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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In Depth] 백성 입장서 생각한 자수성가형 군주

■ 세종은 어떻게 리더로 성장했나

양녕 반면교사 삼아 스스로 변화

과거 사례 분석으로 창조력 키워

앙부일구

세종은 어떻게 리더로 성장했을까. 세종은 처음부터 현명했을까. 훈민정음을 창제할 만큼 언어학 등에도 박학다식했을까. 당연히 그렇지는 않았다는 것이 저자 박현모의 분석이다. 자수성가형 군주라는 것이다.

어린 시설의 세종(충녕대군)은 고자질을 잘했고 잘난 체하는 등 성정이 좋지 못했다. 외삼촌 민무회로부터 안좋은 말을 듣자 태종에게 그 사실을 알렸고 그 일로 외갓집은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다. 세종의 이런 모습에 큰형인 양녕은 동생을 꺼려했으며 자신의 애첩도 세종의 고자질때문에 곤경에 처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도 했다. 또한 경회루 술자리에서 시구 잇기 중에 자신의 학문을 뽑내기도 했는데 이로 인해 양녕은 부왕 태종으로부터 "왜 너는 학문이 이만 못하냐"며 꾸중을 듣기도 했다. 이때 세종의 나이는 벌써 스무살이었다. 누구보다 영리했던 세종이 자신의 행동이 형을 곤경에 처하게 할 것임을 몰랐을 리가 없다.

그랬던 그가 어떻게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리더가 될 수 있었을까. 저자는 이에 대해 다음 두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첫째 세종은 책을 통해서 인간과 세상에 대한 견문을 넓혀 나갔고 세자 자리에서 퇴출된 형(양녕)을 반면교사 삼아 스스로를 변화시켰다. 둘째 백성들을 직접 만나보면서 그들의 입장에서 정치를 바라보는 안목을 다졌다.



저자는 세종의 창조력 발생의 근원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핵심으로 정리했다. 우선 '계고'(稽古), 옛일을 상고하는 자세다. 과거의 사례를 집대성하고 분석함으로써 성공 조건과 실패 원인을 가려내 이를 제안된 정책이나 인재쓰기, 농업과 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도록 했다. 둘째는 '끊임없는 실험정신'(試之驗)이다. 새로운 농업, 무기, 염초 등은 반드시 시험해 효과를 기록하게 했고 그 기록을 토대로 최고의 창조물이 나오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다름(異, 別)의 인정'이다. 우리나라는 주변의 다른 나라, 특히 중국과 다르기 때문에 무조건 중국의 것을 따르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세종은 차이를 인정함으로써 우리에게 맞는 독자적인 문화를 창조하도록 이끌었다.

가장 중요하게는 세종의 세계관이다. 조선 최고의 성리학자라는 자부심 아래 백성을 위한다는, 즉 위민(爲民)의 확고한 목표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달성하기 위한 근본적인 행동에 나설 수 있었다. /최수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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