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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입법권 남용하는 국회


국회의원들은 4년 임기 동안 수천개의 법안을 제출한다. 선거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또는 실적 쌓기용으로 얼토당토않은 설익은 법안을 마구 제출하고 정부가 제출한 법안을 구미에 맞게 칼질한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심의하지도 않은 법률안을 연말에 무더기로 통과시키고는 하지만 18대 국회에서 처리가 안 돼 폐기될 예정인 법안이 7,000개에 이른다고 한다.

마구잡이식 법안 제출ㆍ수정 다반사

소급입법이나 형평성에 위배되는 법률 제정도 서슴지 않는다. 국회의원이 되면 모든 법을 아무렇게나 만들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국회 정무위원회가 지난 9일 예금자보호법 등의 기본원칙을 무시하고 의결해 논란이 되고 있는 저축은행피해자지원특별법이나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그 예다.

비슷비슷한 내용을 가진 법률안들이 마구잡이식으로 발의되고 통과되기도 한다. 중소기업 관련 법률만 해도 중소기업기본법을 필두로 여성기업지원법, 장애인기업활동촉진법, 소기업ㆍ소상공인지원특별조치법 등 20여개에 이른다. 중소기업인들이 이렇게 많은 법률들의 존재를 알고 있을까. 전자거래기본법 등 전자거래 및 전자문서 이용에 관한 법률도 수없이 많다. 뿐만 아니라 각 단행(單行)법률에서 전자문서를 종이문서와 동일한 것으로 본다는 각 규정이 들어간다. 이러니 법률의 낭비 현상이 심각해지고 체계도 없다. 법규의 문장이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길어지고 무슨 말인지 문법적으로 알 수 없거나 전후 모순되는 경우까지 있어 모순되는 판결을 부추긴다. 법률을 이해하기 어렵게, 엉망으로 만들어야 변호사들이 할 일이 생긴다는 얘기가 농담반 진담반 떠돌고 있을 정도다.

더욱 고약한 것은 정부나 학자들이 오랫동안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만든 법률안을 국회가 심의 과정에서 단기간에 칼질해 잘라내고 붙여 초안과 상당히 다른 법률로 나타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이다. 법안 심의 과정에서 수정안이 초안보다 좋아졌다면 문제될 게 없지만 준비되지 않은 국회의원들의 간섭은 법률의 체계와 이념에 반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오는 4월15일부터 시행 예정인 개정 회사법(상법 회사편)이 대표적인 예다.



모든 법은 목적과 이념이 있다. 회사법의 목적에 대해 미국의 헨리 밸런타인(Henry Ballantine) 교수는 지난 1946년 "첫째, 기업의 효율적 운영과 변화에 적응력을 높여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오늘날 우리 상법학계에서 '회사법의 이념은 기업을 유지하고 강화시켜 주는 것'이라고 보는 통설적 견해와 일치한다. 물론 기업에만 편하자고 하는 것이 회사법의 유일한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기업이 튼튼하게 자라려면 체질 강화를 위해 운동도 해야 하고 예방주사도 맞아야 한다. 현행 회사법에 소수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각종 장치, 지배주주의 전횡을 방지하기 위한 지배구조 관련 강행규정 같은 것이 들어있는 이유다.

회사법도 기업 때리는 법으로 변질

그러나 회사법이 갈수록 '기업을 때리는 법률'또는 '기업에 불편한 법률'이 돼가고 있지 않은지 걱정이다. 4월15일부터 시행 예정인 회사법만 하더라도 그렇다. 당초 개정안은 법무부 상사법무과에서 2006년부터 공을 들여 2011년까지 무려 5년간 학자ㆍ변호사ㆍ검사ㆍ판사 등으로 구성된 회사법개정특별위원회의 초안 작성 및 검토 과정을 거쳐 국회에 제출됐다. 그런데 막상 공포된 법률은 처음과는 매우 달라졌다. 미리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회사와 거래할 수 있는 대상을 이사에서 주요주주, 이사ㆍ주요주주의 배우자 및 직계존비속 등으로 확대한 것이 그 예다. 이는 경제행정법인 '독점규제와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서 다뤄야 할 주제다. 이런 것들이 자꾸 회사법에 난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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