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적이고 때로는 도발적인 현대미술이 종종 난해하다고 여겨지지만, 잘 그린 그림 한 점이 주는 감동은 여전히 진하고 특별하다.
열린 방문 틈으로 새나온 온기 어린 빛은 마당에 놓인 쓸쓸한 촛불과 대조를 이룬다.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는 관객은 고개를 들어 겨울 해질녘의 검푸른 하늘을 다시 한번 바라본다. 정보영(39)의 작품 ‘푸른 시간(Blue Hour)’이다.
종로구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빛, 시간의 경계’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그의 개인전에는 이처럼 빛이 있어 어둠을 한번 더 보게 만드는 최근작 그림 20여 점을 선보였다.
눈 쌓인 마당이 보이는 방 안 창틀에도, 살짝 열린 창호지 문짝 옆이나 낡은 나무 책상 위, 거울 앞과 의자 위에도 촛불이 놓여있다. 켜둔 초는 “다 타서 사라지기까지 유한(有限)한 시간을 상징한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카라바지오에서 렘브란트로 이어지는 드라마틱한 빛의 표현과 에드워드 호퍼의 쓸쓸함의 미학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다.
작가는 청주의 한 사립미술관 만을 그림에 담는데, 부분적 분위기와 빛의 변주에 집중한 덕에 미술관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영화적 장면이 됐다. 그는 2008년 홍콩 크리스티(Christie’s) 경매에서 5만5,000달러에 작품이 낙찰되는 등 ‘크리스티가 사랑하는 작가’로도 정평 나 있다. 전시는 23일까지. (02)730-7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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