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보(21∼29)<br>○이세돌 9단 ●시에허 8단 <제8회춘란배결승3번기제3국>
흑21 역시 제2국 그대로였다. 계속해서 흑27까지 마치 복기라도 하듯이 두 사람은 빠른 속도로 돌을 늘어놓았다. 이세돌은 즐거운 기분으로 백28에 올라섰다. 다음 순간 이세돌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수를 시에허가 두었다. 노타임으로 놓인 흑29가 그것이었다. 그 순간 검토실의 한국 진영은 조용해졌다.
“시에허가 역시 새로운 해법을 준비하고 있었군요. 이렇게 되면 일단 기세상 이세돌이 무색하게 됐습니다.”(윤현석)
흑29는 구리가 발견해낸 수였다. 구리는 전날밤 시에허의 방에 찾아가 제2국을 함께 복기하면서 이 수를 제시했다. 시에허는 구리의 말을 경청하고 마음속에 아로새겼다. 흑29는 정말 좋은 수였고 이 수가 놓이면 백은 어떻게 두어도 고전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데 이세돌이 어제의 그 형태를 고집스럽게 펼치는 것이 아닌가. 시에허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행복한 마음으로 흑29를 두었다.
이세돌은 장고했다. 아무리 궁리해 봐도 그럴듯한 해결책은 떠오르지 않았다. 게다가 심중에 치솟는 자괴감이 있었다. 상대방이 내 머리 꼭대기에 앉아 웃고 있다는 느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괴로움 속에서 12분을 망설였다. 알기 쉽게 두자면 참고도1의 백1로 흑돌 한 점을 잡아야 한다. 아니, 한 점이 아니라 상변쪽 흑돌 6점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흑에게 2에서 6까지 봉쇄를 당하면 부조건 대세를 잃는다. 봉쇄를 피하려면 참고도2의 백1 이하 5로 두어야 하는데 다음 순간 흑에게 A를 당하면 그 다음이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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