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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섬세한 감수성과 마음결을 지녔던 한국 여성작가 천경자. 그는 1969년 타히티를 시작으로 28년 동안 유럽ㆍ미국ㆍ아프리카ㆍ인도 등을 돌며 그 감수성으로 현지에서 포착한 소재를 그렸다.
이전까지 자신의 드라마 같은 삶으로부터 소재를 길어 올렸던 그는, 낯선 문화와 낯선 사람들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창조 에너지와 영감을 얻었다. '초원 II'에서 우리는 아프리카 초원을 거니는 코끼리와 그 등에 엎드린 나신의 여인을 본다. 수풀 사이로 보이는 꽃과 나무, 사자, 얼룩말, 타조 등이 원시적이며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한편, 여인에게서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의 향기가 느껴진다. 생명력 넘치는 화려한 풍경에도 불구하고 깊은 슬픔에 잠긴 여인으로 인해 전체적으로 비애감이 감돈다. 그 '화려한 슬픔' 속에서 우리는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서도 한없이 외롭고 고독했던 화가 천경자의 내면을 엿보게 된다. /글=이주헌 서울미술관장, 사진제공=서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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