파고든 대책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너무나 이상적이다. 과연 이러한 아이디어를 내놓은 이들이 실제로 전세를 살아봤는지, 주택담보대출을 낀 상황에서 전세를 내줘 본 경험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법으로 보장된 전세권조차 제대로 요구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전세를 구하러 돌아다니다 보면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계약 이전에 전세권에 대해 미리 얘기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전세권을 요구하면 딜(deal)이 깨지는 경우가 많아서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전세권을 설정해주는 번거로움조차 귀찮다는 반응이 태반이다.
현실이 이러한데 친절하게 직접 전세보증금을 대출받아 주는 집주인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물론 박 후보는 대출을 받아 준 집주인에게 전세보증금의 이자만큼 과세 면제 혜택을 주기로 했다. 전세보증금 대출이자납입액의 40%만큼 소득공제 혜택도 부여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러한 선심(善心)이 집주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최근 수년간 전세 재계약 때마다 수천만원씩 전세금을 올려온 집주인에게 이러한 인센티브는 매력적이지 않다. 더구나 이미 주택담보대출을 활용하고 있는 집주인이 추가로 전세보증금까지 대출받는다면 신용거래나 신용등급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여지도 있다.
솔직히 필자가 집주인이라도 금융거래에서 스스로 운신의 폭을 줄이면서 세입자를 위해 직접 대출을 받고 싶지는 않다.
박 후보는 이번 대책을 발표하면서 "약속을 반드시 지켜서 주거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집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 서민들을 위해 박 후보가 야심 차게 발표한 공약이 허황된 공약(空約)으로 떠돌지 않으려면 현실적인 추가 대책이 하루빨리 나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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