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을 마라톤에 비유한다면 반환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경마장의 말처럼 앞만 보고 달리던 30대를 지나 인생을 다시 한번 고민해볼 때죠. 남은 인생을 내 것으로 만드는 데 논어만큼 깊은 가르침이 없지요."
10여년 교수생활을 하면서 단행본만 20여권을 집필한 신정근(46ㆍ사진)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는 고리타분하게 여기기 쉬운 유학(儒學)의 경전인 사서삼경(四書三經) 중 논어를 으뜸으로 꼽았다. 그가 쓴 20여권의 단행본 중 논어를 주제로 한 책만 5권이나 되는 것도 가르침이 깊어 곱씹을수록 맛이 새롭기 때문이다.
그는 "완전고용ㆍ정년보장이 어려워지면서 퇴직 후의 인생설계가 중요해져 '인생 2모작'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며 "논어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자율적 인간이 되라는 것인데 마흔이 넘어 경력ㆍ능력을 되돌아보면서 인생 2모작을 염두에 둔다면 회사와 가족이 아닌 나를 위한 인생을 설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생2모작을 위한 가치관을 논어에서 찾으라고 권하는 그는 "100% 회사형 인간은 퇴직 후 배반과 허무로 절망에 빠져 스스로 인생을 파괴하기 쉽다"며 "환갑 이후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기보다 지금부터 매일 한 시간이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하루 2모작'을 실천해 행복한 인생 후반부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사서삼경이 죽은 경전이 아니라 현대인에게 여전히 중요한 삶의 철학이라는 것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커피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그는 논어는 카페모카, 역경(易經)은 에스프레소, 맹자(孟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비유했다. "논어는 문장이 강건하거나 웅변적이지 않지만 잔잔하면서도 부드럽고 쉬우면서도 맛이 깊어 카페모카에 비유할 수 있지요. 인생의 기본인 삶과 죽음, 성공과 실패를 다룬 역경은 쓴맛이 기본인 에스프레소에 해당하고요. 씩씩하고 강건해 이상향을 향해 '돌진 앞으로'를 외치는 돈키호테 같은 맹자는 청량감이 있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어울립니다."
신 교수가 지난 10월 출간한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21세기북스)'은 중장년층을 겨냥해 재해석한 논어로 출간 4개월 만에 2만권이 판매됐다. 그는 "인생의 고비를 넘어 다소 편안해지는 나이가 마흔 즈음으로 인생의 맛을 알기 시작한 때가 아닐까 한다"며 "논어는 문체가 부드럽고 내용이 평범해 자칫 '좋은 말씀'정도로 치부하기 쉽지만 마흔이 넘으면 논어의 묘미를 절감하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총선과 대선을 치르는 올해 정치인들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논어의 393절에 있는 '수기안인(修己安人)'을 골랐다. 그는 "정치인은 늘 남을 위해 살겠다고 웅변하지만 스스로 도덕적 수양을 완성하지 못하면 남에게 고통을 되돌려주게 된다"며 "스스로 노력하고 준비하지 않은 정치인이 자리에 오르면 그릇된 판단으로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기 쉽다. 또 부정부패가 만연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새로운 시대의 경영자를 위한 가르침으로 '박시제중(博施濟衆ㆍ널리 베풀고 힘겨운 삶을 함께 풀자)'을 제시했다. 그는 "박시제중은 세상이 나를 위해 돌아야 한다는 사고에서 내가 세상으로 들어가 함께 돌겠다는 방향 전환을 의미한다"며 "1970~1980년대 성장제일주의시대의 이념이었던 사업보국(事業保國)을 대체할 만한 테제(방침)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이익 창출과 주주의 이익을 대변해온 기업이 이제는 소비자에게 눈을 돌려 나눔을 실천하는 기업으로 이념을 재정립해야 할 때"라며 "그러나 기업의 사회공헌은 아직 보여주기식에 머물러 있다. 자사의 재고 처리를 위한 연말 불우이웃 돕기 행사 등 홍보를 위한 일회성 깜짝 이벤트에 그치거나 비리 경영자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사재출연, 그리고 재단 설립을 통한 세금 회피로 이어지기도 해 진정성을 알기 어렵다"면서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 자립할 수 있도록 기업의 나눔도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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