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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안된 60세 정년시대] <중> 얽히고 설킨 실타래

장년층 직무개발·임금체계 개선 안돼 산업현장 진통 예고


나이·직급 동일시하는 문화 지속땐 인사 적체·조직 사기저하 등 불러
해외기업과 경쟁 갈수록 힘들어져
연공서열 따른 고임금 구조 안깨면 청년 고용에 부정적 영향 불가피
기업들 늘어나는 비용부담 피하려 비정규직 채용 확대 선호할 수도


"정년 60세 시대가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우리나라 기업의 경우 나이가 많은 근로자들에게 어떤 업무를 맡겨야 할지, 또 그들에 대한 처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등에 대한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습니다."

국내 대기업의 한 고위관계자는 "장년층이 회사 내에서 기존에 맡아오던 일을 계속하게 되면 인력순환이 안 돼 조직은 노쇠화하고 역동성은 떨어지게 된다"며 "이렇게 되면 40세 이하로 평균연령을 맞춰 민첩성을 높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해외 기업들과 경쟁이 힘들어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렇다고 후배가 임원 또는 조직의 장이 돼 선배를 지휘 감독하게 되는 경우에 대한 준비가 돼 있느냐면 그것도 아니다"라며 "나이와 직급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그 나이에 아직도 그 직급이냐'는 등의 따가운 시선을 보내기 일쑤"라고 지적했다.

장년층에게 적합한 업무를 개발하지 않은 채 정년만 연장할 경우 인사적체와 그에 따른 조직의 사기 저하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대기업의 경우 장년층에게 적합한 업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돼 있지 않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법으로 60세 정년을 강제하게 되면 근로자들의 퇴직과 승진 등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인사적체가 가중될 수 있고 이는 조직의 사기 저하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동열 울산대 경영학부 교수는 "연령이 높아질수록 신체능력과 기술 습득 속도 등이 떨어져 노동생산성이 하락한다는 게 일반적인 주장이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실증적인 근거는 미흡한 것이 현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장년층의 육체적 능력이 상대적으로 청년층보다 떨어지고 문제 해결이나 사고 등 정신적인 능력도 나이가 들면서 다소 감퇴하는 사실마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장년층에 맞는 업무를 발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의 기업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장년층에 적합한 업무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이 같은 업무 개발작업에는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장년층의 고임금 문제도 풀어야 할 과제다. 우리나라 생산직 근로자의 연공(여러 해 동안 근무한 공로)에 따른 임금 격차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30년 이상 근무한 근로자와 새내기 근로자의 임금 격차는 3.3배로 독일(1.97배)이나 프랑스(1.34배)보다 훨씬 크다.



문제는 이 같은 임금 격차가 직무나 노동 강도, 숙련도 등과 무관하게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에서는 같은 업무를 같은 시간에 처리하더라도 근속연수가 많은 근로자가 더 많은 임금을 받는다. 생산직 근로자의 경우 나이가 들면서 육체적 능력이 저하돼 생산성이 떨어지더라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55세 이상 고령 근로자의 임금은 34세 이하 근로자의 3배 이상이지만 생산성은 34세 이하 근로자의 60% 수준이라는 게 한국노동연구원의 분석이다. 노동생산성과 괴리된 임금 체계는 비단 생산직 근로자에게만 적용되는 얘기는 아니다.

장년층의 고임금은 청년과 경력단절여성, 중간퇴직자 고용 확대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장년층 고용 확대가 청년고용 축소로 이어진다는 실증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반론도 제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기업현장에서는 임금 조정 없는 정년 60세 의무화는 청년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4월 300여개 기업을 대상으로 '정년 60세 의무화에 따른 기업 애로 및 정책과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업체의 56.5%, 대기업의 경우 68.1%가 정년 60세가 의무화되면 '신규 채용이 감소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따라 대한상의는 임금 체계 개편 등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청년과 중장년들의 일자리 경합은 불가피하기 때문에 서둘러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직무구조와 임금 체계가 경직돼 있다 보니 기업들 사이에서는 정년 연장 전에 근로자들을 조기퇴직하도록 유인하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업의 임금 체계와 직무구조가 경직돼 있어 근로자의 생산성이 떨어져도 이에 맞게 임금과 직무를 조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근속연수가 높아질수록 고용비용이 급증하게 되는 근로자들의 희망퇴직을 유도하고 사내 하도급을 활용하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이 같은 고용환경은 결국 은퇴 후 비정규직 신분으로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근로자들을 양산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 남성들은 공식 은퇴연령과 무관하게 71세까지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 후에도 새로 일자리를 구한다는 의미다. 비정규직 양산과 자영업 과잉팽창도 결국 준비가 미흡한 정년 연장 문제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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