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교육의 신화가 깨진 지는 오래다. 대학 졸업장만 쥐면, 번듯한 직장을 잡을 수 있으리란 기대로 대학 진학에 시간과 비용을 아낌없이 쏟아 붇지만, 현실은 기대와 다르다. 상당수의 대졸자들은 대학등록금, 해외연수에 쓴 비용 때문에 빚을 지고 사회에 발을 내딛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승률이 너무나 낮은 구직 전쟁이다. 이런 현실이 과연 한국만의 문제일까. 뜻밖에도 선진국에서도 벌어지는 글로벌한 현상이다.
이 책에 따르면 화이트칼라 중산층이 되는 공식은 선진국이나 우리나 비슷했다. MBA(경영학석사)와 같은 고가의 자격증을 취득하면 쉽사리 좋은 일자리에 취직해 중산층 대열에 자연스레 진입했다. 그런데 이 공식은 1990년대 들어 무너지기 시작했다. 화이트칼라 직업군중 상위 10%의 임금만 꾸준히 올랐을 뿐 나머지 90%의 임금은 아주 소폭 오르거나 정체됐다. 사회에서는 누구에게나 교육의 기회는 널려 있으므로 "자기자신에게 투자하라"고 끊임없이 강요하지만 실제 그에 대한 보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이 비슷한 주제를 다룬 기존의 책들과는 달리, 고학력 저임금 현상의원인에 대한 저자들만의 통찰이 담겨있다는 점이다. 대학과 기업의 탐욕 때문에 등록금은 치솟고 월급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글로벌 인력 시장의 지각변동이 고학력 저임금 인력을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인도 등 신흥국에서 쏟아지는 고급 인력들은 싼 임금에 고용가능하며 그들의 기술수준도 선진국의 고급 인력 못지 않다. 이제 글로벌 기업들은 신흥국에 생산기지만 두는 게 아니라 연구개발센터(R&D), 디자인센터, 애널리스트 업무와 같은 화이트칼라 업무기지까지 옮겨가고 있다. 이는 남의 일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인도에서 수만명이 넘는 IT인력을 채용해 소프트웨어를 개발 중이며 현대자동차도 중국에 R&D센터를 운영 중이다. 이제 국내도 모자라 해외 인력과도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또 하나 저자들이 주목한 산업계의 중요한 변화는 IT기술이 몰고 온 '서비스업 대량생산 체제'다. 제조업에서 대량 자동생산체제를 통해 인력의 필요를 최소화 했듯이, 이젠 서비스 산업 분야에서도 표준화와 IT기술을 통한 대량 생산이 이뤄지면서 고급인력의 설 자리가 줄고 있다.
전세계 인력 시장을 직접 취재하면서 얻은 생생한 사례를 기반으로 풀어 가기 때문에 쉽게 읽히는 교양서다. 특히 대학진학률이 70%가 넘는 한국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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