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이 '잘 살아보세'를 외치던 1970~1980년대에 사업에 모든 것을 걸었던 한 남성이 있었다. 그는 "앞으로 마시는 물도 귀하게 될 것"이라며 나라에서 생수 시판을 허용한 1995년 이전부터 생수 사업에 관심을 보였지만 애써 모은 자본금을 날리고야 말았다. 배울 만큼 배운 지식인이었고 성공하겠다는 의욕도 넘쳤고 사회를 읽는 눈도 남달랐지만 그가 손대는 사업은 대개 끝이 좋지 않았다. 이유는 딱 하나. 생수 사례에서 보듯 시장 흐름을 너무 앞서나갔기 때문이다.
경영에서 혁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지만 기업가는 온갖 위험이 도사리는 미지의 세계로 '자, 가자!'며 몸을 던지는 인디애나 존스가 아니다. 세계적인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기업가 정신'이라는 책에서 경영은 혁신 그 자체이지만 또한 보수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보수적인 최고 경영자가 빠르게 움직이는 시장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침몰하는 상황도 우려해야 하지만 남보다 한발 앞서 성공을 거머쥐려면 위험 분석이라는 과정을 그 누구보다 꼼꼼하고 철저하게 거쳐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취재 현장에서 지켜본 상당수 기업들은 드러커의 명제를 머리로 '이해'는 해도 '실천'하는 경지에는 다다르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시장을 체계적으로 분석할 조직이나 기구(tool)를 갖추지 못한 중견ㆍ중소기업에서는 암울한 시장의 신호를 기민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기원에 가까운 장밋빛 예측을 내놓기 바빠 보인다. 한 패션 기업은 매년 30%씩 매출을 키워 수년 후 손꼽히는 글로벌 기업이 되겠다고 하고 한 뷰티 기업은 현 국내외 매출을 5년 내 2배로 불리겠다고 공언한다. 심지어 현재 전체 시장이 5조원인 아웃도어 업계에서는 10위권 내 브랜드들이 너도나도 매출 1조원을 하겠다는 기묘한 상황도 벌어진다.
물론 이들 기업이 수많은 고난을 헤치고 무사히 계획한 목표를 도달한다면 진심으로 축하할 일이다. 또 회사 내부를 결속시키기 위해 리더가 비전을 제시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국내외 경제 환경이 녹록지 않은 이때 이들이 나침반도 없이 정글을 헤매는 인디애나 존스처럼 되지 않을까 현실적인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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