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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1월 1일] 글로벌 보헤미안을 꿈꿔라

대학 4학년인 둘째 딸이 어느 날 대뜸 "어느 회사에 취업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어쩌지?' 마땅한 답은 떠오르지 않고 머릿속은 요동을 쳤다. '소위 스펙(SPEC)은 좋은데. 학점, 어학, 인턴 경력 등 빠지는 게 없지. 그런데 중위권 대학이란 말이야. SKY(서울대ㆍ고려대ㆍ연세대) 출신이 아니면 서류심사의 고지를 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온갖 생각을 걸러낸 끝에 답이랍시고 "일단 필기시험을 보는 데가 도전해볼 만한 곳이 아닐까"라고 답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좀 유명하다는 회사는 영락 없이 서류심사에서 탈락시켰다. 면접은커녕 필기시험을 치를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스펙에 너무 얽매인 고용시장 그제야 '아뿔싸, 그 놈의 재수라도 시켜서 SKY에 보낼 걸' 하는 생각에 진저리를 쳤다. 해당 회사의 인사담당자에게 항의전화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아마 비슷한 경험이 있는 다른 부모의 마음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지난 1970년 대학 입학정원은 고교 졸업자의 4.5%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당시에는 취직도 잘 됐다. 그런데 2010년 대학 입학정원은 고교 졸업자의 95.6%라고 한다. 모든 고교생이 대학생이 된다는 말이고 4~7년 뒤면 모두가 대졸 취업전선에 뛰어든다는 얘기다. 이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갈 곳이 있을까.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라고 한다. 1%가 10만명을 고용하고 먹여 살린다고도 한다. 50만~60만명이 매년 새로 취업전선에 뛰어드는데 취업률은 절반도 안 된다.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의 의장국인 한국의 고용현실이다. 손자 세대는 또 어떨까. 내가 딸에게 했던 대답을 자식들이 손자들에게 하지는 않을까. 시쳇말로 제삿밥이라도 얻어먹으려면 손자가 잘 풀려야 할 텐데. 부모 된 사람의 입장에서는 여간 머리가 복잡한 것이 아니다. 걱정이 걱정을 낳는다지만 낙관을 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어둡다. 어느 대학 출신인지가 스펙이 되는 시대는 좀처럼 바뀌지 않을 것 같다. 국민의 교육열을 감안하면 고등교육을 줄이는 건 더 어렵다. 그렇다면 교육받은 것을 써먹을 수 있는 시대를 앞당겨야 하는데 국내 일자리는 제자리걸음이다. 풀릴 기미도 안 보인다. 경제가 좋아져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오죽하면 도전하고 창조하는 직종보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정년을 보장받는 직종에 청년들이 몰리겠는가. 이래서는 우리 손자들이 먹고 살 미래 동력을 찾기 힘들다. 국내 무대만으로는 미래 동력을 생산할 이들을 경제 주역으로 등장시키기에 너무 좁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바깥 무대를 내 것으로 만들면 어떨까. 통합경제와 자유무역이 대세다. 돈은 경쟁력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돈이 움직이는데 국경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다. 일자리를 얻는 것도 어차피 돈을 벌고 성취감을 만끽하기 위한 것이라면 일자리의 국경을 허물어보는 게 좋다. 우리나라 대표기업들이 국내를 박차고 해외에서 승부하듯 이제는 '사람의 질'로 국제적인 승부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질'로 국제적 승부할 때 그런 면에서 정부나 교육기관은 인력을 수출 자원화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21세기 장보고 군단'을 만들자는 얘기다. 국내 취업이 아닌 다국적 기업의 전세계 지사ㆍ지점을 목표로 신 엘리트 집단을 양성한다면 한국은 '21세기 청해진'이 될 법하다. 이들이 21세기를 움직이는 '글로벌 보헤미안'이 되면 그들은 스스로 정년(停年)을 만들 것이다. 스스로 능력을 배양하고 능력이 되는 한 세계무대를 누빌 것이다. 기업이 경영난에 봉착하면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까 두려워하고 낙담하는 세대가 아니라 '내 능력으로 국가와 자식과 손자를 먹여 살리는' 낭만파가 될 것이다. 다방에서 '도라지 위스키'를 기울이던 베이비부머의 낭만이 아니라 전세계에서 국격(國格)을 높이는 그런 낭만 말이다. 이만큼 오랫동안 비(고용위기)를 맞았으니 이제는 무지개를 볼 때도 됐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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