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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177> '新전원일기'


12시쯤 크고 작은 회사가 모여있는 지역에 가봤다면 목격한 적 있으리라. 빌딩 숲 사이사이 넥타이 부대가 발걸음을 재촉하는 모습, 어디서 그 많은 사람이 쏟아져 나왔는지 의문을 자아내는 광경이다. 남보다 일찍 나오지 않으면 식당엔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없다.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것으로 귀하디 귀한 점심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으니 그토록 바삐 걷는 것이다. 공식적인 휴식시간인 점심때마저 이러하니, 아침부터 밤 늦게 퇴근할 때까지 말 그대로 전쟁 같은 하루다. 그래서 도시에서의 삶은 삭막하고 여유가 없는 것으로 표현되곤 한다. ‘바쁘게 산다’ 보다 ‘살아내다’가 더 어울리는 삶이다.

‘그래 잠시 하늘을 보자’라는 광고 카피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이유는 우리에게 하늘을 올려다 볼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퇴근한 후에는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하늘을 바라볼 물리적인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다. 설사 보더라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방전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유가 있는 전원생활을 꿈꾼다. 삭막한 도시가 아니라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 느림의 미학이 존재하는 삶을.

실제로 퇴직을 앞둔 혹은 퇴직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좋은 터에 아기자기한 집을 짓고 노후를 보내고 싶어한다. 귀농으로 인생 2막을 꿈꾸는 경우를 제외하면 바쁜 일이 있을 것 같지 않다. 회사를 가는 것도 아니고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니까. 아침엔 마실 삼아 동네 뒷산에 오르고 소일거리 정도로 텃밭이나 가꾸고 주말엔 자녀 그리고 손자, 손녀와 이야기 꽃 피우는 모습. 상상만으로도 정답고 여유롭다.



이런 저런 생각들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시골에서의 삶을 동경(憧憬)한다. 물론 먼 훗날의 이야기지만 반드시 이루겠다고 다짐하며 지친 마음은 TV 프로로 위안받는다. 전원생활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데는 분명 이런 이유도 있다. 젊은 세대는 tvN ‘삼시세끼’, 중장년층은 MBN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프로그램를 통해 어딘지 모르게 공허한 삶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녹록지 않다. 동경하던 전원생활을 실현하려는 순간 태반이 꿈으로 남기겠다며 주저 앉고 만다. 서울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는 양평, 용문만 해도 몇 년 새 땅값이 두 세배 이상 뛰었단다. 집도 짓고 텃밭 만들 땅도 필요하고 손주 오면 차 세워 둘 마당도 필요한데 이게 다 돈이다., 그것도 어림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든다. 어쩌면 전원생활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려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자연 친화적으로 사는 사람들을 담아내는 TV 프로가 인기를 끄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 포기하기는 이르다. 자연이 선물하는 여유로움은 꼭 시골에서 살아야만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위를 다시 둘러보자. 아파트 단지 내에서 출근 길에서 곳곳에 핀 꽃, 싱그러운 나무를 만날 수 있다. 지치고 힘들어서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더라도 주변의 자연을 매일 주의 깊게 관찰해보자. 딱 일주일만 해보면 보이지 않던 꽃의 구조가 보이고 운이 좋으면 꽃잎의 미세한 변화까지 발견하는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동경의 대상이던 자연 속의 여유를 도시에서도 얼마든지 누릴 수 있다. 극적인 환경 변화만이 답은 아니다. 세심한 관찰 그것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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